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심층체계/상상력

꿈과 현실, 과학적 상상력을 만나다 흥행질주 '인셉션'의 Inception은?

꿈과 현실, 과학적 상상력을 만나다 흥행질주 '인셉션'의 Inception은? 2010년 07월 30일(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평단과 대중의 놀라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개봉 7일 만에 150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는 인셉션(Inception)의 사전적 의미는 ‘개시, 시작’이다. 도대체 무엇을 개시하기에 영화 제목이 인셉션일까? 


영화속 인셉션, 드림머신…림보…킥…토뎀

영화 인셥션에서 개시는 다른 사람의 꿈 속에 들어가는 첫 번째 단계를 의미한다. 꿈을 꾸었는지 안 꾸었는지도 잘 기억도 안 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꿈 속에 들어갈 수 있을까? 여기에는 ‘드림머신’이라는 기계가 등장한다. 코브와 피셔가 같은 공간(비행기)에서 꿈을 꾸고 서로 드림머신이라는 기계로 연결돼  꿈에서 이들은 서로 만나게 된다.

아찔한 것은 꿈에서 만난 사람들이 꿈 속에서 다시 꿈을 꾸면 또 다른 꿈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꿈의 단계라고 하는데, 현실이 1단계라면 처음에 꾸는 꿈은 2단계이고 2단계 꿈에서 꾸는 꿈은 3단계가 된다. 최종 단계는 림보라는 무의식의 세계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애초 3단계의 꿈을 디자인하려고 한다.

자, 이제 타인의 꿈에 들어가는 것에 성공했다. 꿈에서 코브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이들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려고 한다. 목표 인물인 피셔(킬리언 머피)를 꿈에서 만난 코브 일행은 꿈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피셔와 접촉,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상황을 조작한다.

코브 일행은 거대 에너지 회사의 후계자인 피셔로 하여금 아버지가 이룩한 에너지 제국을 분할하도록 인식을 전환해달라는 제안을 라이벌 에너지 회사의 사이토(와타나베 켄)로부터 의뢰 받는다. 코브 일행은 피셔 아버지의 임종 직전, 아버지가 피셔한테 “네가 나처럼 되려고 노력한 것에 실망했다”라는 유언을 듣고 피셔가 회사를 쪼개기로 마음을 바꾸는 것으로 꿈의 세계를 설계한다.

어렵게 임무를 완수한 코브 일행은 어떻게 이 꿈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코브는 이미 꿈의 마지막 단계인 림보 단계까지 왔는데, 림보에서 탈출을 해야 순차적으로 4단계, 3단계, 2단계, 그리고 1단계인 현실로 돌아 올 수 있다.

코브 일행이 꿈을 깨는 방법은 ‘킥(kick)'이다. 의자에서 잠을 자는데, 누군가 의자를 걷어차면 깜짝 놀라 꿈을 깨듯이 킥이라는 방법이 이용된다. 꿈을 꾸고 있는 이들은 어떻게 이 같은 킥 신호를 인지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전설적 여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명곡 ‘아니,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란 노래가 사용된다. 코브 일행은 작전 개시 전에 이 노래가 들리면 킥 신호라고 훈련을 받았다.

▲ 3단계 호텔에서 무중력 상태를 경험한다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가 들리면 킥을 알리는 신호이고 이제 코브 일행은 킥을 실행해서 잠에서 깨야 하는데, 잠을 자고 있는 이들에게 누가 킥 신호를 보낼까? 때문에 각 단계별 꿈에서 일행 중 한 명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호텔에서 꿈을 꾸는 3단계는 2단계의 꿈인 자동차 질주에서 자동차가 강물로 떨어지면서 일시적 무중력 상태가 된다.

호텔방에서 둥둥 공중을 떠다니는 이들을 깨우기 위해 아서(조셉 고든 래빗)는 일행을 엘리베이터 안으로 끌고 간다. 아서는 엘리베이터 줄을 끊음으로써 자유낙하를 유도한다. 떨어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꿈을 꾸고 있는 다른 일행들은 그 충격으로 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코브는 킥을 통해 1단계인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그런데 여기가 진짜 현실인지, 아니면 여전히 꿈 속인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토뎀’이라는 조그만 팽이가 사용된다. 코브가 토뎀을 돌렸을 때 무한정 계속 돌면 여전히 꿈인 것이고 멈추면 현실세계다.

영화의 끝자락에서 코브는 이 토뎀을 돌리는데 아쉽게도 멈출 듯 말듯 아슬아슬한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즉 코브가 꿈에 남아있는 것인지 현실세계로 돌아온 것인지는 관객 각자의 상상에 맡긴 셈이다.

현실의 1단계, 과학적으로 가능할까

▲ 꿈 속에서는 도시를 한 번에 부서뜨릴 수 있다 

영화의 줄거리를 파악했으니 이제 현실의 1단계부터 들어가보자. 인셉션의 첫 단계인 드림머신은 현실에서 가능한 것일까? 예상했다시피 현실에서 ‘드림머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신의학적으로 꿈을 비롯해 다른 사람의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면술은 의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방법이다. 다른 사람의 의식을 꿈을 통해서든 다른 무의식 방법을 통해서든 바꾼다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킥에 대해서 살펴보자. 아서가 호텔에서 엘리베이터 줄을 폭파시킴으로써 자유낙하를 유도하는데, 이 때 킥의 충격은 과연 이들이 꿈에서 깨어날 만큼 충분한 크기일까? 현실에는 무중량 상태라는 것이 있다. 무중량 상태는 무게는 느끼지 못하는 상태인데, 엘리베이터 같이 자유낙하하는 물체의 안에 있는 사람은 중력가속도와 같은 가속도를 받으며 운동하기 때문에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무중량 상태가 되면 마치 바이킹을 타고 내려오는 것처럼 오싹함을 느낄 수 있다.

코브의 조작으로 ‘회사를 분할하겠다’고 인식을 바꾼 피셔는 꿈에서 깨고난 현실에서도 그와 같은 생각을 계속 가질 수 있을까? 사람이 보통 잠에서 깨면 꿈을 기억하기도 하고 기억못하기도 한다. 이는 사람마다 다른 것으로 어떤 규칙이나 정형화된 것은 아니다. 때문에 피셔가 꿈 속에서는 인식을 바꿨더라도 현실에서 이 인식을 기억하고 그대로 이행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2단계인 거리 질주에서 코브일행이 피셔를 납치하고 질주하는 차는 갑자기 도심 한복판에 등장하는 기차의 추격을 받는다. 왜 느닷없이 기차가 등장했을까? 이에 대해 피셔의 방어기작이 작동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피셔의 방어기작이란 대기업의 후계자인 피셔의 경우 다른 사람이 자신의 무의식에 들어가서 기밀정보를 빼내는 이른바 ‘추출’이라는 작업에 대비해 피셔가 훈련으로 만든 무의식의 방어기작이다.

이 피셔의 방어기작에 프로이트를 적용해보자. ‘꿈의 해석’으로 유명한 프로이트는 에고(자아)와 이드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이드는 성욕, 식욕 등 인간이 생존하는 데 필수적인 욕구이지만, 이런 이드는 에고에 의해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 만약 너무 이드가 억압되면 결국 폭발하게 되는데, 피셔의 무의식이 코브에 의해 심하게 억압되면서 폭발한 이드가 기차의 형태로 분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실의 2단계, 과학적 상상력의 근원은

다른 사람의 꿈 속에 들어가고 그 꿈에서 또다시 꿈을 꾸는 이 놀라운 아이디어를 감독은 도대체 어떻게 상상했을까? 이제 2단계로 들어가 보자. 고드 셀러 SF 작가 겸 카톨릭대 교수는 지난 22일 열린 제21회 융합카페 ‘과학적 상상력과 SF’에서 작가들이 소설의 아이템을 얻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개인적 선호’를 지적한 바 있다.

즉, 작가 개인이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아이템은 훌륭한 이야기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인셉션의 각본을 쓴 당사자이자 연출을 맡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게 적용해보면 놀란 감독이 어떻게 과학적 상상력을 SF영화로 승화했는지 엿볼 수 있다.

▲ 인셉션의 각본, 연출, 제작까지 맡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놀란 감독은 영화 ‘메멘토’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메멘토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그때그때 얻은 정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문신을 하면서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놀란 감독이 기억과 상실이라는 의식의 세계를 모티브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놀란 감독은 첫 블록버스터 영화인 ‘인썸니아’를 만든다. 인썸니아는 주인공이 백야인 알래스카에서 불면증에 휩싸이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리고있다. 역시 이 영화에서도 놀란 감독을 잠, 불면증이라는 무의식 세계를 모티브로 활용했다.

이후 ‘배트맨 비긴즈’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우뚝 선 놀란 감독은 이 영화에서 역시 의식과 무의식을 모티브로 차용했다. 주인공인 배트맨은 어렸을 적 아버지가 강도에게 살해당한 것을 목격했을 때의 충격과 우물 속에 빠져 박쥐들에게 공포감을 느낀 것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전 세계를 떠돈다.

놀란 감독의 전작들을 살펴보면 의식, 무의식, 기억, 꿈이라는 하나의 일관된 ‘선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놀란 감독은 인셉션의 시나리오를 16살 때부터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셉션은 그가 그동안의 작품에서 갈고 닦은 연출력과 탄탄한 기획력을 바탕으로 의식, 무의식, 기억, 꿈이라는 그의 선호가 빚어낸 마스터피스인 셈이다.

현실의 3단계, 현실의 인셉션

▲ 꿈인지 아닌지를 구분해주는 토뎀 

영화 인셉션이 대중에게 인셥션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마지막 단계로 나아가보자. 영화의 결말에서 주인공 코브가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현실세계로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돌아온 해피엔딩인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기본적으로 감독은 해피엔딩인가, 아닌가의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남겼다.

영화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이 영화가 대중에게 던지는 인셉션은 조금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고드 셀러는 최근 SF계의 이슈 가운데 하나는 인종주의라고 소개한 바 있다. 즉 왜 항상 미국의 백인 남자가 인류를 구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냐는 것이다. 단지 할리우드에서 제작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영화 인셥션 역시 미국 백인 남자인 코브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코브를 도와 꿈을 설계하는 설계자 애리어드니(엘렌 페이지)는 프랑스 파리대의 대학생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은 미국인(미국)이고 주인공을 돕는 조연은 프랑스(EU)라는 설정은 미국과 EU간의 국제관계를 은유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꿈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꾼다’는 설정은 영화에서는 매우 흥미롭고 경이로운 아이디어이지만,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영화를 보고나서 불현듯 조지 오웰의 ‘1984’가 떠오르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조작하고 내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면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세상과 어떻게 다른지 심히 궁금해진다.

인셉션과 유사한 영화로 네티즌들은 서슴없이 ‘매트릭스’를 꼽는다. 매트릭스는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가 가상세계이고 진짜 세계는 기계들이 지배하는 우울한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인셉션이 꿈과 현실이라는 의식과 무의식을 그렸다면 매트릭스는 가상세계와 실제세계라는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를 그린다. 모티브는 다르지만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꿈이든 가상세계이든 누군가에 의해 조작됐다는 점이다. 누군가가 조작한 가상세계에서 주인공 네오는 끊임없이 감시당하고 통제받는다.

현실에서 그 조절자는 과연 누구일까? 판단은 각자 개인의 몫이지만, 알게 모르게 관객의 무의식 속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고집하는 미국적 사고방식이 어떤 방식으로든 인셉션됐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어 보인다.

이성규 객원기자 | henry95@daum.net

저작권자 2010.07.30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