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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전문가

[DT 시론] 대학 경쟁력 `다양화`에 있다

[DT 시론] 대학 경쟁력 `다양화`에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ㆍ과학커뮤니케이션 주임교수

지방 대학이 무너지고 있다. 한동안 의욕을 보이던 대학들마저도 깊은 침체의 늪으로 빠져 들고 있다. 학생을 찾을 수도 없고, 있던 교수도 떠나 버리고, 연구비도 확보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지방 대학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앞으로 고등학교 졸업생의 규모가 빠르게 줄어들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 될 것이다. 머지않아 적지 않은 수의 지방 대학이 적막강산으로 변해버릴 것이 확실해지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지방 대학 살리기 전략과 대안이 필요하다.

지방 대학이 어려움에 빠지게 된 원인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무차별적인 `획일주의' 때문이다. 누구나 전국에 있는 240여 대학이 모두 똑같은 `교육'과 `연구'에서 세계적 수준의 수월성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모든 대학이 전공 학과의 구성도 똑같고, 사용하는 교재도 똑같고, 교수를 임용하고 평가하는 기준도 똑같다. 모든 대학이 앞세우고 있는 `특성화'도 사실은 허울뿐인 공염불이다.

물론 대학의 책임이 가장 크다. 모든 대학이 정부의 `지원금'과 언론사의 `평가'에 목을 매고 있다. 국립대학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사립대학의 경우에는 대학 재정과 비교할 수도 없는 작은 규모의 지원금에 무작정 집착하는 이유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정부 지원금의 규모는 자존심과 의지가 있는 총장이라면 충분히 물리칠 수 있는 작은 유혹일 뿐이다.

언론사 평가의 폐해는 정말 심각하다. 언론사 평가는 대학을 위한 것이 아니다. 언론사가 대학 교육에 대해 최소한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대학 평가는 언론사가 이익을 챙기기 위한 수익 모델일 뿐이다. 모든 대학을 언론사가 임의적이고 자의적으로 만든 잣대로 평가를 해서 무차별적으로 공개를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대학의 철저한 획일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지방 대학 모두가 최대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1등 지상주의'도 문제다. 선택과 집중도 그런 사고방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물론 합리적 선택과 적절한 집중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불합리한 선택과 과도한 집중은 사회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독약이다. 지방 대학이 황폐화되는 마당에 극소수의 최상위권 대학들이 돈 잔치, 학생 잔치, 교수 잔치, 연구비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도 잘못된 선택과 집중의 결과다.

최상위권 대학이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교육과 연구에서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런 대학의 노력에 협조를 해야 한다. 정부도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최상위권 대학도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사회와 정부의 성원과 지원에 담겨 있는 우리 모두의 기대를 명백하게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몽땅 빨아들이는 공룡이 아니다. 지금처럼 지방 대학에서 그나마 성과를 올리는 교수를 빼앗아 가고, 학생들을 싹쓸이하고, 연구비를 독식하는 독선과 만용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물론 지방 대학도 달라져야 한다. 이제는 대학의 `다양화'를 추구해야 한다. 일부 분야에 집중하는 특성화를 넘어서 대학 자체를 다양화 시켜야 한다. 이제는 모든 대학이 똑같아야 한다는 획일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21세기는 다양성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와 같은 최고급 인재만 사회를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모두가 1등일 수는 없다. 2등이 1등에 의존해야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1등을 지향하는 사회는 차갑고 메마를 수밖에 없다. 꼴찌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적 수준의 대학만으로는 그런 사회를 만들 수가 없다. 지방 대학이 다양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다.

정부도 선택과 집중을 적정한 수준으로 완화하고, 지방 대학의 다양화를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제 정부가 주도적으로 방향을 정해주는 정책은 확실하게 버려야 한다. 화려한 키워드를 앞세운 세부 기준을 모든 대학에게 강요하는 방식은 반드시 버려야 할 낡은 유물이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다양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디지털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