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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오락, 알고보면 과학… 화투·윷놀이에 숨은 과학적 원리

모르면 오락, 알고보면 과학… 화투·윷놀이에 숨은 과학적 원리

국민일보 | 입력 2011.01.31 18:00

설날이 코앞이다. 명절엔 가족이나 친척들이 함께 둘러 앉아 화투나 윷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전통 놀이에도 다양한 과학적 의미와 원리가 숨어 있다. 이번 설 연휴에는 종일 TV 프로그램에 빠져 있기보다 이들 놀이를 통해 재미와 동시에 과학적 사고를 높여보는 것은 어떨까.

◇화투에 숨은 과학=화투는 도박에 가까운 '큰 판'이 아니라면 오랜만에 만난 가족끼리 서먹했던 감정을 녹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화투패는 음력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한국천문연구원 고(古)천문연구그륩 양홍진 박사는 "화투 48장은 4장씩 12달을 상징하는 등 절기와 계절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화투에 동양 전통의 천문학이 녹아 있다는 것. 예를 들면 화투패 가운데 흑싸리(4)가 들어오면 '안 좋은 패'라고 실망한다. 이는 곧 사그라질 '그믐달'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또 5가 난초인 것은 춘란이 5월에 피기 때문이다. 7월 홍싸리에 멧돼지가 그려진 것은 이때 멧돼지가 홍싸리를 많이 찾는다는 이유에서다. 10월 단풍에 사슴이 있는 것은 이때의 녹용을 복용하면 몸에 좋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양 박사는 "화투가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지만 절기 등 동양 천문학을 바탕으로 만든 놀이임에는 틀림없다"고 했다.

화투 섞기에는 수학적 원리가 깔려 있다. 고려대 통계학과 허명회 교수와 중앙대 이용구 교수는 지난해 12월 응용통계연구 학술지에 '화투 섞기의 과학'이란 제목의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48장의 화투가 섞여지는 과정을 수학적으로 기술하고 그것이 완전히 섞여지기 위해 몇 번을 반복해 쳐야 하는가를 계산한 것이다. 연구 결과, 화투를 4∼8개 소묶음 분할로 임의 순열화하기 위해서는 96회 이상 반복해 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실제로 화투 섞는 과정을 보면 대개 4개 소묶음 분할로 6회 정도 반복해 치므로 화투 배열은 매우 불충분하게 임의화된다. 다시 말해 잘 섞이지 않아 연이은 번호가 자주 나오게 된다는 것.

허 교수는 "연이은 번호의 출현 횟수는 이상적인 임의순열 배열에서는 평균 1회지만 실제로는 이 값을 훨씬 웃돈다"면서 "때문에 초약, 풍약, 비약 등의 발생 빈도가 커지게 돼 게임 리스크가 증대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즉, 점수를 크게 따거나 잃을 가능성이 높아지며 이 점이 화투를 게임으로써 더 흥미롭게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윷놀이 "왜 개가 자주 나올까"=삼국시대 이전부터 행해 오던 전통 민속놀이인 윷놀이는 고대 부여에서 다섯 종류의 가축을 다섯 부락에 나눠줘 그 가축들을 경쟁적으로 번식시키도록 한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그래서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에 비유된다. 윷판에서 한번에 움직이는 거리도 이 동물들의 특성에 따라 정했다. 몸 크기의 차이를 보면 개보다 양, 양보다 소, 소보다 말이 더 크다. 돼지는 개보다 몸집이 크지만, 걸음의 속력이 제일 느리기 때문에 '도'에 해당한다. 돼지가 한 발자국의 거리를 뛰는 사이에 말은 돼지의 다섯 배 정도를 가는 셈이다.

윷놀이는 확률의 원리를 배울 수 있는 좋은 학습 놀이이기도 하다. 어떤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로 정의된다. 따라서 도가 나올 확률은 4/16=1/4(앞:A, 뒤:B 라고 하면:AAAB, AABA, ABAA, BAAA=4가지), 개는 6/16=3/8(앞:A, 뒤:B 라고 하면:AABB, ABAB, BAAB, BBAA, BABA, ABBA=6가지), 걸은 4/16=1/4(앞:A, 뒤:B 라고 하면 : BBBA, BBAB, BABB, ABBB=4가지), 윷과 모는 1/16이다(앞:A, 뒤:B 라고 하면: AAAA=1가지). 즉, 확률적으로는 개 > 도(걸) > 윷(모) 순으로 나타난다. 확률로도 개가 가장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개가 가장 빨리 달리는 모양이다.

하지만 확률값은 사실 문제점이 있다. 윷짝 하나의 앞과 뒤가 나타날 확률을 똑같이 1/2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윷짝의 모양은 곡면과 평면으로 구성된다. 그나마 윷짝은 정확한 반원 형태가 아니라 반원을 넘어 아래가 약간 잘려진 불룩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곡면이 나올 확률과 평면이 나올 확률이 다를 수밖에 없다.

고려대 허명회 교수는 1995년 발표한 논문에서 윷짝의 독특한 모양을 고려해 새로운 확률값을 제시했다. 그는 '윷이 바닥에 닿은 순간 어느 면이 나올지 정해지고 더 이상 구르거나 튀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 윷짝의 독특한 역학적 운동을 파악했다. 윷 단면인 반원의 무게중심을 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반원의 회전운동을 계산했다. 윷짝이 완전한 반원이 아니라는 점도 고려했다. 그 결과 평면이 위로 나올 확률과 곡면이 위로 나올 확률의 비율은 6:4 정도였다. 평면이 위로 나올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의미다. 이 값을 토대로 '걸 > 개 > 윷 > 도 > 모'의 순으로 확률이 작아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 결과가 완벽하게 정확한 확률값이라고는 단정 지을 수 없다. 만약 윷놀이 할 때의 바닥, 예를 들면 멍석이나 땅 바닥 등이 평평하지 않다거나 그로 인한 운동 방향의 변화 등을 고려해 연구한다면 다른 확률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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