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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

스마트폰 시대 본업을 버려라

입력 : 2010.04.12 17:27

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와 이슈는 아이폰이었다. 특정 제품이 이렇게 온 나라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경우는 일찍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이폰은 기술적으로도, 비즈니스 모델에 있어서도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제품이지만 사회 각 분야의 변화까지도 촉발하는 패러다임 체인저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한마디로 기술의 ‘내공’이 다른 제품이며 생각이 ‘차원’이 다른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기업들도 이제는 아이폰의 우수성을 축소하고 폄하하며 ‘애국 마케팅’으로 일격을 노리던 ‘몽니’를 관두고 아이폰에 뒤져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듯 하다. 그러나 무엇이 얼마만큼 뒤져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위기감은 아직 부족해 보인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각 분야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스마트폰이 가져올 혁신적 변화에 대한 통찰과 준비가 미흡해 보인다. 그저 어떤 유명인사가 어떤 기기, 어떤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화제인 수준이다. 우리 사회에 IT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커지고 있는데, 이런 저런 ‘전도사’는 넘쳐나도 자신의 사리(私利)와 무관하게 다가올 변화와 미래에 대한 본질적인 시각과 대안을 제시해주는 ‘비저네리(Visionary)’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 더욱 안타까운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아이폰, 아이패드 충격은 소프트웨어-콘텐츠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그런데 우리 기업은 여전히 예의 ‘제조 정신’과 ‘통신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는 듯 하다. 삼성전자가 ‘신경영’을 한참 추진 중일 때 이건희회장은 ‘업의 개념’이라는 말을 자주 언급했다. 반도체 사업의 ‘업의 개념’이 타이밍인 것처럼 각 사업별 ‘업의 개념’도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고. 그런데 세계 2위 휴대폰 제조업체의 ‘업의 개념’은 무엇이었고 지금은 무엇일까?

삼성전자 최지성사장의 취임 일성이 “노키아를 잡겠다”였다. 대단한 기백이지만 취임사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래와 소프트웨어-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건희회장의 복심(腹心)이라고도 하는 윤종용고문도 최근 인터뷰에서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의 중요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삼성전자의 본업은 제조이다, 나머지는 여력이 생긴 뒤에나 해야 한다.”고 답했다. 인터뷰하는 기자가 오히려 이를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이것이 우리 기업의 현주소일지 모른다. 최고 의사결정자의 인식의 한계, 리더이기 전에 헤비 유저(Heavy User)인 스티브잡스와 다른 점… 제조업이 본업이라는 고정된 인식의 프레임(Fixed Frame)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 어떻게 보면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듯도 하다. 이건희회장은 늘 10년 후의 먹을거리를 걱정한다. 맞는 얘기이다. 사실 지금의 성과는 10여 년 전에 뿌려둔 씨앗의 열매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10년 후를 대비한 씨앗을 뿌리고 있는가? 일선의 경영자들은 여력이 생긴 뒤에나 뿌려야 한다고 하는데…

과거 10년 그렇게 이동통신사들이 애를 써도 큰 변동이 없던 무선데이터 사용량이 최근 아이폰 출시 이후 무려 122배가 폭증했다. 폐쇄적 시장에 희망을 잃고 하나 둘 모바일 업계를 떠났던 개발자들의 몸값도 ‘봄날’을 맞이하고 있다. 이들이 만든 어플로 인해 새로운 계층별 집단 문화가 생기고, 길거리 어플로 교통문화가 변화하고 있다. 공익적인 네티즌의 아이디어를 모아 어플로 만드는 시민운동도 전개되고 있고 SNS 관련 어플은 정치문화를 변화시키고 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소프트웨어-콘텐츠 시대로의 진입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이루어 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애플 따라하기에만 급급해 보인다. 애플이 가리키는 ‘달’은 보지 않고 애플이라는 ‘손가락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앱스토어식의 오픈 마켓플레이스의 묻지마식(?) 개설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는 생각이다. 아울러 어플 또한 각 기업과 정부에서 너무 정책적으로 ‘과용’한다는 느낌이다. 특히 스마트폰 어플 개발을 위한 창업을 권하는 것 그것도 대학 졸업생들에게 ‘1인창조기업’ 창업을 권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어플 개발을 통한 앱스토어 진출은 모바일 솔루션 기업에게도 어려운 의사결정이며 일종의 모험이기도 한데 하물며 세상 물정 모르는 대학 졸업생들에게야…

이러한 ‘손가락’ 시각, 단기성과 위주의 정책과 매스콤의 침소봉대식 보도태도로 인해 일종의 ‘스마트폰 버블’이 우려되기도 하는데 아이폰, 앱스토어와 관련된 것이라면 일단 옳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도 문제이다. 과거 홈페이지가 이슈가 되던 때를 생각해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모바일에서도 곧 웹이 대중화될 것이고 이용형태도 다운에서 접속으로 발전되리라 보고 있다. 또한 최근의 웹환경처럼 모바일에서도 누구나 쉽게 어플과 콘텐츠를 만드는 시기가 머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즉 어플을 제작하는 진입장벽이 낮아져 누구나 쉽게 자신만의 어플과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만인 어플’, ‘만인 콘텐츠’의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전환할 때 일본 기업이 흔들렸고, 디지털 시대에서 소프트웨어-콘텐츠 시대로의 전환을 앞두고 우리 기업이 흔들리고 있다. 이미 몇 년을 허비한 것처럼 앞으로 또 몇 년을 허비한다면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소프트웨어-콘텐츠는 사회 각 분야와의 결합력이 뛰어나고 소비자의 인식변화를 촉발하기 때문에 그 파급효과가 대단할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 기업이 소프트웨어-콘텐츠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먼저 ‘본업 이데올로기’를 버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수비축구’로 이길 수 없듯이 ‘본업 정신’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 기업의 생사를 걸고 지금까지 지켜온 소중한 ‘본업’ 위에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의 꽃을 피워야 하는데 문제는 우리에게는 소프트-콘텐츠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콘텐츠는 별동대를 만들어 청바지를 입히고, 직급을 없애고, 탄력근무제를 도입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반도체 생산라인을 만들 때 수십 조원이 들어가고 막대한 인력과 장비가 들어가는 것처럼 소프트웨어-콘텐츠도 그 못지 않은 결단과 투자 그리고 집중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거대한 공정에서 반도체가 나오는 것처럼 소프트웨어-콘텐츠도 장기간의 경험과 노하우가 집약된 거대한 인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각 종 응용 소프트웨어의 기반이 되는 플랫폼 개발은 더욱 그렇다. 마음이 급하다고 무리하게 서두를 것이 아니라 먼저 이러한 기반을 단단히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소프트웨어-콘텐츠 개발에 있어서 마지막 관문은 ‘문화’이다. 제조업의 기업문화와 소프트웨어-콘텐츠업의 기업문화는 같을 수 없다. 이 상이한 두 문화가 동일한 기업 내에 존재한다면 당연히 ‘문화충돌’이 생길 것이다. 기업의 특성상 다수의 ‘우성 문화’가 소수의 ‘열성 문화’를 ‘구축(驅逐)’하게 되는 데 이것이 그간 우리 기업에서 소프트트웨어-콘텐츠 사업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주요한 원인이다.  커뮤니케이션 하나만 보아도 그렇다. ‘입 닫고’ 살아온 사람들이 ‘입 열고’ 일하기 시작하면 감당할 조직이 국내에 몇 되겠는가?

아이폰으로 촉발된 스마트폰의 충격과 이로 인해 더욱 빨리 도래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콘텐츠 시대는 우리에게 먼저 소프트한 의식과 사고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K모바일 류지영대표 jyryu@kmobil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