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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 /드라마

동이 얼굴위로 장금이와 송연이가 보이는 이유

동이 얼굴위로 장금이와 송연이가 보이는 이유
공희정 / 한국디지털위성방송 대외협력팀 부장
공희정의 드라마 살롱

이병훈 감독의 드라마는 짜임새가 딴딴하고, 스토리 전개도 조밀하다. 한류 열풍의 핵심인「대장금」(MBC)도 그러했고,「이산」(MBC),「상도」(MBC), 「허준」(MBC),「서동요」(SBS) 등 모든 드라마가 그렇게 명작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그리고 지난 3월부터 시작된 「동이」(MBC) 또한  ‘이병훈표 사극’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시청률도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이」는 좀 지루하다.


이병훈 감독은 역사 속에 숨어있는 작은 실마리 하나를 끄집어내 보석을 만드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중종의 총애를 받은 천민 출신의 의녀’로 기록되어 있는 장금이를 불우한 자신의 처지에 안주하지 않고 신분을 뛰어넘어 성공한 인간으로 우리에게 각인시켜주었다. 장금이와 달리 동이는 역사 속에 뚜렷이 남아있는 인물이다. 천민 출신 무수리에서 숙종의 후궁이 되고 그 아들인 연인궁은 사도세자의 아버지인 영조가 된다. 이미 우리에게 알려진 인생의 족적을 기본 틀로 숙빈 최씨가 되는 동이의 인생 성공기를 오밀 조밀 그리고 있다.


자수성가한 인물들은 사연이야 다를 지언 정 ‘노력과 도움’이라는 기본적 요인이 그들 인생 속에 동일하게 배치되어 있다. 이병훈표 사극 속 인물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유독「동이」속에서「대장금」의 장금이나 「이산」의 송연이 모습을 지울 수 없다. 왜 그럴까. 주인공이 여자이기 때문에 비슷한 느낌을 받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여자가 주인공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선 시대적 배경이 조선이다.「대장금」은 중종 (1506 -1544), 「이산」은 정조 (1752-1800), 「동이」는 숙종(1661-1720)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서인과 남인, 노론과 소론의 소용돌이 속에서 절대 왕권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고독한 존재로서의 왕이 존재했던 시대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을 갖고 있는 왕이지만 그는 가문과 명예를 중시하는 자들의 지독한 이기심이 왕권을 거침없이 위협하는 것을 보면서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때문에 이 여인들의 백마탄 왕자였던 왕들은 소박한 그녀들에게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동일한 배경을 갖고 있었다.


왕의 눈에 들었던 그녀들의 성격은 하나같이 여린 듯 하지만 모험심이 강했다. 겁 없이 세상을 뛰어 다니고, 모든 사람이 아니라고 할 때 혼자만 옳다 라며 무모하게 도전했다. 위기의 상황에선 그녀들을 도와주는 키다리아저씨 같은 인물 덕분에 지푸라기 한 자락만으로도 벼랑 끝 기사회생이 가능했다. 그녀들에게 영광의 인생을 부여해 준 것은 고독한 왕들이었지만, 어려울 때마다 그녀들에게 현실적 도움은 주었던 것은 민정호, 박대수, 차천수와 같은 평범한 인물들이었다.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그녀의 행복을 기원해 주었던 인물들.


유명한 작가나 감독에게는 ‘사단’이라 이름 붙여진 배우들이 있다. 이병훈 감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최란, 김혜선, 김소이, 이희도, 안여진 등은 이병훈 감독의 작품 곳곳에서 비슷한 캐릭터로 등장하고 있다. 이들 또한 「동이」가 낯설어 보이지 않게 한 중요 요인 중 하나이다.


김수현 작가는 「인생은 아름다워」(SBS)에서 등장 인물 한 사람씩을 넘어지게 하면서 극을 마감한다. 이병훈 감독은 무언가 놀란 듯 눈을 화등잔 만하게 뜨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주인공을 클로즈업시키고 있다. 그래서 자꾸만 동이가 장금이 같고 송연이 같아 보이나 보다.


제작진들도 무언가 닮아가는 이 흐름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 지 고민했을 것이다. 수랏간, 내의원, 도화서, 장악원 등 배경 장소를 바꿔가며 우리가 몰랐던 궁궐의 면면을 통해 닮은 듯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려 한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좀 부족하다. 조선 여인 성공신화 시리즈를 보고 있는 듯한「동이」에게 확실히 다른 무언가가 있을까. 언제쯤 다른 동이를 볼 수 있을까.


지금 TV에서는 이 세 여인을 모두 만날 수 있다. 「이산」은 CNTV에서, 「대장금」은 MBC드라마넷에서.

Updated : 2010.05.04 1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