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백영훈 "세종시엔 경부고속도로 정신이 없어요…표 의식한 계산 뿐…"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
경부고속도로 40주년 의미는
해외서 '문전박대' 당하며 돈 빌려 후세에 부끄럽지 않은 도로 만들자
| ||
"세종시엔 경부고속도로 정신이 없어요. 국가와 미래를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결연한 의지와 절박함이 없습니다. 경부고속도로는 미래에 사활을 건 국가사업이었어요. 세종시엔 표를 얻겠다는 정치적 계산만 있지 않았습니까. "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80)은 세종시를 경부고속도로와 비교하는 것 자체를 불쾌하게 받아들였다. 세종시는 사심(私心)이 가득한 분열적 사업이고 경부고속도로는 공심(公心)에 기반한 통합적 사업이라는 지적이었다. 오는 7일 경부고속도로 건설 40주년을 앞두고 지난 2일 서울 서초동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자문 역할을 하며 경부고속도로 건설입안 과정에 처음부터 참여했던 그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눈물을 비쳤고,오늘날을 생각하면서 장탄식을 쏟아냈다. 노(老)학자가 들려주는 경부고속도로 얘기는 세종시와 달리 짜증보다 흥미를 자아냈다.
▼곧 경부고속도로 건설 40주년입니다. 감회가 깊으시죠.
"벌써 그렇게 됐네요. 경부고속도로도 이젠 중년이네요. 엊그제 같은데….경부고속도로 얘기를 하면 참 할말이 많아요. 자동차가 당시엔 사치품이었으니 도로를 서울에서부터 부산까지 깐다는 게 쉬웠겠습니까. 먹을 것도 제대로 없는 나라가 말이죠.왜 '부자들을 위한 도로'를 만드느냐고 야당이 일제히 들고 있어났어요.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강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절체절명의 역사적 소명의식이 깔려 있었습니다. 일자리도 만들고 수출길도 열고요. 지금은 경부고속도로가 한국 경제의 압축성장을 견인했다는 평가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잖아요. "
▼세종시로 시끄럽습니다. 세종시엔 경부고속도로 정신이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진지한 고민이 부족한 것 같아요. 표를 의식해 지역 안배에 치중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나라가 결정한 일에 여당과 종교계 노동계 시민단체가 거리로 나서고,여론이 불리해지면 정부는 놀라 움칫하는 모습이 그래요. 경부고속도로 사업은 눈물을 머금고,그렇게 해외에서 돈을 빌려가며 사활을 걸고 추진한 사업입니다. 지금 공무원이나 정치인,국민 모두가 '이게 아니면 안된다'는 절박함이나 역사적 소명의식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경부고속도로 40주년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진지함,절박함 이런 것이 아닐까요. 세종시에는 경부고속도로 정신이 없다는 말이겠지요. "
▼경부고속도로 재원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재원이 독일(서독)이 빌려준 상업차관이란 건 아시죠.3년 상환 조건으로 3000만달러 빌려준다는데,돈을 공짜로 빌려줍니까? 당시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2000만달러 정도였죠.지급보증을 세워야 하는데 원조 국가에 누가 보증을 서줍니까. 5 · 16 사태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당시 궁지에 몰렸죠.앞서 미국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지만 군사정권이라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했죠.그래서 서독 지급보증으로 광부 5000명과 간호사 2000명을 '수출'하기로 했습니다. 이들의 봉급을 담보로 차관이 제공됐고 박 전 대통령과 에르하르트 서독 총리가 만나게 된 겁니다. "
▼좀 더 얘기 해주시죠.
"1964년 12월8일 한국과 서독 정상회담을 마치고 박 전 대통령이 독일에서 일하는 한국인 광부를 만나러 갔죠.당시 한국인 광부는 땅밑 1000m의 40도가 넘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했습니다. 터키인 등 외국 광부들은 못참고 떠난 자리를 가난한 한국의 엘리트들이 채웠죠.대학 출신자들이 학력을 위조해 독일 광부에 지원했죠.석탄가루를 뒤집어쓰고 눈만 깜빡이는 500명의 광부는 대통령을 보자 '대한민국 만세'를 끊임없이 외쳤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연설도 잊은 채 눈물을 흘렸습니다. 동행한 에르하르트 총리와 저,500명의 광부들이 복받치는 감정을 토해냈죠.박 전 대통령은 이 경험을 잊지 않고 후세에 부끄럽지 않은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자고 틈만 나면 참모들에게 주문했죠."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앞서 땅 매입은 어떻게 했나요. 땅값이 급등했을 텐데.
"당시 육군본부 조달감실 윤병호 대령에게 나중에 들은 얘깁니다. 1964년 4월 건설계획을 발표한 뒤 그해 12월 크리스마스날 갑자기 박 전 대통령이 말죽거리에 가보라고 했답니다. 박 전 대통령은 다음날 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일주일 내에 서울~수원 간 도로가 건설될 땅 매입을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답니다. 땅값이 오르기 전에 매입을 끝내라고 다그쳤다는군요. 군사작전처럼 속전속결로 이뤄져 추가비용이 많이 들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하나 더 말하면 1968년 1월 김신조 일당이 내려오다 발각돼 민심이 흉흉했는데,그때 박 전 대통령은 '전쟁만 일어나지 않으면 공사를 계속하라'고 지시했다고 하더군요. "
▼독일에 1호 유학생으로 가셨다면서요.
"한국전쟁 후 이승만 정부가 처음 실시한 게 '국비장학생' 시험이었어요. 그때 경쟁률이 21 대 1 정도였죠.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공부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독일(서독)을 택했죠.당시 '라인강의 기적'에 관한 내용이 신문에 크게 소개된 것을 봤죠.'라인강의 기적'을 찾아 국비장학생 1호로 독일로 간 겁니다. 쾰른대학 교수들이 정부부처에 들어가 있어서 나중에 박 전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독일과 전 인연이 많습니다. "
▼독일 유학갈 때 기내식을 안드셨다면서요.
"비행기를 처음 탔는데 밥이 나오더라고요. 저는 그게 돈 주고 먹는 것인 줄 알았어요. 손에 쥐고 있는 돈이 몇 달러 되지 않아서 안 먹는다고 했지요. 기내식이 공짜인 줄 몰랐던 거죠.그때 정말 배고플 때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네요. 박 전 대통령과 독일에 갔을 때 하숙집을 방문했어요. 박 대통령이 차를 내주셨지요. 하숙집 아주머니가 멋진 차를 타고 온 저를 보더니 대뜸 '아시아 국가의 왕자인 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얼마나 웃었던지."
▼그 당시와 지금 대한민국은 많이 변했죠?
"2차대전 후 독립국가로 탄생한 곳이 140곳이 넘지만 한국만 유일하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어요. 그 배경은 자식 교육시켜야 한다,먹고 살아야 한다였어요. 우리 국민의 근면성과 성실성,열정이 오늘을 만든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분열이 심하고 향락과 금전만능주의가 넘쳐나 걱정될 정도입니다. 지금은 지난 100년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스페인의 철학자 호세오르테가의 저서 '대중의 반역'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16세기에서 18세기를 주름잡은 스페인은 열정이 식고 국가적 테마가 사라진 자리에 향락과 사치가 대신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어요. "
▼국내 민간연구소 1호인 KID를 직접 만드셨지요.
"그렇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엔 국책연구소가 너무 많아요. 미국이나 일본엔 거의 없어요. 국내엔 80여개나 되요. 국책연구소가 정부용역을 맡으면 객관적인 연구결과나 타당성조사가 나오기 힘들어요. 일본의 히라치 연구소나 미쓰비시 연구소는 기업산하 연구소가 아니에요. 설립자이거나 기금을 냈기 때문에 연구소 이름으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철저히 독립적으로 움직입니다. 국책연구소나 대기업 산하 연구소다 보니 세계적인 연구소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해요. 민간연구소를 키워야 합니다. "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시죠.
"얼마 전 독일 쾰러 전 대통령이 개인 자격으로 한국에 왔을 때 만났습니다. 쾰러 전 대통령이 독일은 분단 이후 30년에 걸쳐 통일기금을 적립했는데도 경제 안정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얘기를 했어요. 한국은 통일 준비에 소홀하다는 지적이었어요. 통일기금 마련 캠페인을 통해 평화통일의 미래를 그려보려 합니다. 정치인이 배제된 순수한 민간의 힘으로 통일기금을 모아 판문점 일대에 세계적 평화도시를 만들고,그 일대를 세계적 중심도시로 만들고자 합니다. "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
입력: 2010-07-04 17:25 / 수정: 2010-07-04 21:27
당사의 허락 없이 본 글과 사진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
' 마켓 생태계 > 지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기문 중기중앙회장 인터뷰(종합) "기업-노사정책 너무 대기업 중심" (0) | 2010.07.05 |
---|---|
[알아봅시다] 스마트폰이 가져올 모바일오피스의 미래 (0) | 2010.07.05 |
울부짖는 천지(天地), 백두산이 술렁인다 (0) | 2010.07.05 |
더블 딥? 숨고르기?… 세계 경제 갈림길에 서다 (2) | 2010.07.04 |
[j Global] 잭 웰치 맞먹을 중국 CEO … “관시? 난 그렇게 경영 안 한다” (0) | 2010.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