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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탁이 만난 사람]‘시골의사’로 유명한 경제평론가 박경철

[이종탁이 만난 사람]‘시골의사’로 유명한 경제평론가 박경철

2009 06/30   위클리경향 831호

“경제 암 세포 은행에서 정부로 옮겨갔을 뿐”


우리 경제는 지금 어느 지점에 있는 걸까. 바닥을 찍고 올라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아직 바닥선에서 벗어나지 못한 걸까. 언제는 금방이라도 끝장날 것처럼 보이던 주식시장이 몇 달 사이 폭등한 것은 무엇 때문이며, 그 오름세는 과연 어디까지 갈까. 한때는 경기 침체를 우려하던 정부가 갑자기 인플레이션을 경고하고 나선 것은 또 왜일까.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비단 전문가들만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보통사람들도 경제전문가들의 진단에 귀를 열고 흐름을 따라잡으려 애를 쓴다. 경기를 무시한 채 그저 목돈이 생겼다고, 필요하다고 해서 집 사고 펀드에 투자했다가는 나중에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작은 투자나 큰 소비를 결정할 때 경제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앞날을 예측하는 것은 서민생활에도 이제 필요한 과정이 됐다.

하지만 경제 진단이나 예측은 전문가에게도 무척 어려운 일이다. 자기가 처한 입장이나 관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누구는 큰 것을 작게 보고, 다른 이는 작은 것을 크게 본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경기 하강 국면은 끝났다”고 하고,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아직까지 하강 국면”이라고 말한다. 어느 쪽을 믿어야 하나. 이럴 땐 책임 있는 당국자보다 자유로운 시장 관전자의 말이 더 유용할 수 있다. 이들은 알기 쉬운 시장의 언어로 피부에 와닿는 진단을 해주기 때문이다. 이번주 ‘이종탁이 만난 사람’이 ‘시골의사’로 유명한 경제평론가 박경철씨를 찾아간 것은 이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서다.

박씨는 경북 안동에서 신세계연합클리닉을 운영하는 원장이며 외과의사다. 하지만 병원 일보다 더 많은 시간을 경기 흐름을 분석하고 평론하는 데 할애한다. 그의 분석과 예측은 경제진단을 전업(專業)으로 하는 어느 전문가 못지않게 예리하고 정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 18일 서울 충정로의 한 오피스텔에서 그를 만났다.

얼마전 보니까 MBN에서 프로그램 진행을 또 하나 맡으셨더군요. 첫 시간 주제가 인플레이션 논란이던데, 진행자 역할에 충실하느라 그런지 본인 의견은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이 기회에 들어볼까요.

“지금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경기는 부침을 반복하는 것이고 또 반복해야 합니다. 소비가 늘면 공급이 늘고 그러다 과잉 공급이 되면 구조조정을 하게 되는 거죠. 1990년대 말 그 시기가 왔는데 하지 못했어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그린스펀 전 의장과 당시 이사이던 벤 버냉키 현 의장이 헬기로 돈을 뿌려 경기를 일으킨다고 했잖아요. 2000년대 초반의 호황은 이렇게 거쳐야 할 구조조정 단계를 거치지 않고 온 겁니다. 그러니까 과잉 공급에 과잉 소비, 과잉 생산이 이어졌고 결국 거품이 터질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인플레이션 이야기를 하려면 그 배경부터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 조금 돌아가는 것 같지만 생략할 수 없는 대목이다.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그렇게 거품이 터져버리니 이젠 구조조정하기가 더 힘들어졌습니다. 중국에는 5000개의 철강업체가 있습니다. 이중 3000개는 구조조정 대상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건설과 조선업은 3분의 1이 과잉 공급입니다. 퇴출시켜야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무리하게 구조조정을 하다간 고용 악화와 은행부실 현실화라는 더 큰 문제와 맞닥뜨리게 되니까요. 그래서 각국 정부는 돈을 찍어 이 문제를 해결하려 들었어요. 한계기업 무너지는 것을 돈으로 틀어막은 셈이지요. 이러니 멀지 않아 인플레이션이 올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인플레이션이란 돈 가치가 떨어지고 물가는 오르는 것을 의미한다. 들어오는 수입은 그대로인데 물건 사는 데 지출을 더 많이 해야 한다면 삶의 질은 가만히 앉은 채 떨어지는 셈이 된다.

그런 상황에 대해 정부에서도 신경을 많이 쓰지 않을까요.
“각국 정부는 인플레이션이 오면 그때 시중의 돈을 회수하면 된다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순간이 전광석화처럼 올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정책으로 시장을 콘트롤할 수 없게 됩니다. 저는 그게 걱정입니다.”

얼마 전 한은 총재와 기재부 장관이 경기와 관련해 서로 다른 언급을 해 눈길을 모았는데요.
“한은 총재는 한은 입장에서 맞는 말을 한 것이고 실물경제를 보는 기재부 장관은 그 입장에서 맞는 말을 했다고 봅니다. 현재 경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생각해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 언제 충돌하느냐를 놓고 벌어지는 시각 차이라 할 수 있죠.”

우리 경제의 1분기 상승률이 OECD 국가 중 1위라고 합니다. 주가도 1400으로 오르는 등 지난해 10월 리먼 사태 이전으로 회복했다는 시각도 있던데요.
“상당 부분 착시 효과라고 봅니다. 그동안 경제 좋아진다 좋아진다 하던 정부가 요즘은 낙관 기대하지 말라고 다른 얘기를 합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세요. 당초 올 1, 2분기는 최악이 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뜻밖에도 수출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수출 호조가 우리의 자체 체력에 의한 게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어요. 중국의 소비자들이 우리 기업 물건을 자기 돈으로 산 게 아니거든요. 정부에서 준 소비촉진지원금으로 산 겁니다. 중국 정부는 자기네 국산품 사라고 지원한 것이지만 소비자들은 값싼 국산품도, 너무 비싼 일본 제품도 아닌 적당한 고급 한국 제품을 찾았어요. 결국 중국 정부가 우리 기업 실적을 보태준 것입니다. 여기에 환율 효과가 예상보다 컸습니다. 우리 환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았으니까요. 수출객단가가 50% 올랐습니다. 같은 물건을 팔면서 돈을 50%나 더 받았다는 얘기입니다.”

앞으로 더 나아지기 어렵다는 뜻인가요.
“3, 4분기에는 중국 정부가 지원금을 줄여 소비가 줄고 환율도 하락해 수출객단가가 낮아질 것입니다. 그래도 좋아질 수 있을까요. 정부는 이런 점을 우려해 경고사인을 보내는데 요즘은 시장이 흥분하고 있어요.”

중국 시장을 부정적으로 보시는군요.
“아주 길게 본다면 저도 낙관론에 서겠습니다. 하지만 중단기적으로는 나빠질 것으로 봅니다. 지금 과잉 설비, 잉여 설비 문제가 가장 심각한 나라가 중국입니다. 무너져야 할 기업을 살리기 위해 은행 돈 뿌려가며 억지로 돌리고 있거든요. 후진타오 주석이 분배 중심의 사회조화이론을 주장하면서 그 해법으로 바오파(保八·경제성장률 8% 유지)를 들고 나오는 역설의 의미를 생각해봅시다.”

이쯤되면 인터뷰가 아니라 한 편의 강연을 듣는 것 같다. 그 흥미로운 강연 속으로 잠시 더 들어가보자.
“중국에는 실업자가 1억 명입니다. 여기에 해마다 650만 명의 신규 취업 희망자가 나옵니다. 구조조정은 고사하고 매년 이만큼의 일자리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사회 불만 세력이 엄청난 속도로 늘어납니다. 그러니 지도부로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일자리를 만들고 싶어합니다. 8% 성장은 여기서 나온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곳간이 넉넉해도 그 재정 적자를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겠어요. 지금 중국은 피죽이나 보리죽을 먹어야 할 판에 떡잔치를 하는 셈입니다.”

우리는 그런 면이 없나요.
“기본적으로는 미국 중국 한국 모두 같습니다. 기업 도산 막자고 돈 찍어내는 통에 이젠 정부가 부실해졌습니다. 암 세포가 오른 팔에서 왼팔로,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은행에서 정부로, 민간에서 공공부문으로 옮겨갔을 뿐입니다. 정부의 신용도가 낮아지게 됐어요.”

“우리는 책임져야할 사람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나아가 해결사처럼 나서고 있어요. 이런 도덕적 해이가 또 어디있습니까.”
어떻게 하는 게 옳은 건가요.
“고생을 하더라도 치러야 할 대가는 치러야 합니다. 환자가 수술은 안 받고 외상만 갖다 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가 말하는 ‘대가’의 의미 속에는 은행에 대한 문책도 들어 있다. 한국의 경제 위기를 부른 주범이 은행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외국은행에서 단기 자금을 빌려 무리하게 장기대출을 해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은행은 제가 보기에 미쳤습니다. 은행은 여러 사람의 잉여재산을 받아서 관리하고 필요한 곳에 투자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윤리성과 공공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은행은 외국 주주들에게 잘 보이고, 자기들 성과급 잔치하는 데 혈안이 되어 고객의 안위는 내팽개쳤습니다. 이를 감독기관에서도 방치했으니 통탄할 노릇이지요. 미국은 그런 사람들 다 옷벗겼는데 우리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나아가 해결사처럼 나서고 있어요. 이런 도덕적 해이가 또 어디 있습니까.”

주식시장 얘기 좀 할까요. 2007년 말에 주가 1500이 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주식을 사라고 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지수 2000이 넘어갈 때 제가 ‘똥밭에 눈 내린 것 같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하얗게 보이지만 한꺼풀만 벗기면 구렁텅이라는 뜻이죠. 1500~1600까지 조정받을 것이라고 했어요. 당시 여기에 동의한 사람은 제 기억으로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들 오버한다고 했죠. 그런데 1500은커녕 1000 이하로 떨어졌잖아요. 제가 경솔했습니다. 오르고 내린다는 방향성은 얘기할 수 있어도 구체적인 지수를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어요.”

지금 지수가 1400선에서 왔다갔다하는 데 어떻게 될 것 같나요.
“올 2~3월에 유동성 장세가 올 것이라는 것쯤은 지난해 말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주식의 주자만 알아도 그런 생각을 했을 거예요. 하지만 길게 가기는 어렵습니다. 지금은 옥상에서 떨어진 공이 바닥에 맞고 튀어오르는 정도입니다. 본격 상승장이라 할 수 없어요.”

뒤도 돌아보지 말고 주식을 샀어야 하는 시점이 지난해 말이었네요. 국민연금은 어떻습니까. 지난해 한국개발원(KDI)에서 나오는 나라경제에 국민연금이 주식시장 비중을 늘린 것은 큰 문제라고 쓴 기고문을 인상 깊게 봤습니다. 나라경제라면 공무원들이 보는 잡지인데 정부 측에서 반응이 있었나요.
“제가 그 문제를 제기하니까 신문 방송에서 일부 토론을 하고 관심을 보였지만 그게 다였어요. 국민연금 측은 저랑 이 문제에 대해 절대 토론하지 않으려 할 거예요. 무조건 내가 이기는 논리니까요.”

그의 논리는 이렇다. 국민연금은 거대한 고래다. 시장에 이보다 더 큰 고래는 없다. 이 고래는 일정 비율을 정해놓고 투자한다. 주식값이 떨어질 땐 그 비율을 맞춘다며 시장에 돈을 계속 집어넣는다. 반대로 주식값이 오르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정해진 비율을 넘어버리기 때문에 팔아야 한다. 그렇게 돈을 넣고 빼고 하다 2040년대 중반쯤 되면 한 푼도 남김없이 몽땅 팔아야 한다. 그 시점이 되면 연금 자체가 고갈되기 때문이다. 이 고래 한 마리에 주식시장이 요동치는 것이다. 당장 요즘 지수가 1400선에서 치고 올라가지 못하는 주 원인도 국민연금의 매도물량 때문이다. 12일자 조간신문에 따르면 국민연금공단 박해춘 이사장은 이를 “차익 실현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박 원장의 시각은 그게 아니다.

“국민연금의 주식투자가 잘못되었다는 게 아닙니다. 왜 비율을 정해놓고 하느냐 이거죠. 제가 아는 한 세계 어느 나라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국민연금은 그걸 마치 위험 분산인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시장이 하락할 때 떠받쳐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 져주는 바둑을 두는 게 아닌가 싶어요. 양두구육(羊頭狗肉) 같다는 거죠. 국민연금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강제적 연금이기 때문에 성격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인간 박경철에 대해 이모저모 파헤쳐볼 시간이다. 그는 지금도 자신을 유명하게 해준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불리지만 더 이상 주식전문가만은 아니다. 매일 아침 2시간씩 라디오방송, 주 1회 TV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송인이고, 신문·잡지에 고정칼럼을 15개 쓰는 칼럼니스트다. 전국을 누비며 하는 강연이 월 평균 30건이고, 토요일엔 안동의 병원에 내려가 진료한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정력과 실력이 나오는 걸까.

욕심이 너무 많은 것 아닙니까.
“두 가지 때문인데요, 하나는 누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저의 모질지 못한 성격 탓이고, 다른 하나는 저의 역량을 남들이 과대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저에 대해 거품이 끼어 있는 것입니다. 제가 사투리도 쓰고 비디오(얼굴)도 안 되는데 의사가 나와 주식과 경제를 얘기하니까 신기해서 좋게 보아주는 것 같아요. 저는 이를 늘 잊지 않으려 해요.”

그래도 그 많은 일정을 어떻게 다 소화하나요.
“2000년 0시를 기해 다섯 가지를 끊었습니다. 술 담배 골프 여자 도박입니다. 여기서 여자는 유혹, 도박은 부당한 이득을 뜻합니다. 이중 금연이 마지막까지 잘 안 되더군요. 그래도 술 안 먹고 골프 안 하고 딴 마음 안 먹으니까 시간이 많이 남아요. TV는 원래 안 보았고요. 그 시간에 책 보고 글 쓰고 하는 거죠. 매년 10월 책 한 권씩 내는 게 제 목표기 때문에 매일 200자 원고지 20~30장 분량의 글을 써서 따로 저장해둡니다.”

그는 묻는 말에 있는 그대로 답했을 뿐이지만 듣는 기자는 기가 죽는다. 명색이 글 쓰는 직업을 가졌으면서도 매일 20장씩 쓴다는 것은 상상도 못해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가외로 한다니. 그가 덧붙이는 말 한마디가 그나마 위안이 된다.
“저에겐 그게 일이 아니고 놀이예요.”

인터넷에 ‘박경철’이라고 쳐보니 훌륭한 분이라는 찬사가 줄을 잇더군요. 그중에 “그분은 병원 외 강연 같은 일로 버는 돈은 전액 기부한다”고 돼 있던데 사실인가요.
“신화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산해낸 저에 대한 거품입니다. 누구나 기부는 하고 삽니다. 액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잖아요. 가수 김장훈씨의 몇십억 기부도 훌륭하지만 김밥 할머니의 1000만 원 기부는 더욱 소중합니다. 그외 이름없는 분들의 아름다운 기부가 밤하늘의 별처럼 많을 거예요. 내 자리에서 눈곱만큼 하면서 기부한다고 하면 그분들에게 부끄럽습니다.”

<글·이종탁 출판국 기획의원 jtle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