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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CEO

[아침논단] 수학 못해도 공대 가는 나라의 현재와 미래

[아침논단] 수학 못해도 공대 가는 나라의 현재와 미래

  •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입력 : 2010.07.26 23:00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애플, 구글, 아마존… 모두 推論기술 기업
우리 소프트웨어 분야는 껍데기 만드는 수준
나라가 입시에 발목 잡혀 인재 양성 요원한 때문

전 세계적으로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고 요즘 가장 많이 거론되는 회사가 애플이다. 애플은 1976년 창립되었다. 벌써 34년 전 이야기다. 우리가 잘 알고 있고 세상의 변화를 주도했었던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비슷한 1975년에 만들어졌다.

그럼 앞으로 20~30년 뒤에는 어떤 다른 회사들이 세상을 가장 많이 변화시켜 나갈까?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의 추세를 통해 살펴보면 지금 우리 주위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새로운 회사 중에서 나올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주위에는 어떤 새로운 회사들이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을까? 구글·아마존·페이스북·넷플릭스와 같은 회사들이 우선 이 범주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얼핏 봐서 서로 다른 개성적인 비즈니스를 영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필자가 볼 때 이들 회사는 흥미롭게도 비슷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추론(推論·inference)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회사라는 사실이다.

구글은 사용 고객이 검색어를 입력하면 해당 고객이 찾는 웹페이지들을 자신의 독특한 추론기술을 기반으로 하여 제시해 준다. 아마존은 모든 사용자들의 구매 데이터를 갖고 있다. 특정 고객이 상품을 사려고 하면 고객이 필요로 할 것으로 추론되는 상품들을 보여준다. 넷플릭스는 고객들이 시청한 영화나 드라마 데이터를 기반으로 특정 고객이 좋아할 것으로 추론되는 영화나 드라마들을 추천한다. 페이스북은 사용자들의 인맥(人脈) 데이터를 기반으로 특정 고객이 인맥을 쌓을 만한 사람을 통계적으로 추론하여 제시해 준다.

그렇다. 이처럼 인터넷검색, 전자상거래, 영화·드라마 서비스, 인맥쌓기 분야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회사들을 볼 때, 이미 추론 기술의 시대가 시작됐고, 추론기술은 또 한 번의 인류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추론기술은 그동안 여러 이름으로 불리어 왔다. 가장 옛 이름은 통계(統計)일 것이다. 원래 통계란 '통(統)치를 위한 계(計)산 기술'의 의미로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통계는 의사결정을 위한 추론기술로서 역할을 한다. 인공지능의 주요 분야도 사고(思考) 추론을 통한 의사결정이다. 추론기술은 기계 학습이나 지식 발견 혹은 데이터마이닝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무엇이라 불리든 추론에 관한 기술인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글로벌 국가 경쟁력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소프트웨어 경쟁력 문제가 자주 등장한다. 우리 소프트웨어 산업은 대부분 외형을 만드는 기술에 치중돼, 그 안에 만들어 넣을 지능을 만드는 기술은 매우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껍데기를 만드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수학을 제대로 안 해도 공과대학을 갈 수 있는 나라가 됐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인재 양성을 할 수 있는 대학을 만드는 사회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나라 전체가 입시에 발목이 잡혀 있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30여년 전에는 비록 대학을 중퇴하더라도 훌륭한 회사를 만들 수 있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빌 게이츠)나 애플(스티브 잡스)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요즘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새로운 회사들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한 학문적 역량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온라인 게임 분야만 해도 제대로 된 석·박사급 인재가 발굴되어야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시대다.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은 어떤가.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제대로 된 대학을 만드는 데 우리나라 사회가 열중한 적이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오늘날의 애플 열풍은 9년 전 애플이 만든 아이팟이라는 작은 MP3기계로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애플이 아이팟을 만들 2001년 당시 겉으로 볼 때 MP3 시장은 이미 한국 회사들이 만든 기계로 포화상태였다. 하지만, 애플은 아이튠즈(iTunes)라는 서비스를 함께 들고 나왔고 이는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아이튠즈 역시 추론기술에 기반을 둔 음악제공 서비스다. MP3기계를 만들던 한국 회사들의 지금 상황은 어떤가. 거의 시장을 잃어버렸다.

우리나라는 건설·조선·자동차·전자산업에서부터 정보기술 산업까지 뼈를 깎는 노력으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 같은 발전이 계속해서 이어지려면 우리나라도 추론기술 산업에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 바야흐로 추론기술의 시대가 왔고, 새로운 추론기술 산업의 기반을 마련해 미래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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