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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체계/상상력

과학적 상상력은 어떻게 대중과 소통할까? 선호, 전통, 대화, 인간애가 비결

과학적 상상력은 어떻게 대중과 소통할까? 선호, 전통, 대화, 인간애가 비결 2010년 07월 23일(금)

1870년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에서 주인공 피에르 나로낙스는 미국 정부로부터 새롭게 등장한 바다괴물을 처치해 줄 것을 요청받는다. 바다괴물 연구를 위해 링컨호에 승선한 피에르 일행은 링컨호와 바다괴물과의 교전 중에 바다에 빠지게 되고, 이후 네모선장에 의해 구조된다. 네모선장은 피에르에게 “당신이 지금 승선하고 있는 ‘노틸러스’호가 바로 바다괴물”이라고 말한다.

미 해군은 SF의 고전 ‘해저 2만리’에 등장하는 가상의 잠수정 ‘노틸러스’의 이름을 따 세계 최초의 핵잠수함 명칭을 USS 노틸러스라고 명명했다. 베른 시대의 사람들은 잠수함을 바다괴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신기해하면서도, 한편으로 공포의 대상으로 여겼다.

SF작가들은 어떻게 과학적 아이디어를 얻을까

SF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베른은 어떤 아이디어와 상상력으로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기술인 잠수함을 배경으로 한 공상과학 소설을 구상할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해답이 있을 수 있겠으나, SF관련 전문가들은 “과학기술과 인문,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공유를 바탕으로 한 창의적인 융합이 밑바탕이 됐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고드 셀러 SF 작가 겸 가톨릭대 교수는 “SF 작가들은 개인적 선호, 문학적 전통, 지역사회와의 대화 등을 통해 아이디어를 채집한다”고 한국과학창의재단 주최로 CGV 강변에서 열린 21번째 융합카페에서 말했다.

▲ 쥘 베른이 당시 획기적이었던 '잠수함'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수 있던 밑바탕에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공유'가 있었다. 

즉 자신의 개인적 선호가 사이버 펑크라면 그와 관련한 연구논문이나 소설 등을 읽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끈이론’과 관련한 소설 집필을 거의 끝마치고 있다는 셀러 교수는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소설의 모티브로 활용할 정도로 끈이론에 대해 공부했다”며 자신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지난해 SF 문학계 최고 권위상인 존 캠벨 신인상에 노미네이트 됐다.

SF 작가들은 과학, 기술 자체에 대한 소재를 바탕으로 소설을 구상하기도 하지만 과학자체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즉 과학이란 부분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흐름과 무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니라고 셀러 교수는 덧붙였다.

이를테면 지금까지 있었던 기록, 과거작품들을 읽어보면서 소재를 찾는 것이다. 이를 문학적 전통이라고 셀러 교수는 소개했다. 또 다른 방법은 작가와 팬이 모여 토론하는 지역사회와의 대화이다. ‘스타쉽 트루퍼스’라는 소설과 ‘영원한 전쟁’이라는 소설은 모두 동일 작가가 쓴 소설이다. 두 작품 모두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 전자를 전쟁에 옹호적인 입장이라면 후자는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동일작가가 전쟁이라는 같은 소재를 놓고 이렇게 상반된 견해의 소설을 쓴 배경은 본인 신상의 변화도 중요했지만 이에 따른 지역사회, 팬들과의 대화 또한 중요했다.

즉 베트남전에 참전한 이후 구상한 영원한 전쟁의 경우, 당시 사회 분위기가 반전의 확산이었고 이와 같은 기류를 작가의 입장에서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공상과학 소설 분야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아이템은 인종주의이다. 왜 거의 모든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에서 백인 미국 남성이 인류를 구할까? 단지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져서일까? 이와 같은 물음에 대해 다각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SF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선정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SF가 돈이 될까?

‘SF작가들이 어떻게 과학적 상상력을 불러오는지’ 알아봤다면 ‘SF가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는지’ 그 현실성에 대해 알아보자.

통계청 사회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책을 읽는다고 응답한 사람들의 평균 연간 독서량은 최근 22.4권에서 17.4권으로 줄어들었다.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애플의 아이패드는 출판문화의 새로운 혁명을 불러와 새로운 전자책시장의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대분의 사람들은 아이패드를 통해 게임, 인터넷 등을 하지 책을 읽지는 않는다.

미국에서 과학소설이 1년에 100권이 출간된다면 한국은 1.75권 정도가 출판되는 수준이다. 고장원 SF평론가는 “책을 잘 안 읽고 문학시장이 어려워지는 가운데, 과학소설은 장르문학으로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매우 열악한 상황”이라며 “더욱이 창작과학소설이라고 하면 들어갈 돌파구가 있을까”라며 회의적인 입장을 표했다.

고 평론가는 침체된 국내 과학소설장르를 활성화하기 위해 몇 가지 제언을 당부했다. 단발적인 출간보다는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시리즈 기획을 통한 시장부양, 청소션 과학소설 시장에 대한 투자, 과학소설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북돋워주기 위한 SF 작가 클럽 결성의 필요성 등이다.

즉 열악한 문학시장에서 창작과학소설이라는 장르가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결국 대중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제 21회 융합카페가 '과학적 SF와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CGV 강변에서 열렸다. 

과학과 SF,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과학과 기술은 사실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픽션으로 다가올 뿐이다. 실제 매일매일 전 세계에서 인터넷에 올라오는 예비논문들을 보면 이것이 과학논문인지 혹은 SF소설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비전공자의 경우 생소할뿐더러 이해하기도 어려운 과학소설을 읽고 감동을 느끼기는 사실 요원한 일이다. 때문에 SF작가들은 우선적으로 과학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는지를 파악하지 않을 수 없다. 즉 SF 소재가 과학적인만큼 그 내용이 얼마나 과학적으로 신빙성이 있는가를 1차적으로 점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학적 신빙성, 과학적 가능성, 과학적 사실에만 천착한다고 해서 좋은 SF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종필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연구원은 “과학과 SF의 연결고리는 결국 휴머니즘”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SF가 우주나 미지의 세계나 새로운 생명체나 기계나 AI 등을 소재로 했을 때 그런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런 제3자적 대상을 통해 우리 자신을 새로운 각도로 조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직류전기를 쏴주면 인체 근육이 움직인다는 과학적 사실에 기반해 프랑켄슈타인이 탄생했다. 동물에 지능이 생긴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리어스라는 소설이 탄생했다.

SF를 위한 과학적 상상력은 결코 고차원적 과학적 사고가 필요하거나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누구나 과학에 대한 관심과 창의적인 아이디어, 인류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이미 훌륭한 과학작가인 셈이다.

이성규 객원기자 | henry95@daum.net

저작권자 2010.07.23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