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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 문화와 만나 활로 찾았다

전통시장, 문화와 만나 활로 찾았다
박태우 기자 taewoo@kyunghyang.com
ㆍ대구 대봉동 방천시장 문화거리 탈바꿈 큰 성과

“먹을거리도 장만하고 예술작품도 감상할 수 있고….”

지난 19일 오후 대구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 동편 벽화거리. 이날 장바구니를 손에 든 한아름씨(36·주부)는 벽화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벽화(길이 130여m·높이 2.5m)를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면서 벽면 위아래를 골고루 응시했다.

벽면은 영원한 가객(歌客), 고 김광석(1964~1996년)의 음악세계와 생애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그의 히트곡인 ‘서른 즈음에’ ‘이등병의 편지’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등을 그림과 만화, 조각 등으로 실감나게 표현했다. 벽화거리는 고인이 대봉동 출신 가수인 점을 테마로 삼아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로 재탄생했다. 벽면을 따라 걷다보면 애잔하면서도 서정적인 가사, 폭발적인 가창력을 자랑한 고인과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착각이 들 정도다.
 
◇ 문전성시 프로그램 = 상인들과 시장에 입주한 예술가들이 손잡고 칙칙한 회색 콘크리트 벽면을 ‘문화로드’로 탈바꿈시켰다.

지난달 20일 개막한 이 벽화는 벌써 도심 명물로 부상하면서 시민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방천시장은 2009년 10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문전성시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전통시장에 문화를 접목시켰다. 문화부와 대구시, 중구는 1, 2차에 걸쳐 6억원을 전통시장 활성화에 투입했다. 상인과 작가 등은 점포 리뉴얼, 간판 정비, 차양막 설치, 문화공간 설치 등으로 시장을 깔끔하게 정비했다. 방천시장은 이 사업을 추진하기 전에는 83개 점포 중 21개가 비어 있었다. 지금은 예술가 30여명이 빈 점포(12~15㎡)를 모두 임대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시장에 둥지를 튼 예술가들은 그림, 만화, 사진, 조각, 부조, 액세서리, 규방·금속·인형공예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작품을 제작, 전시,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업실을 체험공간으로 개방하고 있다. 누구든지 작업실에 들려 작품 감상도 하고 직접 제작에 참여할 수도 있다.

“요즘 학교에서 공예와 조각 등이 번거롭고 위험하다며 기피하고 있어요. 어릴 적부터 양철을 자르고 굽히고 붙이는 작업은 지능 계발에도 중요합니다.”

금속공예가 이우열씨는 “예술가들의 작업실은 소통의 공간과 산교육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을 걷다보면 점포 셔터 등에 꽃과 나무, 물고기 등이 그려진 자연풍경을 쉽게 관람할 수 있다.

방천시장 상인들과 작가들이 지난 19일 머리를 맞대고 시장 살리기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 박태우 기자

또 시장에 상인들이 찍은 대형사진이 내걸리고 미니 카페와 쉼터 등도 갖추어졌다. 상인들과 예술가들은 지난 1월부터 매월 방천신문을 발간했다. 또 시장을 홍보하는 노래를 담은 음반 1000여장을 제작, 보급하기도 했다. 자연스레 시민들의 발길도 늘어나면서 상인과 작가들이 상생을 꾀하고 있다. 침체일로를 걷던 재래시장이 스토리텔링과 문화콘텐츠가 결합돼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 시장에 문화입히기 = 전통시장의 문화입히기 사업은 방천시장 문전성시 사무국이 주도하고 있다. 상인대표 4명, 예술가 상인 4명 등으로 사무국 내 기획단을 구성하고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며 발전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초기 예술가들의 입주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던 상인들도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은 상인들이 직접 예술작품을 설명할 정도로 적극성을 띠고 있다.

“시장의 매출액이 종전보다 10% 이상 올랐습니다. 젊은층도 찾아들고 점포세도 조금씩 오르고 있거든요.”

신범식 방천시장 상인회 회장(64)은 “대형 유통업체에 밀려 다른 재래시장은 고전하지만 방천시장은 문화와 예술로 새단장해 돌파구를 찾고 있다”면서 시장 활성화에 자신감을 보였다.

최기원 방천시장 문전성시 사무국장은 “전통시장도 문화예술을 제대로 입히면 되살릴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면서 “시민들의 발길을 끄는 차별화된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상인과 예술가들이 윈윈하는 길을 찾아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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