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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전문가

[문화마당] 꿈의 값 -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에 부쳐/조혜정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영화평론가

[문화마당] 꿈의 값 -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에 부쳐/조혜정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영화평론가  



‘드림 하이’라는 드라마는 스타를 꿈꾸는 학생들의 고군분투기이다. 한 연예예술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땀 흘리고 눈물 흘리는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들의 꿈을 향한 도전과 열정은 치열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응원하고 싶고 기대하고 싶다. 그들이 꿈을 이루게 되기를, 그리고 그 순간의 감동을.
  
▲ 조혜정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영화평론가  

지난해 ‘슈퍼스타 K’의 성공으로 공중파에도 스타 발굴 오디션 프로그램이 속속 마련되고 있다. 이미 ‘위대한 탄생’이 현재 오디션을 진행하고 있고, 곧 다른 방송사에서도 동종의 프로그램을 내보낼 계획이라고 한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 열기가 상상 이상으로 뜨겁고 진지하다. 오디션 참가자들이 심사위원 멘토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헤매는 듯한 모습을 보면서 ‘저들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전부’라는 생각으로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든 모두가 바라보는 그곳은 과연 멋진 곳일까?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도달한 그곳에서 과연 그들의 꿈은 보상받을 수 있을까? 꿈이 있는 사람에게서 엿볼 수 있는 기대와 희망은 우리를 두근거리게 하고, 꿈을 이루려 노력하는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치열한 열정은 우리를 감동시킨다. 그러나 꿈과 현실의 괴리는 상상 이상으로 잔인하다.

최근 국세청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연예인 평균 수입이 직장인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도 연예인 평균 수입은 2499만원으로 발표되었다. 연예인 중에서 탤런트와 배우 등 연기자가 평균 3300만원이고, 가수는 2500만원, 모델은 1000만원으로 집계되었다. 그에 비해 직장인 평균 수입은 2530만원이다.

평균치라는 것은 사실 많은 부분을 가리고 감춘다. 연예인 가운데 스타급은 연수입이 수십억원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최저생계비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의 수입에 그치는 연예인도 적지 않다. 오히려 평균치를 밑도는 수입을 올리는 사람들의 경우 액수가 적을수록 그 수가 더 많아지는 법이다. 수익 피라미드 구조의 바닥에 많은 사람들이 속해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인 것이다. 화려하고 멋지게 치장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대중의 관심과 인기가 집중되는 곳이 연예계지만, 화려한 외관의 이면에 놓인 현실은 못내 씁쓸하다.

여기에 일의 속성상 안정적 수익기반이 형성되지 못해 어려움은 더 가중된다. 연예계 종사자들은 단기 고용에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가 영화인 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연간 약 1.5편의 제작에 참여하여 5개월 정도 일하고 수입은 1013만원을 버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 역시 배우를 제외하면 수입이 850만원(영화스태프는 637만원)으로 더 떨어진다. 꿈의 값 치고는 너무 저렴하지 않은가.

더욱이 극단적이지만 최근 연예계 현실의 단면을 드러내는 안타깝고 우울한 소식이 들려왔다. 촉망 받던 30대 초반의 시나리오 작가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병마와 굶주림으로 사망했다는 기사. ‘며칠 새 아무 것도 못 먹어서, 남은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드려 주세요.’라고 쓴 메모가 유서처럼 이웃집 문에 붙어 있는 모습. 충격이었다.

배우가, 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대학에 오는 학생들을 많이 보았다. 그중에는 그저 부나비처럼 화려함을 좇아 온 이들도 있지만, 필자가 아는 많은 이들은 정말 연기가 좋고,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연극 혹은 영화과에 지망하고 꿈을 실현하려 노력했다.

그들을 볼 때마다 격려해 주면서도 녹록지 않은 현실 때문에 때로 의욕을 꺾었던 적도 없지 않았다. 꿈의 값은 생각만큼 크지 않고, 오히려 꿈 꾸기 때문에 치러야 하는 대가는 혹독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했다.

그럼에도 드림 하이(Dream high)! 꿈을 향해 비상하고 도약하는 이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이제 꿈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포기하는 이들, 적어도 위 작가와 같은 불행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영화인 실업 부조 제도를 비롯해 연예인 복지시스템의 점검이 필요하다.

서울신문  2011-02-10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