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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

‘밤샘’ ‘쪽대본’ 강국, 3D 미래 밝다?

‘밤샘’ ‘쪽대본’ 강국, 3D 미래 밝다?
[134호] 2010년 04월 10일 (토) 10:07:01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최근 3D를 논하는 자리에 가면 늘 사람들이 북적인다. 지난 2월3일 열린 ‘3D 입체영화 토론회 및 비즈 상담회’에는 마련된 좌석의 2배가 넘는 참가자가 몰려왔다. 3월30일 열린 ‘3D 월드 포럼&쇼케이스 2010’이라는 행사장에도 1000여 명이 기웃거려, 주최 측이 예상한 최대 참가 인원 700명을 훌쩍 넘겼다.

영화 <아바타>의 성공 이후 찾아온 3D 열풍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타이탄>처럼 2D 영상을 3D 입체영상으로 변환한 영화들이 잇따라 개봉했다. 해외 영화사에서는 앞으로 <G-포스:기니피그 특공대>와 <슈렉 포에버>와 같은 애니메이션 영화는 물론 <스파이더맨4>와 <쏘우7> 같은 실사영화들도 3D 입체 영상으로 제작할 계획을 세워놓았다. <타이타닉>이나 <매트릭스> <오즈의 마법사> <반지의 제왕> <에일리언> 같은 기존 작품들도 3D 입체로 변환해 새로 개봉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3D 입체 영화가 제작되고 있다. 김훈 소설을 원작으로 한 <현의 노래>(주경중 감독)와 해저 괴물을 물리치는 액션 스릴러물 <제7광구>(윤제균 감독), 2002년 연평해전을 소재로 한 <아름다운 우리>(곽경택 감독)와 같은 영화들을 3D로 만들고 있거나 작업을 계획 중이다. 배경을 3D 입체로 작업한 애니메이션 <풀하우스>, 김지환 감독의 <소울 메이트>, 곽재용 감독의 <메모리>, 민병천 감독의 <한반도의 공룡>도 3D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시사IN 안희태
지난 3월30일 열린 ‘3D 월드 포럼&쇼케이스 2010’ 행사장에서 참가자들이 전용 안경을 쓰고 3D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있다.

영화계뿐만이 아니다. SBS와 디지털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는 오는 6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3D로 중계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안방에서 입체 영상을 즐길 수 있는 3D 텔레비전도 출시됐다. 어느 신문에는 3D 입체 보도사진이 실렸고 한 맥주업체는 3D 콘텐츠를 관람할 수 있는 전용 레스토랑을 만들었다. 여기저기에서 “3D로 또 한번의 생활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예측한다. 무성영상에 처음 소리가 입혀지고 흑백 영상이 처음 컬러 영상으로 바뀌었을 때처럼, 이제부터는 ‘3D 입체가 아닌 영상’은 구닥다리가 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3D는 아이스크림위에 얹는 체리 같은 것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런 3D 혁명론을 강하게 주장하는 이들은 바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삼성전자는 2010년을 ‘3D 텔레비전의 원년’으로 삼고 200만 대 이상 판매할 계획을 세워놓았다. 엘지전자도 100만 대로 3D 텔레비전 판매 목표를 잡았다. 3D 입체 영화는 용량이 워낙 커서 불법 다운로드를 하기가 힘들고 영화관람료도 훨씬 높게 책정할 수 있기에, 영화관들도 3D 확산을 크게 반기며 전용 상영관을 늘리고 있다. 이들에겐 3D가 반드시 대세가 돼야 할 필연적 이유가 있는 셈이다.

업계가 들썩이니 정부도 덩달아 3D에 꽂혔다. 올해를 ‘3D 산업화 원년’으로 만들겠다며 방송통신위원회와 지식경제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각종 3D 지원 정책을 쏟아냈다. 정부가 고대하는 것은 “5억 달러를 투자해 25억 달러 이상을 벌어낸”, 영화 <아바타>와 같은 ‘돈 되는 3D 콘텐츠’이다. 직접 3D 텔레비전도 만들 줄 알고 3D 상영관도 곳곳에 깔린 우리나라이기에, 정책자들은 더욱 조급해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이재웅 원장은 지난 3월30일 포럼에서 이런 염려를 나타냈다. “그릇은 아주 잘 만들어놨는데 알맹이들이 드림웍스(미국 영화제작사)에서부터 들어오면 어떡합니까?”

정작 알맹이를 만드는 사람들은 3D 열풍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이들은 무엇보다, 3D 열풍의 진원지가 된 영화 <아바타>의 성공 비결이 너무 왜곡돼 퍼졌다고 입을 모은다. 영화제작사 신씨네 박관우 이사는 “<아바타>를 3D 입체 기술에만 접목시켜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아바타> 프로듀서는 ‘<아바타>가 아이스크림이라면 3D와 같은 기술은 그 위에 살짝 얹힌 체리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아바타>에서 3D는 단지 캐릭터와 스토리를 탄탄하게 하기 위한 연출 도구로 쓰인 것뿐이다.” <제7광구> 지길웅 촬영감독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아바타>가 3D 상영관보다 2D 상영관에서 훨씬 더 많이 상영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3D 입체 영상이 미래 지향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3D 영화 <현의 노래>의 촬영 현장. 스태프가 입체 안경을 끼고 모니터를 확인하고 있다.

기술만 갖췄다고 바로 그에 따른 콘텐츠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지난 6월부터 <아름다운 우리>라는 3D 영화를 찍기 시작한 곽경택 감독은 “솔직히 나도 입체영화를 만들기 위한 세 번째 눈이 아직 정확하게 자리매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3D 영화 <제7광구>를 기획한 김남수 프로듀서도 “세계적인 트렌드 때문에 3D 콘텐츠를 준비하면서 여러 차례 전문가 조언을 구했다. 기술적 부분에 대해서는 얘기해줄 사람이 많았지만 실제 적용 가능한 콘텐츠 제작 공정 가이드를 제시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영진위 정책은 3D 경쟁력과 관련 적어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콘텐츠를 구성할 ‘이야기’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신씨네 박관우 이사는 “‘이 영상 참 신기하네’는 10분이면 끝난다. 그 이후에는 드라마에 몰입해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2D가 아닌 3D의 드라마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직은 아무도 모르지만,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지금 열심히 찾고 있다. 곽경택 감독은 그것을 ‘입체적 상상력’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3월9일 영화진흥위원회는 ‘3D 인력양성 및 일자리 창출 전략’을 발표했다. 3D가 가장 빠르고 강력하게 자리매김할 영화 부문에서 우리나라가 고급 인력을 선점해 양성해나가면 일자리 문제도 해결되고 외화벌이도 톡톡히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영진위의 ‘3D 인력양성 전략’은 주로 할리우드의 2D 작품을 수주해 3D 입체 영상으로 변환시키는 국내 한 기업의 직원 채용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으로, ‘입체적 상상력’을 지닌 인재를 키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영진위는 100분짜리 2D 영화 한 편을 3D로 전환하는 데 3개월간 인력이 300명 소요되는 이 기업의 작업을 돕기 위해 2012년까지 130억원을 지원해 7000여 명의 인력을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3D 월드 포럼&쇼케이스’ 행사에 참석한 방송통신위원회 송동일 상임위원 말에 따르면, ‘밤만 잘 샌다면’ 우리나라에서의 3D 콘텐츠의 미래는 밝을 수도 있다. “지구상에 영화·드라마 스태프가 몇 달씩 집에 들어가지 않고 밤새며 작업하고, 길거리에서 ‘쪽대본’과 같은 창의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진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으니 3D 입체 콘텐츠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집에 안 들어가고 밤을 새서 3D 텔레비전과 상영관 화면을 채울 영상을 만들어낸다면 “일단 몇 년간은 ‘3D’라는 것만으로 팔아먹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신씨네 박관우 이사가 말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그 몇 년 이후로는 절대로 3D가 콘텐츠를 주도해나가는 시대는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