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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체계/상상력

가장 창의적인 조직은 ‘생각하는’ 조직

가장 창의적인 조직은 ‘생각하는’ 조직 LG경제연, 생각의 힘이 곧 기업과 국가경쟁력 2010년 10월 20일(수)

창의성의 현장을 가다 “전 세계 사람들은 하루에 몇 판의 피자를 먹을까?”, “골프공에는 몇 개의 구멍이 있을까?”, “후지산을 어떻게 옮길 수 있을까?” 다소 황당해 보이는 질문이지만 마이크로소프트사를 비롯한 주요 회사들은 최근 신입사원 면접에서 이 같은 질문들을 하고 있다.

이런 유형의 질문들을 통해 회사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얼마나 잘 대답하느냐가 아니라 (순간적으로) 던져진 질문에 대해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다. 가능한 한 순발력 있는 신입사원을 채용, 조직 전반에 걸쳐 ‘생각의 힘’을 키우자는 것이다.

생각의 힘은 창의적 아이디어가 분출되는 샘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창의성은 어느 날 문득 섬광처럼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깊이있게 고민하고 생각을 해야만 나타나는 것이다. 더구나 이 창의성은 개인보다 집단일 때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GSK 경영자들의 임무는 의사소통 중개

‘Group Genius’의 저자인 키스 소여(Keith Sawyer) 씨는 “창의성은 천재적인 개인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협력을 통해 나타난다”고 말했다. 구성원들의 생각의 힘이 강한 기업일수록 그 조직의 생각의 힘도 질적으로 높아져, 놀라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 글라소스미스클라인(GSK) 직원이 업무 시간 중에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글로벌 제약회사인 글라소스미스클라인(GSK)은 기업 내 ‘생각의 힘’을 키우기 위한 독특한 인사배치 방식을 선보였다.

경영자들로 하여금 기업 내에서 지식 중개인 역할을 맡긴 후 이들을 계열사나 다른 근무지에 교차 발령하는 것이다. 이는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 공통된 관심사를 이야기하고 타 분야의 지식을 소스로 적용할 수 있도록 생각의 힘을 키워나갈 수 있는 기업 환경을 조성해나가고 있다.

독일 지멘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순환배치를 통해 경영자들은 재무와 마케팅처럼 전혀 다른 종류의 업무를 번갈아 수행하게 된다. 경영진부터 생각을 확장하고 다양화해야 한다는 회사 방침에 따른 것이다.

최근 외국계 컨설팅 회사들 중에는 전공과 관계없이 컨설턴트를 뽑는 회사도 있다.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은 모든 것을 경영학이라는 관점에서 보지만 음악, 공학, 교육학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더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생각들을 공유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믹피어스(Mick Pearce)는 이 원리를 너무 잘 아는 인물이다. 사람들은 최고 기온이 섭씨 38도에 이르고, 최저 기온이 섭씨 5도까지 내려가는 호주 멜버른에 에어컨 없는 건물을 설계해 가장 창의적이고 친환경적인 건축가로 이름을 날린 건축가다. 멜버른 제2청사인 이 건물은 에어컨이 없어도 실내 온도는 24도를 유지하고, 같은 규모의 건물에 비해 냉방용 전력이 10%에도 미치지 않는다.

흰개미와 사람피부에서 얻은 건축 아이디어

흥미로운 것은 이런 아이디어를 흰개미와 인간 피부에서 얻었다는 사실이다. 자연이나 생태학 등을 공부하면서 흰개미가 집을 어떻게 짓는지, 그리고 사람의 피부가 어떻게 체온을 유지하는지 그 원리를 파악한 후 그 원리들을 자신의 건축물에 적용했다. 종전의 건축가들처럼 건축만 생각했다면 멜버른의 놀라운 건축물은 아직까지도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 건축가 믹피어스(Mick Pearce) 
최근 교육계에서는 ‘자기주도 학습(Self-Directed Learning)’이 부각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급속한 변화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지식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능동적인 학습 역량을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인 역시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 속에서 능동적이 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기업은 소수의 리더들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일본의 경영 컨설턴트인 오마에 겐이치는 그의 저서를 통해 “일본에는 ‘생각 없는 인간’이 놀랄 만큼 증가했으며, 그 결과 집단으로서의 일본인의 지능은 현저히 떨어졌다”고 우려한 바 있다. 이는 곧 상명하달식의 기업 풍토가 계속 이어진 결과다.

LG경제연구원 박지원 책임연구원은 “조직에 있어 ‘생각의 힘’이 약한 것은 오랜 기간 동안 조직원들이 생각하는 방법을 훈련받지 못했거나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본 경험이 많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학교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거나 교과서를 달달 외우는 암기식 교육을 받은 경우 사고능력은 곧 한계를 보일 것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는 환경 역시 금물이다. 개인의 머리 속에서 생각이 끊임없이 맴돌고 있다 하더라도 정작 이를 표출하지 않는다면, 이는 조직 차원에서 생각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생각이 있어도 말을 하지 않게 되고 그러다 보니 “생각해 봤자 소용없다”는 무기력감을 학습하게 돼, 점차 생각조차 안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진다고 말했다.

생각의 힘이 위축되는 또 다른 원인은 근본적으로 생각을 확장시키는 힘이 부족한 경우다. 지금과 같이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 속에서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 즉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낼 수 있는 생각들이 필요하다. 조직은 항상 “뭐 새로운 생각 없어?”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렇게 경쟁력 있는 새로운 생각은 잘 창조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 일본의 경영 컨설턴트인 오마에 겐이치는 자신의 주위 밖에 보지 않는 현대인들의 좁은 시야 때문에 사고의 정지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기업 내 구성원들의 업무 형태를 보면 대개의 구성원들은 관련 업무 영역 내에서, 내가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만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전혀 다른 지식 기반의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할 기회도 부족하거니와 그런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비슷한 지식이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게 되면 동질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 생각이 확장되기 어렵다.

CEO 묻고 기다리며 열심히 들어야

새로운 생각에 대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태도도 생각의 확대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새로운 생각은 첫 시도라는 점에서 실패의 가능성을 안기 마련이다. 그런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면 기존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생각을 하고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결국 조직은 창조적이고 확장된 사고를 하기보다 틀에 박힌 사고에 갇혀 의사결정을 하는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 마이크로소프트 구인 사이트 
단번에 파악하기 어렵고 어떤 의미에서 다소 황당한 수량에 대해 추정 논법을 사용해 단시간에 대략적인 개수를 산출하는 방법을 ‘페르미 추정’이라고 한다. ‘페르미 추정’은 정답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런 페르미 추정도 반복적 연습을 통해 후천적으로 강화시켜나갈 수 있다.

박 책임연구원은“ 조직에 있어 ‘생각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리더에서부터 끊임없이 구성원들의 생각을 자극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일방적으로 업무의 방향을 지시하거나 원하는 결과를 제시하기에 앞서 구성원들에게 생각할 문제를 던져줘야 한다는 것. 실제로 GE의 리더들은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에 대한 교육을 받고 구성원과의 커뮤니케이션에 활용하고 있다.

질문을 던진 후에는 구성원들이 충분히 생각할 만큼 여유를 줄 필요가 있다. 혁신적 발명품을 개발한 AT&T의 벨연구소는 “위대한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공식적인 기업 철학을 갖고 구성원들에게 성과를 독촉하거나 업무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 책임연구원은 마지막으로 “생각의 소통이 자유롭게 일어나기 위해서는 리더가 말하기보다 주로 듣는 역할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회의 참석자들에게 발언의 기회를 많이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책임연구원은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 자유롭게 발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리더도 함께 논의에 참여해 구성원들의 생각을 계속 자극시켜나가야 한다며 이때 리더가 가르치려고 한다든지, 윗사람으로서 지적하고 비판하는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강봉 편집위원 | aacc409@naver.com

저작권자 2010.10.20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