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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

한국농업, 소농서 벗어나 기업가적 사고가 필요하다

한국농업, 소농서 벗어나 기업가적 사고가 필요하다
◆ 첨단농업 현장을 가다 / ④ 전문가 좌담 ◆

매일경제신문은 지난 3월 24일 `아그리젠토 코리아, 첨단농업 부국의 길`을 주제로 제17차 비전코리아 국민보고대회를 개최한 데 이어 `첨단농업 현장을 가다` 시리즈를 연재했다. 한국 농식품 산업계에 새로운 화두를 던진 셈이다. 연중 진행할 예정인 농업 시리즈 1부를 우선 마무리하면서 농업계 주요 인사들을 초대해 좌담회를 열었다.

-지난 `아그리젠토 코리아` 국민보고대회를 본 소감은.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선각자적인 안목에 공감했다. 한국 농업 부흥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 변화다. 소농가적 사고를 기업가적인 사고로 바꿔야 한다. 네덜란드 같은 나라는 20세기 초부터 규모화를 일찍 시작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1950~1960년 사이에 소농화됐다. 모든 농민을 잘살게 만든다는 감상론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우리 농업도 이제 노동집약적 사고에서 설비집약적 사고로 바뀌어야 한다. 가장 큰 걸림돌은 농업은 경제논리로는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다. 가슴으로는 따뜻한 말이지만 시장에서는 안 통한다. 소비자들은 이제 경쟁력 있는 제품을 선택한다.

▶이정재 서울대 농생명과학대 교수=농업에 대한 생각은 과거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농업은 농사짓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공업이 제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우리 농업 정책은 절반은 성공했다. 다행히 농업 기반을 잃지 않았고 국민적 공감대도 확보하고 있다. 오히려 에너지를 농업에 쏟았다면 국가 발전이 늦어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제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에는 공감한다.

▶민승규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한국 농업 생태계가 바뀌어야 한다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한국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도 제시했다. 컵에 물이 가득 차 있을 때 물을 더 담으려면 과감히 무엇인가를 버려야 한다.

-네덜란드 농업에서 배울 점은 뭔가.

▶김 회장=농가당 경지면적이 우리보다 20배 이상 크다.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고 있다. 그들은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생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또 세계시장에서 값싼 원료를 가져다 가공해 수출한다. 글로벌 유통망을 잘 갖추고 있는 덕분이다. 네덜란드는 라보뱅크로 대표되는 금융 파워도 강하지만 농업 관련 학교와 연구개발(R&D) 시스템이 세계 최고다.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서 조화롭게 발전했다.

▶이 교수=네덜란드 농업의 핵심은 기술력보다는 자본력이라고 본다. 우리도 농업에 자본을 어떻게 투입할 것인지에서 해답을 찾아가야 한다. 한국 제조업은 삼성과 같은 자본력이 있었기에 체계화된 것이다. 농업 역시 기술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자본이 있으면 기술이 몰려들게 돼 있다. 다만 대기업 자본보다는 작은 자본이 많이 모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측면에서 주식회사 형태가 바람직하다.

▶강용 한국농수산식품CEO연합회장=네덜란드 채소 농가에 견학을 간 적이 있다. 우리 농민들은 주로 "액비(액체비료)를 어떻게 만드느냐"고 질문했다. 그쪽 답변은 "액비를 왜 공장에서 사다 쓰지 않고 농민이 직접 만드느냐"는 것이었다. 충격적이었다. 우리 농민들은 액비를 스스로 제조하고 그것을 큰 노하우로 생각한다. 하지만 네덜란드 농민들은 그런 일에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네덜란드 농업의 강점은 시스템에 있다. 우리나라는 농민 한 사람이 너무나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부터 실천해야 하나.

▶민 차관=한국 농업이 변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저항과 걸림돌이 있을 수 있다. 1단계는 지혈과 봉합 시기다. 2단계는 의식 전환이다. 농업계 종사자들이 새로운 비전을 체득해야 한다. 3단계로는 성공사례가 많이 나와야 한다. 이번 기회에 농업 생태계를 바꾼다고 생각하고 정책을 정비할 생각이다.

▶강 회장=농민도 소득세를 내라는 제안에 개인적으로는 찬성한다. 물론 지금 농업계 현실에서 받아들여지기는 힘들어 보인다. 농기업 인수ㆍ합병(M&A) 제안도 바람직하다. 농기업 6000여 개가 있지만 대부분 영세하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M&A가 양성화돼야 한다.

▶김 회장=앞서가는 국가에서는 농업 공동체들이 주식회사 형태로 가고 있다. 국가가 보조를 안 하면 새로운 체제로 변화가 일어난다. 주식회사 형태가 발전한 뉴질랜드를 보면 농민은 조합원이 아니라 주주다. 우리 농업에 시급한 것은 규모화다.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은 분업화와 전문화다. 농업을 과거에 하던 사람만 해야 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새로운 주체가 농업에 들어와서 공동체를 이루면 자연스럽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농지 문제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민 차관=일방적인 농지 규제 완화는 옳지 않다. 농지 문제는 단순히 기업 경영 강화를 위해 접근해선 안 된다. 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이 교수=농지를 이대로 놓아두는 것은 문제가 있다. 농지를 이렇게 만들어놓은 것은 헌법이다. 농민들은 농지를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경제적 반대급부가 없다.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제한당한 땅일 뿐 경제재로 활용하지 못한다.

-품목조합은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강 회장=품목조합은 정부가 육성하기보다 농민들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 하고 싶어서 뭉쳐야 자생적이고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정부는 품목조합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지원만 해주면 된다.

▶김 회장=시장주의와 비시장주의가 혼재돼선 안 된다. 미국에서는 협동조합도 잘못 경영하면 그대로 망하게 돼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서 추진하는 품목조합은 또 다른 협동조합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종사하는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서 출자해서 만들었을 때 열정과 에너지가 생기는 것이다.

▶이 교수=과거 우리나라 농민조합은 행정조직과 연계돼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지역조합이 주가 되고 품목조합은 부차적인 것이 됐다. 지역별 조직은 소비자생활협동조합으로 충분하다. 농민조합은 생산자 중심으로 모여야 한다. 지역조합을 통합하는 것은 오히려 대마불사 신화만 키울 수 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조합 개혁 정책도 다시 짚어봐야 한다.

-한식 세계화에 대한 의견은.

▶민 차관=한식을 세계화해 대한민국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고 관련 상품도 팔 수 있다. 일본은 생선을 팔기 위해 스시를 세계화한 것이 아니다. 스시에 들어가는 간장은 조 단위로 팔린다. 또 한국 브랜드 가치가 상승하면 가격을 더 주고도 사게 된다. 세계에서 대한민국 농산물 가치가 올라가게 된다. 우리 농산품은 세계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크지 않다. 품질 경쟁력도 10년만 지나면 중국이 따라올 것이다. 결국 서비스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이 교수=자본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사상누각이다. 한식 세계화를 이루면 우리나라를 알리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농민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것인가. 이탈리아 피자를 이탈리아에서 사오는 것은 아니다. 자본력을 갖춘 농업이 돼야 한식이 세계로 뻗어갔을 때 이득이 발생하는 것이다.



■ 돈되는 농업이라야인재들도 모여든다

-농업 인재는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김홍국 회장=인위적인 인재 육성은 허상이다. 중요한 것은 농업에서도 `돈 냄새`가 나도록 만드는 일이다. 정부는 그런 쪽으로 법이나 규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벌이 꽃을 찾아가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농업교육 시스템은 문제가 심각하다. 수능 점수에 따라 농과대학에 진학하고 졸업 후엔 전혀 다른 진로를 택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교육 시스템과 R&D 체계를 개선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농민 교육도 마찬가지다. 농업 경쟁력이 있는 나라들은 교육 비용도 농민 스스로 부담하고 매우 비싸기도 하다. 그만큼 교육 질이 높다.

▶강용 회장=우리나라 농업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한 울타리에 공존한다. 과감하게 자본논리에 맡길 것은 맡기고 정부에서 육성해야 할 부분은 육성해야 한다. 인재 육성이 정부가 해야 할 가장 큰 일이다. 농대 졸업생들이 농업에 접근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선뜻 농업을 하기가 힘들다. 정부가 예산으로 인턴이나 전문 인력을 선발해 농촌에 보내면 어떨까. 농촌에는 노동력 지원도 되고 향후 농업에 뜻있는 사람들이 현장을 미리 파악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을 모아서 정기적으로 교육하면 된다. 그 사람들이 미래에 농업에 뛰어들면 우리 농업도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래 세대가 농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늘려야 한다.

▶이정재 교수=우리나라 농민이 언젠가 몬산토 주주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꿈을 꾼다.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우리나라 농지 지대를 모두 합하면 400조원이 넘는다. 우리나라 농지를 자본화할 길을 찾으면 그 자본력으로 세계적인 회사를 키울 수 있다. 농업 예산만으로는 부족하다. 먼저 농민들 자본을 모으고 도시 자본을 합치는 방식 등 유연한 방법이 필요하다.

▶민승규 차관=사람에게서 경쟁력이 나온다는 말이 정답이다. 1990년대 후반 벤처 붐이 일었다. 당시 유능한 공무원들도 벤처로 옮겨갔다. 벤처업계에서 성공사례가 계속 나왔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벤처농업대학 입학생을 뽑는 데 180명 정원에 600명이 몰렸다. 시설도 열악한데 왜 지원했느냐는 질문에 "여기 졸업한 사람 중에 성공한 사람이 많다더라"고 답했다. 꿈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런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려면 돈을 벌 수 있는 농업으로 가야 한다. 정부는 앞으로 `3MC+1`에 집중할 생각이다. 첫째는 `마켓 크리에이션(Market Creation)`이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가겠다. 둘째는 `메서드 체인지(Method Change)`다. 돈이 되고 희망이 되는 방법으로 바꿔 가겠다. 셋째가 `마인드 체인지(Mind Change)`다. 농민보다 관료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여기에 어려운 농가들에 대한 배려를 더하고자 한다.

■ 참석자

민승규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이정재 서울대 농생명과학대 교수, 강용 농수산식품CEO연합회장

[사회 = 박재현 국차장 겸 지식부장 / 정리 = 신헌철 기자 / 최승진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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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3 17:14:02 입력, 최종수정 2010.04.13 19: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