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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그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노트북을 열며] 그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상하이(上海)에서 10여 년째 부동산 관련 분야 일을 하고 있는 김형술 사장. 그는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엑스포 전시장을 찾았다. 관람객이 다소 줄었다고는 하지만 주요 전시관은 여전히 넘치는 인파로 붐볐다. 그 인파를 헤치고 몇몇 국가관을 돌았다. 그에게 “무엇을 봤느냐”고 물었더니 엉뚱한 답이 돌아온다. “중국 사람들이 줄을 서데요”라는 것이었다. 인기 국가관 앞에는 여지없이 장사진이 연출됐다는 얘기였다. 30도를 육박하는 한낮 더위 속에서도 관람객들은 3~4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더란다.

김 사장은 “작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중국인들의 인상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그가 봐 온 중국인들은 줄 서기에 약했다. 질서의식이 없었다. 쇼핑센터나 영화관, 거리의 무질서를 보고는 “중국은 아직 멀었어”라고 혀를 차기도 했다. 엑스포가 그런 이미지를 깨트린 것이다.

줄 서기는 한 나라의 질서의식, 문화 역량의 척도다. 그런 점에서 중국 관람객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번 엑스포를 읽는 핵심 관전 포인트다.

중국은 하드파워(Hard power) 분야에서 이미 세계 1, 2위를 다투는 강국이다. 돈이라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외환을 보유하고 있고, 군사력은 자국 방위 수준을 넘는다. 그러나 정신·문화적 역량을 뜻하는 소프트파워(Soft power)는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특히 질서의식은 낙제 수준이었다. 엑스포를 계기로 이 같은 불균형을 바로잡자는 게 중국 당국의 계산이다. 그러기에 중국관은 중국 문화를 과시하는 전시물과 영상물로 채워졌고, 다른 나라의 문화와 비교할 수 있도록 배치됐다. 관람객들은 전시장 한가운데 우뚝 선 중국관의 위용에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요, 내부 전시물을 보고는 자국 문화의 우수성에 감동했을 터다. 그들은 또 전시장 밖 줄 서기를 통해 질서를 익히고 있다. 엑스포는 소프트파워의 학습장이었던 셈이다.

많은 이가 상하이의 마천루를 보고는 “소프트웨어는 있는 거야?”라며 코웃음 치곤 했다. 엑스포는 그 소프트웨어를 보강하고 있다. 행사가 열리는 184일 동안 하루 평균 약 40만 명이 상하이를 찾는다. 세계 어느 도시도 이같이 긴 시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관리해 본 경험이 없다. 그걸 상하이가 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 행정의 소프트파워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드파워에서 소프트파워로’. 엑스포가 보여 준 중국의 길이다. 중국은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하든 자신이 만든 계획에 따라 그 길을 걸을 것이다. 개혁·개방 이후 30년 동안 그랬듯 말이다. 그들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그들과 어떤 상생의 틀을 짤지 등을 연구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김 사장은 “엑스포에서 표출되는 중국의 위용에 압박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 정신 바짝 차리고 분발해야 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돈과 군사력으로 무장한 그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