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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엄용수 한국방송코미디협회장 [연합]

[인터뷰] 엄용수 한국방송코미디협회장 [연합]

2010.08.22 07:49 입력 / 2010.08.22 09:44 수정

`원로 코미디언 복지 향상ㆍ코미디언 화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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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구봉서 선생님이 할아버지였고, 배일집 형은 아버지였어요. 제가 큰 형이라면, 조금산이나 이봉원이는 동생이었죠. 그때는 정말 가족처럼 살았어요. 아직 아이디어가 여물지 않은 친구는 포졸도 했다가 행인도 했다가, 그러다가 나중에 크게 터트리기도 하고요."

한국방송코미디협회 회장인 코미디언 엄용수(57)가 돌아보는 1980년대 전후 코미디의 전성시대다.

이전에는 친목단체였던 한국방송코미디협회를 지난 4월 사단법인으로 출범시킨 그는 사비를 털어가며 협회를 이끈다.

코미디언들이 협회를 만들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 것은 연예계 다른 직종 종사자들이 대한가수협회나 한국방송연기자협회 등을 일찌감치 출범하며 활발한 활동한 데 비하면 한참 늦다.

최근 서울 여의도에 있는 협회 사무실에서 가진 엄용수와의 인터뷰는 과거 "좋았던 시절"의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그가 목소리를 높여 강조하는 것은 "코미디언의 화합"이었다.

그는 "시사 코미디의 발전을 위해서 가요계에 '7080 붐'이 일었던 것처럼 성인 코미디가 부활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코미디계의 발전과 원로 코미디언의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에는 왜 자니 카슨ㆍ빌 코스비 없나 = 엄용수는 코미디언들이 뭉쳐야 하다며 '웃음이 대우받는 문화적 분위기'와 '코미디언들의 지속적인 자기 계발'이라는 거창하지만 설득력 있는 이유를 들었다.

"미국은 재벌 상위 100등 안에 매년 코미디언이 3~4명 정도는 있잖아요. 자니 카슨도 재벌이고 빌 코스비도 매년 소득 상위에 랭크돼 있고요. 미국은 '웃기는 사람'이 부자예요. 유머를 비싸게 쳐주는 문화가 있는 거죠. 그래서 경제나 정치 같은 딱딱한 자리에도 유머가 있는 것이고요."

그는 한국의 경우 "드라마의 한류 스타 1명이 받는 개런티는 3억원까지 치솟지만 개그맨은 기껏해야 편당 800만원 정도가 최고"라고 지적했다. "개런티가 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은 인정하지만 정도가 심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편당 800만원은 그나마 톱스타의 경우지, 다른 코미디언들은 비슷한 급의 가수나 연기자들에 비해 너무 형편없는 대우를 받아요. 웃음을 주기 위해 들이는 노력에 비해 적은 대가를 받는 것이 오랜 관행으로 굳어진 거죠."

1981년 데뷔한 엄용수는 올해로 데뷔 30년째다. "매주 급급하게 살며 멀리 보는 장기적인 노력이 없었다"고 회고하는 그는 "후배 개그맨들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장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동안 데뷔 이후 방송을 1주도 안 쉬었어요. 제가 이혼을 두 번이나 했는데 이혼한 주에도 방송을 했거든요. 도대체 30년을 뭐로 웃겼는지 모르겠습니다. 공부하는 시간도 갖고 여유도 가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거든요. 지금도 후배들에게는 '멀리봐라', '책을 읽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정작 당장 다음주 아이디어가 없으면 방송에 못나가는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이야기죠."

◇원로 코미디언 복지대책 '시급' = 엄용수는 코미디언들이 뭉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원로 코미디언들의 복지 대책 마련을 꼽기도 했다.

"희극인들이 무슨 연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우가 그렇게 좋았던 것도 아니었으니 노후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선배 중에서 재테크로 노후 대책을 마련한 분도 계시지만 한 때 이름이 있던 분 중에서는 단칸방에 살며 경로당을 도는 분도 있거든요.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노조 회비 중 극히 일부로 1년에 50만원 정도 보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장기적으로 기금을 마련해 코미디언들의 노후 대책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그는 최근 백남봉이 세상을 떴을 당시 빈소의 모습이 희극인의 단합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말했다.

활동하는 방송사도, 영역도, 연령대도 다르지만 빈소에는 선후배 개그맨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장례식 때는 방송 3사의 개그맨 후배들이 함께 운구하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엄용수는 "앞으로 다양한 사업을 통해 희극인이 서로 어울리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그다음에 코미디에 대한 인식도 바꾸고 각자가 미래를 위해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분위기도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데뷔할 때에는 개그맨 30명이 안 될 때였는데 지금은 우리 협회에 등록된 희극인 수만 700명이 넘어요. 지금은 연령대도 10대 후반부터 80대까지 넓은 데다 소득도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또 방송사별로 제각각으로, 서로 어울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체육대회도 하고 경조사가 있을 때 함께 모이기도 하면서 단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코미디 살려면 성인ㆍ시사 코미디 부활해야 = 엄용수는 지난 5월 MBC 예능프로그램 '놀러와'에 황기순, 김정렬, 김학래 등 동년배의 코미디언과 함께 출연했다.

저녁 시간대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들의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은 젊은 개그맨들에게 뒤지지 않은 입담을 과시했고 이날 방송은 온ㆍ오프라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엄용수는 리얼 버라이어티나 젊은 연령대의 개그맨이 등장하는 공개 코미디, 토크쇼로 나뉜 최근의 예능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본다"면서도 "성인 코미디가 사라진 탓에 시사와 풍자는 찾기 힘들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짧고 가벼운 웃음을 주는 코미디는 있지만 성인들이 보고 즐길 만한 시사성 강한 코미디는 보기 힘들어졌다"며 "1970~80년대 노래들이 '7080 가요프로그램'을 통해 살아났듯 방송에서 설 자리가 생기면 성인 코미디가 부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전에 '유머1번지'에서 김형곤 형이랑 '회장님, 우리 회장님' 했었잖아요. 그때는 민감한 내용이 담기면 방송사의 윗분이 녹화된 테이프를 우리가 보는 앞에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했어요. 그래도 우리는 어떻게든 시사적인 내용을 개그로 표현하려고 했고 시청자들은 또 그걸 기다리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그는 "'유머1번지'나' 청춘만세', '명랑극장, '웃으면 복이와요' 같은 프로그램들을 기다리는 성인 코미디의 팬도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드라마 5편을 만들면 성인 코미디를 1편은 방송해야 하는 식으로 성인 코미디를 육성하는 방안을 제도화하려고 해요. 협회 차원에서 성인 코미디에 대한 수요가 어느 정도인지 조사를 벌일 계획이고요. 코미디는 '소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손자부터 할아버지까지 3대가 모두 모여서 함께 볼 수 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