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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개발자①] "소셜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가상사회의 창조자 송재경

[한국의 개발자①] "소셜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가상사회의 창조자 송재경

작성일 : 2010-07-06 20:47:33 | 김시소, 문영수 기자 desk@playforum.net

 

플레이포럼은 창간 10주년을 맞아 한국 게임산업을 이끌어온 유명 개발자 10인을 선정했습니다. 선정 기준은 ‘한국 게임사에 의미있는 족적을 남겼고 최근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가’ 입니다.

 

앞으로 10회에 걸쳐 ‘한국의 개발자’를 통해 이 땅의 개발자들을 조명해보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연재순서는 송재경, 정상원, 김태곤, 김남주, 김학규, 서관희, 김동건, 백승훈, 신봉구, 이현기 순으로 진행됩니다.

-플레이포럼 편집국-   

     

 

최초최고로 수식되는 천재 프로그래머, 송재경 XL 게임즈 대표

 

대한민국 게임 개발자 중에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사람이 있다. 현 ‘XL게임즈’의 송재경 대표(43)가 그 주인공이다. 그의 이름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리니지’와 ‘바람의 나라’로 대표되는 1세대 온라인 게임의 개발자로, 국산 온라인 게임 시장에 그가 미친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송재경의 핵심 키워드를 꼽으라면 단연 RPG. 그는 RPG에서 시작했고 RPG로 이름을 알렸다. 바람의 나라(1996, 넥슨), 리니지(1997, 엔씨소프트)를 통해 한국 온라인 게임사를 새로 썼다. 개발 중인 아키에이지 역시 게임계에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송재경의 게임은 사회 안의 작은 사회다. 플레이어는 그 사회의 일원이 된다. 군주가 되어 위명을 떨칠 수도 있다. 시민이 되어 소소한 삶을 살아가는 것도 가능하다. 하루하루 새로운 일들이 벌어진다. 개발사가 의도하지 못한 예측불허의 자유가 그 안에 존재한다. 그야말로 또 하나의 작은 나라에서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송재경은 그런 게임을 만들었다.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를 통해 대한민국 온라인 게임사를 쓰다

 

90년 서울대학교 컴퓨터 공학과를 졸업, 92년 카이스트 전산학 석사과정을 마친 송재경은 학력으로나 프로그래밍 실력으로 보나 어느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엄친아였다. 프로그램 불모지였던 90년대의 한국은 그가 거목으로 자라나는 자양분을 제공한 토대가 됐다.

 

온라인 게임의 효시는 ‘머드 게임(Multi User Dungeon)이다. 그래픽이 전혀 사용되지 않고 오직 텍스트로만 진행되는 이 게임들은 한창 PC 통신이 대두되던 시절과 그 맥을 같이 한다. 개발자로서의 송재경은 바로 이 시기를 관통했다. 1994년은 그가 본격적으로 게임을 개발한 원년이었다.

 

   

 

 

당시 PC통신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머드게임들

 

94, 송재경은 국내 최초의 상용 머드 게임, ‘쥬라기공원’을 개발해 세상에 내놓는다. 분당 30원이라는 저렴하지 않은 이용요금에도 불구하고 천리안, 하이텔 등의 통신을 통해 급속도로 유행했다. 쥬라기공원은 한국 온라인 게임 시장의 토대를 마련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를 통해 송재경은 한국에서 게임으로도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접 증명했다.

 

쥬라기공원으로 벌어들인 자본을 바탕으로 송재경은 같은 해, 서울대학교부터 카이스트 대학원까지 동기였던 김정주와 함께 ‘넥슨’을 공동 설립한다. 첫 프로젝트로 송재경은 자신이 재미있게 보았던 만화인 ‘바람의 나라’를 게임화한다. 쥬라기 공원이 최초의 상용 머드 게임이었다면, 바람의 나라는 한걸음 더 나아가 세계 최초의 MMORPG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오리진의 울티마 온라인이 그로부터 1여 년 후에 등장한 것을 감안하면, 송재경의 감각과 개발력이 천재라는 걸 보여준 일대의 사건이었다. 96년 첫 상용화한 바람의 나라는 2006년도 기준 연 매출 3000억 원을 달성해 현 넥슨 신화를 만들게 한 뿌리가 됐다.

 

병역 특례를 위해 입사한 아이네트( PSINet)에서 송재경은 평소 즐겨본 만화인 신일숙의 리니지를 게임화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97년 당시 발생한 IMF의 여파는 게임업계도 피할 수 없었다. 아이네트의 자본 사정이 급격히 나빠졌고, 신규 게임 개발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기 이르렀다.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랬다고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와의 만남이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바람의 나라를 통해 송재경을 눈여겨보던 그가 절대적인 도움을 건넨 것. 김택진은 송재경과 그의 개발팀 모두를 인수하여 성공적으로 리니지를 세상에 안착시킨다.

 

우여곡절 끝에 98년 첫 상용화를 시작한 리니지는 송재경의 천재적인 프로그래밍에 힘입은 바가 크다. 안정적인 서버와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동시에 수천 명이 접속해도 렉이나 지연현상이 발생하지 않는 쾌적한 게임 환경을 유저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리니지는 스타크래프트의 여파로 순식간에 불어난 PC방의 주력 게임 중 하나로 떠올라 인기를 끌었다. 리니지는 2010년 지금에 이르기까지 엔씨소프트에 누적매출 1조원이라는 수익을 안겨주며 대한민국 온라인 게임계를 완전히 뒤흔든 게임이 됐다.

 

 

세계 최초의 MMORPG의 원작이 된 김진의 만화 '바람의 나라'

 

 

송재경이 개발한 '바람의나라' 게임 화면

 

 

지금까지도 지속적인 업데이트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리니지'

 

 

모든 공성전 콘텐츠의 효시가 된 '리니지'의 공성전 

 

'음지의 게임 양지로' 사회적 인식까지 바꿔

 

90년대 당시, 게임 개발은 사회적 음지에 속한 직업군이었다. 장담할 수 없는 미래와, 편견에 가득찬 사회적 시선 때문이었다. 그가 이 모든 것을 바꿨다. 온라인 게임은 그에 의해 음지에서 양지로 거듭났다. 시장성을 인정받자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자도 선망의 직업으로 떠올랐다. 그는 이 땅의 수 많은 젊은이들이 게임 개발의 길을 꿈꾸게 만들었다.

 

2001, 울티마 시리즈로 유명한 리처드 게리엇 형제를 영입한 것도 당시 엔씨소프트의 부사장이었던 송재경의 아이디어였다. 국내 시장을 평정한 엔씨소프트의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엔씨소프트에 영입된 리처드 게리엇은 이후 타뷸라 라사 개발을 진행했으나 큰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오히려 타뷸라 라사가 실패하고 난 뒤에, 엔씨소프트에 소송을 거는 등 뒤끝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게임계의 변방으로 치부되던 한국과 엔씨소프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인 일대의 사건이었다.

 

2003, 승승장구하던 송재경은 돌연 엔씨소프트를 떠난다. 엔씨 부사장까지 역임했을 정도로 핵심인사였던 그는 측근들과 함께 XL게임즈를 설립한다. MMORPG 일변도였던 개발 행보를 벗어난 송재경은 레이싱 게임 개발에 도전한다. XL1’이라는 타이틀을 단 이 게임은, 국내 최초로 자체 개발한 물리엔진을 적용, 게이머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정작 흥행은 실패했다. 사실성을 최우선적으로 추구하다보니 막상 게임 자체의 재미가 떨어졌다는 게 이유였다.

 

XL1은 개발자로서 송재경이 겪은 최초의 실패작이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현재 그는 ‘아키에이지’라 명명한 차세대 MMORPG를 개발하고 있다. 이를 두고 본업으로 돌아왔다라고 표현한 그는 이 게임이 개발자로서 세상에 내놓을 마지막 게임이라 말해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아키에이지는 현재 블레이드앤소울, 길드워2 등과 더불어 하반기 기대작 3로 거론되고 있다. 7월 말, 아키에이지의 클로즈 베타테스트가 예정 중이다. 

 

7월 말경 CBT가 예정중인 송재경의 신작, 아키에이지의 게임 화면

 

▲ '아키에이지'는 크라이시스 엔진을 바탕으로 한 사실적인 배경 묘사가 압권이다

 

아키에이지에 얽힌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과거 90년대 말, 스타크래프트와 대결 구도를 형성했던 리니지에 이어 아키에이지 역시 스타크래프트2와 출시 시기를 같이 한다는 점이다. 이 정도면 특별한 인연이다. 리니지가 스타크래프트를 통해 확대된 게임계 저변을 바탕으로 성장했다면, 이번에는 진검 승부다. 두 게임간에 펼쳐질 대결의 양상을 가늠해보는 것도 국내 게임계의 큰 이슈가 됐다.

 

항상 최초의, 최고의 게임을 만들어 왔던 송재경이기에, 전작의 실패와는 무관하게, 그의 차기작에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사무실 한 켠에 걸어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글귀는 그의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 신인의 자세로 임하고, 최선을 다하여 그 결과를 하늘에 맡기겠다는 송재경의 행보는 2010년 대한민국 게임업계의 최고 주목 대상이다.

 

 

 

큼지막하게 써서 붙인 진인사대천명,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김시소, 문영수 기자 desk@playfor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