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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중국

중비콘(28) 强漢盛唐을 향한 출항...

중비콘(28) 强漢盛唐을 향한 출항...

보아오 포럼 보고를 드려야 겠습니다. 지난 달 25일부터 29일까지 중국 하이난(海南)성 보아오(博鰲)에서 열렸던 국제 포럼 말입니다. 김영희 대기자님을 뫼시고 다녀왔습니다. 후배 기자 2명도 함께 갔고요. 중앙일보는 올해부터 보아오 포럼의 미디어 파트너로 참가합니다. 대규모 취재단이 꾸려진 이유입니다.
 
중국이 보아오 포럼이라는 걸 하겠다고 나선 것은 2001년 쯤입니다. 제가 베이징 특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을 때였지요. 당시 세계의 반응은 '또 다른 짝퉁의 등장' 정도였습니다. '짝퉁 다보스를 만들고 있다'는 비아냥이었죠. 뚜렷이 기억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로부터 14년여가 지난 지금, 누구도 보아오를 짝퉁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빅샷(저명 인사)들이 꼭 초청받고 싶어하는 세계적인 포럼 중 하나가 됐습니다. 올해 빌 게이츠가 참가했다는 건 그 위상을 보여줍니다.
 
'중국에서는 짝퉁도 시간이 지나면 명품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알리바바가 그랬고, 샤오미가 또 그랬습니다. 물론 그들을 '명품'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경쟁력을 가진 상품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샤오미를 짝퉁이라고 폄하하고, 알리바바를 '이베이의 아류'라고 무시하다가 뒷통수 맞은 업체가 한 둘이 아닙니다. 이제 보아오 포럼도 제대로 봐야 합니다.
 
보아오 포럼은 중국의 속내를 읽을 수 있는 이벤트입니다. 무엇이 논의되는 지만 봐도 지금 중국이 어디로 가려하는 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포럼에 적극 참가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중앙일보는 미디어 파트너로서 참석 인사 추천권도 갖습니다. 저희는 내년에도 갑니다. 저희 중국연구소와 상의하면 함께 갈 수 있습니다.
 
올해 역시 많은 걸 보고, 배우고, 느낄 수 있는 포럼이었습니다.
 
남경필.jpg
포럼에 참가한 남경필 경기도시자가 발표하고 있다. 그는 빅데이터를 주제로 한 세션에서 경기도의 빅데이터 운용 사례를 소개했다. 참석자들은 행정, 의료, 안전, 교육 등 각종 정보의 통합 관리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는 경기도 사례에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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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주석이 연단에 올랐다. '아시아의 새로운 미래, 운명공동체를 향하여(亞洲的新未来,邁向命運运共同體)'가 연설 제목이었다. 이번 보아오 포럼의 주제이기도 했다. 그는 하나 된 아시아를 강조했다. 서로 협력하고, 존중하고, 공동 발전하자고 역설했다.10번 만 들어보라 권하고 싶다(중국어는 https://www.youtube.com/watch?v=G2A3taUlypk, 영어는 https://www.youtube.com/watch?v=zVHzJWlFuYg). 중국의 아시아관을 읽을 수 있다.
 
보아오.jpg
 
연설 키워드는 '운명(중국어로는 '命運')이었다. 연설은 '命運共同體'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그전에도 그랬다. 시 주석은 작년 7월 한국을 방문할 때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命運'을 거론했었다. 중국과 한국은 운명공동체라는 얘기였다.
 
'운명'라는 말에는 비장함이 감돈다. 너와 내가 운명공동체라면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관계다. 불과 60년 전만하더라도 우리와 중국은 총뿌리를 겨누는사이였다. 그런 나라가 빠르게 성장하더니, 이제는 '우리는 같은 운명이야'라며 손을 내민다.
 
중국하고,우리가 그런 사이인가? 
도대체 그가 말하는 '命運'의 속뜻은 무엇일까? 

영어에 'We are on same boat'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같은 배에 타고 있다'라는 뜻이다. 그게 바로 시 주석이 말한 '운명공동체'의 콘셉이라는 게 필자의 결론이다. 물론 그 배는 중국이 마련했다. 방향 키도 중국이 쥐고 있다. 시 주석의 연설은 결국 '중국이 커다란 매를 마련했으니 아시아 각국은 그 배에 타라'라는 뜻이다.
 
시 주석 연설의 끝은 '일대일로(一帶一路)'와 AIIB였다. 그는 '멀리있는 친척도 이웃만 못하다(遠親不如近隣)'며 얘기를 풀어갔다. 일대일로는 중국의 독창(獨奏)이 아닌 주변국 모두가 참가하는 합창(合唱)이라고 했다. 추상적인 관념이 아닌 '보면 알 수 있고(看得見), 찾아보면 얻을 수 있는(摸得着)'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AIIB는 열려있으니 모두 참가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운명'에서 시작해 '일대일로'로 마무리 된 시진핑의 연설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배의 행선지가 어디인지를 보여준다. 서쪽으로는 실크로드경제벨트요(一帶), 남쪽으로는 해양실크로드(一路)다. 그 배가 지금 승선을 기다리며 보아오 항구에 정박하고 있다. 시 주석은 약 60여개 나라와 국제 조직이 배에 타겠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했다.
 
'시진핑호'가 궁극적으로 닿고자 하는 목적지는 어디인가?
 
시 주석이 ‘중국의 꿈(中國夢)’을 제기한 건 2012년 11월이었다. 중국 권력의 정점인 총서기에 오른 직후다. 당시 그는 ‘중화민족의 부흥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꿈’이라고 했다. 1년여 뒤 시 주석은 카자흐스탄(2013년 9월)과 인도네시아(11월)를 잇따라 방문하면서 ‘일대일로’ 구상을 내놨다. 그러기에 2000여 년 전 고대 물류망을 현대에 부활시킨다는 일대일로 구상은 중국몽의 표현이라고 할 만하다(이하 중앙일보 13일자 서소문 포럼과 겹침).
 
그러나 ‘실크로드 개발’이란 표현의 지적소유권은 중국이 아닌 미국에 있다. 2011년 9월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이 제기한 ‘뉴 실크로드 이니셔티브’가 원조다.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실크로드가 지나는 중앙아시아 국가의 사회간접자본(SOC) 개발을 돕고, 무역을 자유롭게 하자는 제안이었다. 시 주석은 이를 더 넓게 확대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클린턴의 실크로드’는 지금 흔적도 없다. 미국이 중앙아시아 경제 발전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돈 때문이다. 클린턴의 제안에는 돈이 빠져 있었다. SOC 개발만 얘기했지, 필요한 돈을 누가 어떻게 조달할지에 대한 플랜이 없었다. 그러나 ‘시진핑의 일대일로’는 달랐다. 개발 융자를 위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제안하면서 500억 달러를 내놨다. 이와는 별도로 신실크로드기금으로 400억 달러를 조성하겠다고도 했다. 재정적자에 쪼들리는 미국으로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주변국의 성장을 돕고, 함께 발전하겠다는 중국의 ‘합작공영’ 논리가 지금 세계에 먹히고 있다. 돈이 힘을 만들고, 힘이 논리를 만드는 형국이다. 중국식 글로벌 전략이 통하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이 글로벌 경제무대에 본격 등장한 계기는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었다. 이는 중국이 미국 중심의 서방 글로벌시스템에 편입됐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일대일로는 다르다. 서방 체제로의 편입이 아닌, 중국의 스탠더드를 갖고 독자 세력권을 형성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일대일로 권역에서는 런민비(人民幣)로 교역하자’는 제안이 이를 말해준다. 개발 사업을 주도하게 될 AIIB는 어쨌든 중국의 의도대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중국을 머리로 하는 경제권이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이 일대일로 전략을 추진하면서 앞세우는 게 바로 철도다. 시속 200㎞ 이상 달리는 고속철도가 그 무기다. 중국에 고속철도가 등장한 것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맞춰 개통된 베이징~톈진(天津) 구간이 그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7년 만에 세계 전체 고속철도의 약 60%(약 1만6000㎞)를 가진 ‘철도 강국’으로 성장하더니 이제는 국경을 넘어 달리려 한다. 이미 라오스~태국~싱가포르를 잇는 동남아 노선이 설계 단계에 접어들었고, 중앙아시아를 넘어 유럽에 닿는 노선도 검토 중이란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동남아·동유럽·아프리카 등 일대일로 지역을 돌며 ‘고철(高鐵·고속철도)외교’에 나선다.
 
철도는 글로벌 경제 판도의 가늠자 역할을 한다. 영국·미국이 세계 경제 패권을 장악할 수 있게 해준 동력이 바로 철도였다. 미국의 경우 1800년대 말 이뤄진 대륙횡단 철도 건설과 함께 ‘가자 서부로(Go West)!’ 붐이 일었고, 경제는 빠르게 통합됐다. 20세기 패권의 힘은 그렇게 축적됐다. 중국 상황도 비슷하다. 산둥(山東)성을 출발한 고속철도가 서쪽 끝 신장(新疆) 우루무치에 닿고, 상하이에서 시작된 노선이 서부 충칭(重慶)까지 이어지면서 ‘Go West’ 붐이 일고 있다. 호사가들은 이를 들어 ‘중국이 일대일로를 타고 세계 패권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고 말한다.
 
중국은 몸을 사린다. 시 주석은 보아오 포럼 연설에서 “근대 이후 100여 년 동안 분쟁과 전화에 휩싸인 중국은 그 비참한 경험을 절대로 다른 나라, 다른 민족에게 강요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패권에 대한 부정이다. 오로지 협력과 공동 발전만이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렇다고 ‘일대일로를 통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겠다’는 그의 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게 바로 중국몽과 일대일로를 관통하는 철학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꼽는 중화민족의 가장 위대했던 시절은 한(漢)나라와 당(唐)나라다. 실크로드 개척이 이뤄진 때가 한나라요, 그 길을 통해 물자가 가장 활발하게 오고간 때가 당나라 때다. 흔히 '강한성당(强漢盛唐. 강한 한나라, 번성한 당나라)'이라 부른다. 그러기에 실크로드를 현대에 복원하자는 일대일로는 단순한 해외 개발 사업이 아닌 중국의 역사 흐름을 바꾸려는 역사 공정이다. 강한성당이라는 중국몽 철학이 현실되는 표상이 바로 일대일로요, 서쪽으로 내달리는 고속철도는 그 상징물이다.
 
보아오 포럼의 시 주석 연설은 '시진핑호'의 출항 세리머니를 방불케 한다. 그 배는 역사를 거슬러 '强漢盛唐'을 향하고 있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woodyh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