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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생태계/지식

"스피드 코리아, 1100兆 고속철을 잡아라"

"스피드 코리아, 1100兆 고속철을 잡아라"

  • 입력 : 2010.03.25 02:57 / 수정 : 2010.03.25 03:07

브라질 고속철, 한국이 선정될 가능성 높아
韓中日브라질서 1차전
일본·중국 수주 총력전… 韓, 공사기간 단축 등 장점… 외신 "한국이 가장 유력"
고속철은 '제2의 원전'
23兆브라질 고속철 따내면 1100兆세계시장서도 유리
뭉쳐야 이긴다
기업 혼자 힘으론 역부족… 정부 외교적인 지원 필요

6월쯤 브라질에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주와 같은 '첫 고속철도 수주'의 낭보가 들려올 수 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고속철도 건설 붐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국 정부와 기업들도 23조원 규모의 브라질 고속철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이 사업을 따낼 경우 향후 미국·베트남·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계속 펼쳐질 고속철 프로젝트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브라질은 리우데자네이루~상파울루 등을 잇는 510㎞ 구간에 200억달러(약 23조원)를 들여 고속철을 건설할 사업자를 올 상반기 중 선정할 예정이고, 미국도 지난 1월 플로리다·캘리포니아 등 13개 노선 1만3760㎞에 고속철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중 플로리다 노선은 이르면 금년 말 사업자를 선정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 베트남이 호찌민하노이를 잇는 1560㎞ 고속철 건설 계획을 갖고 있고, 인도(델리~뭄바이 등 4개 노선), 사우디아라비아(메카~메디나), 영국(런던~스코틀랜드) 등도 고속철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중국은 '동서 4개 노선, 남북 4개 노선(四縱四橫)' 형태의 철도망을 구축해 전 국토를 고속철로 덮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고속철을 '제2의 원전'으로"

고속철이 '미래형 교통수단'으로 각광받는 것은 저탄소·친환경 교통수단이라는 인식이 퍼진 데다, 고속철을 건설할 경우 경기부양 효과도 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세계 고속철 시장 규모가 향후 10년간 1조달러(약 1140조원) 이상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지는 현재 1만㎞ 정도인 세계 고속철 총연장이 2025년까지 15년 사이 4만㎞로 늘어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서울산업대 철도전문대학원 박용걸 교수는 "고속철은 원전보다 수요가 10배 이상 클 정도로 무궁무진한 시장"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건당 수십조원 규모인 고속철 시장을 선점하려는 각국의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세계 5번째로 고속철을 건설해 기술력을 갖춘 한국은 정부와 현대로템(고속철도 차량 제작사)·코레일·철도시설공단·철도기술연구원·현대중공업·건설사 등 민간이 합동으로 현지에서 수주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연말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에 이어 고속철을 '제2의 원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고속철 사업은 ▲친환경 녹색산업의 대표주자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 원전사업과 같고 ▲우리가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받아 시작했지만 기술자립을 했다는 점 ▲사업이 건당 최소 수십조원의 대규모인 데다 사업기간이 길고 ▲기술적·경제적 파급 효과가 크다는 점도 비슷하다.

현재 한국·일본·중국 등 아시아 3개국이 브라질 사업 수주전에서 앞서간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프랑스·독일·스페인 등 고속철 강국들도 경쟁에 뛰어든 상태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8일 브라질 육상교통국(ANTT)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한국 컨소시엄이 입찰에 참여한 6개국 가운데 기술적으로 가장 근접해 있으며 계약 조건상으로도 그렇다"고 말했다.

브라질은 한국 컨소시엄이 제시하는 KTX-Ⅱ 기술이전에 큰 호감을 갖고 있고, 한국이 공사기간 단축과 비용 면에서도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사업단 관계자는 전했다.

철도기술연구원 오지택 책임연구원은 "한국은 4년 전부터 브라질 사업 제안서를 준비해와 '한국 말고는 수주할 곳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브라질고속철도한국사업단의 서선덕 단장(한양대 교통공학과 교수)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브라질 고속철 사업자로 선정될 경우 원전 수주 못지않은 쾌거가 될 것"이라며 "한국형 고속철 차량·운영 시스템 수출, 한국 건설기업의 진출 확대 등 다양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고속철 수출에도 차관 제공을 검토하는 등 총력전을 벌이고, 중국도 저가전략 등을 무기로 저돌적인 수주전을 펼치고 있어서 한국의 수주 가능성은 '반반'이라는 신중론도 있다.

"민관 합동의 패키지딜이 핵심"

고속철 사업 수주는 원전과 마찬가지로 정부와 기업의 민관(民官) 공조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고속철 같은) 인프라 사업 수주는 기업 혼자 힘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정부와의 공조를 통한 종합적인 '패키지 딜' 방식이 시장 공략에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차관 제공, 공적 원조 등 자금 지원과 인프라 수주를 연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산업대 박용걸 교수도 "고속철 수출은 철도차량, 건설, 신호, 보수·유지 등이 한꺼번에 시스템으로 나가기 때문에 정부가 국가 대 국가의 문제로 보고 외교적인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철도대학 최연혜 총장은 "브라질 등 개도국들은 고속철도의 기술이전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우리의 기술자립 경험을 전수해 준다면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압축 경제성장과 고속철 등 인프라 구축 과정의 성공 경험을 '상품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총장은 "UAE 원전 수주 때 국산 원전의 핵심기술을 보유한 미국 웨스팅하우스 등과 제휴한 것처럼, 한국형 고속철도의 일부 원천기술을 보유한 프랑스와의 전략적 제휴도 중요한 카드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