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 인터뷰

[경술국치 100년 지상 좌담회] 미래 비전 “한·중·일 뭉치면 EU보다 강해” [중앙일보]

 

2010.04.14 01:44 입력 / 2010.04.14 03:43 수정

“새 아시아시대 함께 열자”

→ 이어집니다 1~4

5 북한과 동북아 안보

-북핵 등 동북 아시아 안전보장 문제를 위해 양국이 협력해서 할 일은 무엇이고, 중국과는 어떤 관계를 구축해야 하는가.

1965년 12월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 기본조약 비준서에 서명하고 있다.
공로명=한·일 관계는 군사동맹은 어렵겠지만, 준동맹적 관계를 맺고 굳건히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북핵 문제로 가장 위협을 받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두 나라는 같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그래서 한·일 준동맹과 미국과의 동맹이 필요하다. 물론 중국을 적대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도 협력하고 공존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있을 수 있는 위기를 헤징하는 시스템은 갖춰야 한다.

이어령=북한에는 강력한 후방인 중국이 있다. 한·일은 그에 상응하는 파워가 부족하다. 미국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됐다. 한·일 관계를 새 차원에서 공고히 하고, 중국과의 파워 밸런스를 조정해야 한다. 패권다툼은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 중국의 중화주의도, 일본의 대동아주의도 새로운 아시아 시대에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데 한반도 역할이 중요하다.

나카소네 야스히로=근린 우방으로서 상호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건 당연한 숙명이다. 이를 위해 상호존중과 협력의 열매를 맺는 방안을 양국 정부와 국민이 실현해 나가야 한다. 일본, 한국, 중국의 3국 간 협력관계도 필수적이다. 북한도 점차 6자회담에 협력하는 형태로 움직이고 있다. 일본, 한국, 중국이 이 문제를 밀도 있게 추진해야 한다.

박태준=한국, 일본, 중국은 평화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3국이 서로 신뢰를 회복해 동북아 미래 비전을 실현해야 한다. 그러나 3국은 사소한 문제도 쉽게 거대한 문제로 증폭시키는 과거사를 공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한국과 중국이 매우 민감하다. 이를 감안하면 3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이른 시간 안에 대화를 통해 마찰을 조정하는 ‘한·일·중 안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우메하라 다케시=일본과 한국이 ‘세 나라는 대등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한국은 일본을 이용하고, 일본은 한국을 이용하지 않으면 중국의 대국주의를 좀처럼 피할 수 없다. 대국주의는 중국의 오랜 역사다. 한·중·일이 협력하면 유럽연합(EU)보다 강한 나라가 된다. 이를 위해선 일본이 철저하게 침략을 반성해야 한다. 중국은 대국사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 문화의 본질은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많은 침략을 받아 생긴 ‘한(恨)’인데, 이를 청산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다음은 ‘아시아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미무라 아키오=어떤 가정 아래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적대적이 돼 좋을 게 하나도 없다. 군사적으로도 그렇지만, 왜 일·한 경제동반자협정(EPA)이 진척되지 않는 것인가. 여러 의미에서 경제구조는 밑바닥 구조를 튼튼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6 동아시아 공동체는 가능한가

-동아시아 공동체는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2002년 5월 31일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한·일 공동 월드컵 개막식이 열렸다. 양국이 사상 처음 국가적 행사로 공동 개최한 이 월드컵의 성공은 양국 관계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 [중앙포토]
이어령=문화 공동체부터 먼저 만들어볼 수 있다. 근대화 과정에서 상실한 아시아의 동질적 문화를 함께 연구하고, 미래지향적인 문화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야 한다. ‘아시아 문화 유산’을 공동 관리·보존하는 정책도 함께 만들어야 한다.

우메하라 다케시=금세 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이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일본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때부터 ‘탈아입구(脫亞入歐)’가 계속돼 왔지만 그런 시대는 이제 끝났다. ‘탈아입구’에는 한국·중국을 모멸하고 있는 면이 있다. 일본이 유럽 등과 친선관계를 가지면서도 아시아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일본은 아시아의 일원이 안 되고 공동체도 못할 것이다.

박태준=21세기 동북아의 현명한 선택은 구시대의 유물인 패권경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경제·문화·지식·기술 교류는 분쟁을 예방하고, 국가 간 관계를 윈윈의 방향으로 이끄는 지름길이다. 공동 번영과 평화를 위해 한·중·일은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면서 일류 문명국가로 매진해야 한다. 이를 위한 우선 조건은 불행한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실천, 진정한 용서와 화해다.

나카소네 야스히로=먼 미래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런 공통의 이상과 이념을 나눠 갖는 것은 매우 귀중한 일이다. 동아시아 공동체 실현을 위해선 양국의 지식인들이 공동체 구상과 구축 로드맵을 검토하는 게 중요하다. 동시에 공통의 목표와 가치관이 국민 사이에 스며들게 해야 한다.

공로명=지금 우리가 다 같이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미 그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 EU처럼 외교·안보 정책을 단일화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집단안보 체제를 만들어가는 비전은 있다. 바로 6자회담이다.

미무라 아키오=아시아는 유럽과 달리 종교, 역사, 생각하는 방식이 서로 다른 나라들의 집합체다. 따라서 유럽처럼 구속적인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은 무리다. 대신 경제 제휴와 같은 자유도가 높은 방식이 바람직하다.

7 G20·APEC … 공동 프로젝트 가능성

-한·일은 11월 서울 G20 정상회의와 요코하마 APEC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한·일 양국 협력을 위해 두 회의를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또 2002년 공동 월드컵 개최처럼 한·일 양국이 함께 추진해 볼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는.

박태준=민족주의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지금은 분단 상태니까 ‘민족’을 붙잡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한민족 혼자서 할 수는 없다. 우리는 거대한 중국과 통하고 바다에도 나갈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 함께 한·일 터널을 파보자. 그러면 도쿄에서 차를 타고 런던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누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문을 열자. 문을 닫고 있으니까 발전이 안 되지 않으냐’고 말하면 좋겠다. 터널을 만들면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하기 쉽게 해 주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일본이 침략을 하느냐. 반도국가인 로마가 대륙과 해양으로 모두 뻗어나간 것을 생각해 보라. 한국도 로마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공로명=원칙적으로 한·일 해저터널 건설에는 찬성이다. 굉장히 전략적 의미가 있다. 앞으로 북한만 통과하면 유럽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실크로드다. 국제무대에서의 공동 프로젝트나 협력은 많을수록 좋다. APEC과 G20의 회원국이 상당부분 겹친다. 관계당국이 조율을 잘해야 회의가 성공한다.

이어령=일본은 선진국, 중국은 중진국, 한국은 선진-중진의 중간을 잇는 역할 분담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스포츠의 경우 서로 응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나카소네 야스히로=정치적 결합의 강화를 통해 문화나 경제 면에서도 제휴·협력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제는 정치적 우호 및 제휴 관계의 기반 위에서 그걸 실현할 수 있는 청사진을 3국이 만들어갈 단계에 접어들었다.

[특별취재팀]

중앙일보 : 서울=오대영·배영대·예영준 기자, 도쿄=김현기 특파원
사진=안성식·변선구·강정현 기자 dayyoung@joongang.co.kr
니혼게이자이 신문 : 도쿄=고토 야스히로(後藤康浩) 편집위원, 이와키 사토시(岩城聰) 아시아부 기자
사진=슈토 다쓰히로(首藤達廣)후지사와 다쿠야(藤澤卓也) 기자
서울=야마구치 마사노리(山口眞典)·오지마 시마오(尾島島雄)·시마야 히데아키(島谷英明)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