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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온라인 커뮤니티 ‘저항의 본거지’

[커버스토리]온라인 커뮤니티 ‘저항의 본거지’

2009 06/30   위클리경향 831호

지난해 촛불시위 때 거리에 쏟아져나온 수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고, 또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의문을 풀 열쇠말은 ‘커뮤니티 네트워크’라고 말한다. <김정근 기자>

촛불집회와 노무현 추모제를 거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는 일상 속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대표적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취미나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생긴 커뮤니티가 정치적 의사표현의 장으로 발전한 것이다. 온라인 유명 커뮤니티는 왜 이명박 정권 반대에 나섰을까? 온라인 커뮤니티 관계자들은 “진보나 보수와 같은 정치적 이념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합리성 문제”라고 말한다. 커뮤니티와 네트워크에 기반한 21세기 저항의 실천은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가…

시작은 채팅이었다. 누가 처음 제안했는지는 모른다. “운영자에게 쪽지를 보내 해도 괜찮은지 물어보겠다”고 했다. 그후 일이 그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디자인 시안도 여럿 나왔다. 최종 시안은 ‘꿈·희망·용기·사랑·19460806~20090523…’ 등의 타이포그래프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을 형상화한 회원 작품이 선정됐다.

08학번 대학생 김태현씨는 1989년생이다. 80년대나 90년대 초반의 운동권 문화를 접해본 적 없다. “옛날로 돌아가는지는 모르지만, 엄청나게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은 느끼고 있습니다.” ‘독재정권으로 회귀’라는 말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김씨는 ‘듀나의 영화낙서게시판’(듀나게시판)이라는 커뮤니티에서 ‘慌戇戰士욜라세다’라는 대화명으로 활동한다. 그가 ‘총대’를 맨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광고는 5월 29일자 경향신과 한겨레에 실렸다. 커뮤니티 회원들은 자신들의 모금으로 만든 광고가 실린 이 날짜의 신문을 기념으로 보관하고 있다.

김씨가 이 커뮤니티에 가입한 것은 2006년이다. 고등학생 시절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에니메이션에 대해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는 것이 가입 이유다. 김씨가 요즘 올리는 글은 주로 시국과 관련된 글이다. 고등학교 때도 그랬지만, 정작 이 게시판을 떠나서는 주변 사람과 자신의 관심사를 나눈 적은 거의 없다. “어딘가에 참여한다는 것이 여유가 안 되기도 하고, 저 스스로도 대학 내 단체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보니….”

다양한 커뮤니티의 노 전 대통령 추모
클리앙의 전 운영진이었던 김상윤씨(34·문화기획자)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추모광고 제안서를 올린 뒤 3일 만에 2300여만 원이 모였다. 총 780여 명이 참여했다. 액수는 다양했다. 100만 원부터 460원을 낸 사람까지. 김씨는 말했다. “심지어는 날짜를 잊지 않겠다고 5만2900원(편집자주: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린 5월 29일을 상징하는 액수)을 낸 사람도 있었고, 이명박 대통령의 퇴임 일까지 남은 일 수만큼 돈 내신 분도 있습니다.”

그간 정부여당은 ‘다음 아고라’를 인터넷 여론의 중심으로 주목해왔다. 한나라당이나 보수단체의 ‘소통’ 대상도 아고리언만 지목했다. 하지만 이것은 반쪽짜리 진실이다. 토론게시판 아고라의 배후에는 더 거대한 정체불명(?)의 커뮤니티들이 있었던 것이다.

첫 단서는 지난 노무현 대통령 서거 영결식 때 광고를 낸 모임들이다. ‘듀나의 영화낙서판’ ‘클리앙’ ‘베이스볼파크&MLBPark’ ‘SLRclub’ ‘PGR21’‘DVD프라임’…. 온라인에 정통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대부분 생소한 이름이다. 커뮤니티의 성격이나 관심사도 판이하다. 영화, PDA, 야구, 사진, 프로그램, DVD.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렸던 5월 29일,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경향·한겨레 등 진보매체에 낸 추모광고들. DVD프라임, 클리앙, 듀나의 영화낙서게시판(위쪽부터).

베이스볼파크&MLBpark, 뽐뿌&SLR클럽&82cook (위쪽부터).

얼핏 보면 시사나 정치사안과 무관할 것 같은 이들 온라인 커뮤니티가 왜 목소리를 내게 되었을까.
이들 커뮤니티가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촛불시위 당시 진보매체에는 이들 명의의 촛불시위 지지 광고가 줄을 이었다. 오프라인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촛불시위 당시, 사진동호회 SLR클럽의 활동은 두드러졌다. 현장 곳곳에는 ‘Press 시민기자단’이라고 적힌 파란 완장을 찬 이 커뮤니티 회원들이 있었다. 실제 지난해 촛불시위와 관련해 인터넷 곳곳에 퍼져 있는 ‘작품사진’ 중 상당수는 이들이 생산한 것이다. SLRclub에서 ‘자게아빠’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허민우씨(29·여행사 운영)는 지난해 5월 26일, 이 커뮤니티 회원들에게 활동을 제안했다. “25일이던가요? 경찰의 폭력진압이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시민들이 구타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언론사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는 또 그렇게 심하게 하지 못하더라고요. 우리가 나가서 사진을 찍으면 그렇게 하지 못하겠구나, 그런 생각에 제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날은 5월 31일. 공교롭게도 청와대 앞 통의동·동십자각 입구에서 최악의 충돌이 있었던 날이다. 이날 경찰의 진압장면은 시민기자단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충격이었죠. 거의 10월까지 매일 기자단이 나갔습니다. 8월 15일이던가 ‘촛불집회를 중단하겠다’ 하던 날도 나가고…” 시민기자단의 활동은 그해 연말, 그리고 용산 참사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SLR클럽 회원 중에는 언론사 사진기자 못지않게 고가의 장비를 사용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장비가 부서지고 폭행당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재산상 피해는 가늠할 수 없고, 실제로 시민기자단 활동하다 연행되어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습니다.”

시민기자단이 거리에 나간 이유는 시위대와 전경 양쪽의 인권보호였다. 본의 아니게 활동이 계속 이어지면서 언론이 못하는 기능을 대신하기도 했다. 지난 6월 2일, PD수첩은 ‘봉쇄된 광장, 연행되는 인권’이라는 꼭지명으로 경찰폭력 문제를 다뤘다. 여기에 등장한 명동 진압 장면은 SLR클럽 시민기자단이 동영상을 찍어 제공한 것이다. “모든 시민기자단이 고가의 장비를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현장에 나가보면 흔히 ‘똑딱이’라고 부르는 보급형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나오는 고등학생도 있었어요.” 허씨가 현장에서 자주 만난 ‘시민기자단’멤버는 40여 명. 지난해 촛불시위에 시민기자단으로 참여한 연인원은 4000여 명이었다. 적지 않은 수다.

다음 카페 ‘한류열풍사랑’(한열사)은 지난해 촛불시위 때 처음으로 깃발을 만들어나갔다. 2002년 촛불시위 등에서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적은 있지만 공식적으로 나간 것은 처음이다. 이 카페의 대표운영자인 이현배씨(광고마케팅업·34)는 “촛불집회 참여를 제안했던 사람들은 이전부터 정모나 번개 등의 행사를 통해 얼굴을 익혔던 사람들”이라며 “이런 사람들이 같이 나가자는 글을 올리면 대부분 혼자 나가기 힘들었던 회원들이 결합하는 식이었다”라고 밝혔다.

유명 카페 대부분 ‘안티이명박’ 성향
20만 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는 한열사는 다음에 개설된 카페 중 열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한 커뮤니티다. 하루 방문자가 적게는 5만 명에서 많게는 30만 명이다. 이씨는 엽기혹은진실(엽혹진), 아이러브카페 등 다른 거대 카페들의 상황도 거의 같은 분위기라고 말한다. “일단 하나의 관심사로 모인 사람들이지만 공통된 관심사 이외에 살아가는 이야기, 생활에 대한 이야기, 시사뉴스에 대한 이야기가 안 나올 수 없습니다.”

지난해 촛불시위 때 거리에 쏟아져나온 수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고, 또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의문을 풀 열쇠말은 ‘커뮤니티 네트워크’라고 말한다. “촛불시위를 보면 예전 집회시위처럼 잘 조직된 거대단체를 중심으로 그 사람들이 주도하고 지도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한편으로 원자화된 군중의 집합체도 아니었다. 그 중간에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커뮤니티가 일종의 모자이크처럼 구성한 ‘촛불의 바다’를 구성한 것이었다.”

이 커뮤니티 네트워크는 다양한 목적과 관심을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공동체적 성격을 가졌다고 그는 풀이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사회운동이나 저항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 ‘관계맺음’의 방식으로 이미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5월 28일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서 만화가들이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에 내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정지윤 기자>

신 교수는 “이명박 정권 들어 만들어진 정치 상황에 있어 저항의 사회적 자원처럼 변모한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네트워크는 인터넷뿐 아니라 휴대전화나 넓은 의미의 커뮤니케이션과 사회적 관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사회적 조건의 성숙을 전제로 한다. “촛불시위와 같은 국면에서 이 네트워킹은 굉장히 집중적인 동시에 확장되었다. 한국사회는 이미 대면관계를 뛰어넘는 네트워킹이 보편화된 사회로 진입했다. 어떤 정치적 통제로도 꺾을 수 없는, 상당 부분 불가역적인 사회 변동이 이미 일어난 것이다.”

커뮤니티 참가자들은 이명박 정부가 이 ‘촛불의 내적 동학’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초를 구입한 자금은 어디서 났는지 밝혀라’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나 ‘촛불시위는 반정부적 입장을 가진 386좌파의 배후조종·선동에 의해 일어난 것’과 같은 일부 보수매체의 관점이 대표적이다.

“쉽게 말해 우리를 바보로 보는 것이죠.” 베이스볼파크 운영진을 맡고 있는 정진탁씨(39·영상제작 프리랜서)는 커뮤니티 회원들은 “이미 수년 이상 민주적 토론과 논쟁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이고, 커뮤니티 자체가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스볼파크은 지난해 말 만들어진 신생 커뮤니티다. 베이스볼파크의 모태는 2000년 초 개설된 동호회 MLBPark다. 박찬호 선수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계기로 만들어진 야구온라인 동호회였다. 지난해 촛불시위 당시 MLBPark는 동아일보 관계사인 동아닷컴 아래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반대 광고를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내고, MLBPark의 깃발을 만들어 나갔다. 당시 “왜 동아일보 밑에 있나”라는 내부의 문제제기와 운영을 둘러싼 마찰 등을 계기로 3000여 명의 회원이 ‘엑소더스’해 탄생한 것이 베이스볼파크다.

“촛불 안되면 휴대전화 촛불 어떠냐”
정씨에 따르면 과거의 MLBPark, 그리고 지금의 베이스볼파크를 구성하는 핵심연령층은 20대와 30대다. “사실 지금의 2,30대는 80년대·90년대의 학생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평소에 중구난방의 토론이 많이 벌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더 합리적이고 논리적 의견이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촛불집회의 참가도 그런 과정을 거쳐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입니다. 우리 사이트에서도 많은 토론이 이뤄졌고, 주체적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배후조종설과 같은) 그런 논리에 동의하는 사람은 100명 중 한두 명이 있을까 말까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커뮤니티의 서로 다른 관심은 촛불집회와 같은 단일한 이슈와 만나 다양하게 만개한다. 듀나게시판 회원들은 지난 촛불집회 당시 ‘과식투쟁’을 벌였다. 사회단체 중심의 비장한 단식투쟁과 달리, 광화문과 청계광장에 먹을 것을 싸들고 나가 돗자리를 깔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의 ‘투쟁’이었다. 클리앙의 김씨는 문화기획자라는 전공을 살려 최근 상황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디지털 촛불시위’를 제안한다.

“촛불을 못 들면 어떻습니까. 휴대전화에 촛불 그림을 바탕화면으로 까는 거예요. 직접 그려도 되고 다운로드해도 되고…. 사실 지난해 마스코트였던 촛불소녀는 그리기 힘듭니다. 각각이 청계광장에 나가 일제히 휴대전화 폴더를 열어 드는 겁니다.”

일반인의 창발성이 하나 하나 모여 폭발한다. 민경배 경희대 NGO대학원 교수는 앞으로 트리처럼 점멸하는 네트워크형 운동이 점차 대세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전원플러그를 꼽듯 생활형 이슈가 제기되면 순식간에 네트워크가 조직되고 행동에 나서는 한편, 이슈가 해소되면 전원이 불이 꺼지듯 사라지는 일종의 ‘플래쉬몹’ 같은 형태로 운동이 진화할 것이라는 것이다. ‘언소주’의 활동이 단적이다. 기존에 언론단체가 없던 것은 아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언련과 같이 기존 단체가 커버하지 못하는 대중적 저항을 시민들의 자생적 온라인커뮤니티 단체가 만들어낸 것이다.
지난해 6월 10일, 100만 촛불행진에 참여한 다음 카페 한류열풍사랑 회원들이 경향신문사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네트워크와 창발성에 기초한 새로운 형태의 운동 출현은 이미 전 세계적 현상이다. 정보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은 그의 책 <정체성 권력>에서 인터넷에 기반한 온라인 운동은 “거리에서 연회와 축제는 관료주의적 통치의 격리와 소원함을 창조성의 환희와 공적 공간의 공유로 대체하는, 삶과 의미에 대한 대안적 기획의 표현방식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거리되찾기단체’나 미국의 ‘예술과 혁명운동’과 같은 단체가 선구적으로 보여준 실천양식이다.

시민단체도 배울 것이 있다. 민경배 교수는 지난해 촛불시위에서 거의 유일하게 일관된 지지를 받은 종전 사회단체가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었는데, 그것은 민변이 스스로 역할을 서포터즈로 설정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경기에 비유한다면, 종전에는 시민사회단체 혹은 정당이 선수 역할을 했다. 선수로 시민들이 스스로 나선다면 시민단체들이 같이 선수로 뛸 것이 아니라 역할 조정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검찰이 PD수첩 수사 결과를 발표하던 6월 18일. 역시 대형 커뮤니티인 베스티즈 게시판에는 여러 언론사의 보도가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대부분 댓글 반응은 PD수첩팀을 응원하고 검찰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적어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검찰 수사 발표에 대한 신뢰를 보이는 이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혐짤’이라는 은어가 있다. 혐오스러운 짤림 방지 이미지라는 뜻을 담은 이 ‘혐짤’은 과거 보기 흉한 사고 장면이나 동물 등을 담은 의미였다. 하지만 2009년 6월, ‘혐짤주의’라는 머리말은 이명박 대통령이나 정부 관계자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들어 있다는 의미가 되었다. 왜 온라인 커뮤니티와 이명박 정부는 이토록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일까.

‘Weekly 경향’이 접촉한 대부분 온라인커뮤니티 관계자는 “진보나 보수와 같은 정치적 이념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합리성 문제”라고 말한다. DVD프라임에 고정기고하는 영화평론가 김정대씨(37)는 “DVD프라임의 경우 1차적인 관심은 DVD와 관련된 정보겠지만 영화·책을 많이 읽고 인문학적 소양과 전문적 식견을 쌓은 사람이 많다”라며 “개인적인 선입견이긴 하지만 견문이 넓을수록 가치관이 개방적인 사람이 많은 것 같다”라고 풀이했다. 칼럼리스트 김동렬씨는 ‘인터넷 파워’를 형성하는 원동력은 진보나 보수가 아닌 ‘개인의 권리’라고 주장한다. 지난 10년간 쌓아온 ‘개인의 권리’에 대한 침해에 맞서 법·제도 그리고 시민사회 온·오프 영역에서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권력’과 싸움이 현재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진중권과 노무현과 같은 유명인을 중심으로 한 신물결이 ‘제1파’라면 지금은 전혀 다른 제2파가 닥치는 중이다. 그 중심에는 유명인 팬클럽 형식이 아닌 블로그나 네트워크·커뮤니티가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진보·보수 아닌 상식과 합리성 싸움”
커뮤니티의 정치적 진화는 계속된다.
듀나의 영화게시판에선 지난 6월 13일, 시국좌담회를 열었다. 90년대 후반 커뮤니티 개설 후 최초의 오프라인 정치행사다. 참여 회원들은 스스로 회비를 걷어 장소를 대여했고, 패널토론을 진행했다. 시국좌담회를 제안·진행한 닉네임 nishi씨는 이 모임의 ‘쪽지’ 기능을 사용한 인터뷰에서 “문화적 이슈가 1순위였지만, 이전부터 사회적 이슈는 게시판에서 계속 다뤄져 왔다”며 “(이명박 정부에 대한 듀게 회원들의 폭발적인 비판은) 구세대의 부정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주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망. 신진욱 교수는 현재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광장집회나 거리시위와 같은 정치행동은 대한민국 역사에 비춰보면 1960년대 초반부터 일반화된 유서 깊은 저항행위다. 그 측면에서 보면 위축된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커뮤니티와 네트워크에 기반한 실천은 21세기적 현상이다. 이 저항의 기초는 현 정권의 통제에 의해 위축될 수 없는 부분이다. 그 차원에서 비판적 여론의 거대한 저수지가 계속 재생산되고 있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이 ‘저항의 수원지’를 모르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