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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네트워크/창조기업

사람에 대한 관심이 기술을 완성한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기술을 완성한다
페이스북 성공비결은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
저커버그가 괴짜? 인문학 조예 깊고 EQ 높아
한겨레 구본권 기자기자블로그
» 미국 페이스북 본사 사무실 복도에 붙어 있는 “우리는 기술 회사인가?”라는 문구는 상상력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해온 화가 르네 마그리트 그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IT기업의 또다른 성장동력

“우리는 기술 회사인가?(Is this a technology company?)”

지난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있는 페이스북 본사를 방문했을 때 맞닥뜨린 표어다.

기자를 안내한 직원은 사무실을 오가다가 늘 마주칠 수밖에 없는 곳에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

고민을 담은 문구를 걸어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물음의 배경이 된 게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라는 점은 이채롭다.

벨기에 출신인 마그리트는 논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상상의 세계를 즐겨 표현한 대표적

초현실주의 화가이다. 이처럼 페이스북을 기존의 유사 서비스 업체들과 근본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바로 논리를 넘어선 ‘상상의 세계’를 지향하면서 기술 회사라는 정체성을 뛰어넘으려는 노력에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페이스북은 ‘프로그래밍 천재’ 마크 저커버그(26)가 2004년 설립한 세계 최대의

사회관계망 사이트다. 사용자들의 친구와 관심사를 찾아 연결해주는 뛰어난 추천 기능으로 인해,

앞서 나온 서비스 업체들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사이트가 됐다.

그 비결은 이용자들의 관계 데이터와 콘텐츠를 정교한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놀랄 정도로 뛰어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해주는 데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의 차별성은 단지 알고리즘의 우수성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간과 그들이 맺는 관계에 대한 깊은 관심이야말로 페이스북의 성공을 가져온 진짜 비밀이다.

구글이 여느 업체보다도 많은 데이터와 뛰어난 수학적 알고리즘 능력을 보유했음에도, 사회관계망

 서비스에서 좀처럼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는 지난해 6월 아이폰4 출시 행사에서 “애플은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에 있어 왔다”며 “우리는 단지 기술기업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인간에 대한 관심이 그 뿌리임을 보여주는 사례 한 토막.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만들고 성장시킨

이야기를 실명 인물들을 등장시켜 영화화한 <소셜 네트워크>가 최근 국내에서도 상영돼 인기를

끌었다. 직원이 10명뿐이던 초창기부터 일해온 나오미 글라이트 제품관리 총괄책임자에게 “영화가

사실과 가장 두드러지게 다른 점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져봤다.

글라이트가 기자에게 들려준 답은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개설한 동기로 그려진, 여자친구인

에리카와의 결별”이었다. 실제로 저커버그에겐 페이스북 창립 이전부터 사귀어온 중국계 여자친구가

 있으며 지금도 긴밀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페이스북은 잘못 알려져 있듯이 “연애에 쓴맛을 본, 사회성이라곤 거의 없는 컴퓨터 천재가

홧김에 만든 서비스”가 아니다. 저커버그가 어려서부터 뛰어난 프로그래밍 실력을 보여온 건

틀림없지만, 그건 페이스북의 성공을 절반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저커버그는 지난해 시사주간지 <타임>에 의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뒤 가진 인터뷰에서,

“나는 기본적으로 컴퓨터 과학을 전공한 사람이지만, 동시에 심리학도 함께 전공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2006년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는 하버드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흥미를 갖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사회성이 부족한 괴짜 컴퓨터 천재로 묘사되는 것과는 달리, 저커버그는 인문학에

조예가 깊고 감성지수(EQ)가 높은 사람이다.

특히 정신과 의사였던 어머니, 세 명의 누이와 함께 자라면서, ‘복잡미묘’한 인간 심리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고 <타임>은 설명했다.

이처럼 페이스북이 기술 회사로서의 정체성을 깊이 고민하는 모습은 마치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애플은 단지 기술기업이 아니다.

그 너머에 있는 기업이다”(Apple is not just a technology company. It’s more than that)라고

강조하는 것과도 한데 겹쳐진다.

정보기술 산업의 선두주자들이 한결같이 혁신의 비결로 내세우는 건 바로 다양한 인문사회과학

분야와 정보기술 분야를 함께 연구하는 통합적 연구에 있다.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특정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탐구하는 에스노그래픽 연구도

그중의 하나다. 사람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야말로 혁신의 씨앗인 셈이다.

팰로앨토(미 캘리포니아)/ 글·사진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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