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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

아이폰, 이통시장 지형 바꿨다

아이폰, 이통시장 지형 바꿨다
KT '혁신기업' 변신 성공… 단말기 조달방식도 큰 변화

이지성 기자 ezscape@dt.co.kr | 입력: 2010-04-14 21:03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지형을 새롭게 쓰고 있다. 출시 4개월 만에 5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아이폰은 국내 통신 시장에 `스마트폰'이라는 화두를 던지는 것과 동시에 만년 2위 사업자였던 KT에게 새로운 위상을 부여하고 있다. 이석채 회장 취임 후 KT는 `통신 공룡'의 이미지 쇄신에 골몰했으나 아이폰 도입을 통해 `혁신 기업'이라는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가입자 50만명을 돌파한 아이폰 가입자는 현재 55만명에 달한다. 하루 평균 4000대 꼴로 가입자가 늘고 있는 셈이다. 통상 국내 휴대폰 시장에서 하루 1000대가 팔리면 `히트작'으로 평가받는 점에서 가히 폭발적인 성장세다. 아이폰은 외산 휴대폰의 무덤으로 불렸던 한국 시장에서 가장 성공한 휴대폰이 됐다.

KT는 아이폰 도입을 통해 천문학적인 브랜드 이미지 개선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제로 주요 시장조사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아이폰 도입을 전후해 KT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소비자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내 이동통신 시장에서 만년 2위에 머물렀던 KT의 위상이 한층 높아진 셈이다.

특히 아이폰은 기존 국내 이동통신사의 단말기 조달 방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KT는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아이폰 국내 도입을 위해 애플과 2년 동안 50만대 판매, 보조금 및 마케팅 비용 전액 부담 등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국내 통신 시장에서 이동통신사가 휴대폰 제조사에게 사실상 `갑'의 역할을 자처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조건이다. 전문가들은 이동통신사 중심의 폐쇄적인 산업구조가 개방과 공유의 패러다임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KT는 SK텔레콤로부터 의미 있는 고객을 빼앗아오는 데도 성공했다. 시장조사업체 애틀러스리서치앤컨설팅에 따르면, 아이폰 가입자의 50.2%가 SK텔레콤에서 KT로 옮겨왔다. 또 53.5%는 직전에 사용하던 휴대폰이 삼성전자라고 밝혀 아이폰으로 인해 서비스와 단말기 부문에서 부동의 1위를 달렸던 SK텔레콤과 삼성전자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점유율에서는 아직 큰 변화가 없으나 휴대폰 요금이 높고 가입기간이 긴 `로열 고객'을 대거 확보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동통신분야 부동의 1위를 유지해온 SK텔레콤 중심의 시장 구조에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아이폰의 파괴력은 이미 해외에서도 입증됐다. 영국은 1990년대 중반부터 접속료 현실화, 번호이동제도 도입, 단말기 표준화 등을 통해 선발사업자와 후발사업자간의 장벽을 허무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한때 시장점유율 70%로 부동의 1위를 기록했던 보다폰은 오렌지에 1위를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최근 3위 이동통신사 텔레포니카O2는 아이폰 독점 공급을 통해 영국 최대 이동통신사로 등극했다.

일본NTT도코모, KDDI, 소프트뱅크모바일의 3각 구도가 고착화된 일본 시장에서도 아이폰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아이폰을 독점 공급하는 소프트뱅크는 최근 발표한 3분기(2009년 4월∼12월) 실적발표에서 사상 최고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손정의 회장은 이례적으로 KDDI와 NTT도코모의 실적을 비교하면서 매출과 이익이 감소한 두 업체와 달리 소프트뱅크는 모두 증가했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현재 일본 시장에서 아이폰의 스마트폰 점유율은 46%이며 가입자는 300만명을 넘어섰다. 특히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고 아이폰 열풍도 일찍 불어 국내 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지성기자 ezsca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