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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백공’ 은 중국으로 몰리는데 … [중앙일보]

[노트북을 열며] ‘백공’ 은 중국으로 몰리는데 …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3-04-01 오전 12:46:00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70세 노인 공자(孔子)가 20대의 젊은 왕 애공(哀公)과 마주 앉는다. BC 482년의 일이다. 애공이 정치를 물었다. 공자는 “나라를 천하 대국으로 키우려면 왕은 9가지 요건(九經)을 갖춰야 한다”며 ‘신하를 존경하고(敬大臣), 서민을 내 아들처럼 보듬어라(子庶民)’는 등의 9가지를 제시했다. ‘구경’에는 또 ‘백공을 불러 모아라(來百工)’는 말도 나온다. 기술 인재를 널리 모으라는 충고였다. 뜬금없이 『중용(中庸)』의 한 구절을 꺼내 든 이유는 중국의 경제 지형도를 바꾸고 있는 ‘현대판 백공’의 활약 때문이다. 이런 식이다.

 요즘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베이 브리지(샌프란시스코-오클랜드 연결)에서는 매일 밤 LED 축제가 열린다. 2만5000개의 LED 조명이 바닷물과 어울려 환상적인 ‘빛의 쇼’를 연출한다. 유명 조명 예술가인 레오 빌라리얼의 작품으로 세계 최대 규모다. 조명 기구 선택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그가 베이 브리지 쇼를 위해 선택한 조명 회사는 ‘잉페이터(英飛特)’. 인벤트로닉스(Inventronics)’라는 영어 이름을 가진 중국 업체다.

 세계 조명 업계는 깜짝 놀랐다. ‘뭐? 중국 회사가 빌라리얼을 만족시킬 만한 예술성과 민감성을 갖췄다고?’ ‘티셔츠나 만들어 수출하던 나라가 어찌 조명 디자인 분야에….’ 종업원 1000여 명 규모의 한 항저우(杭州) 기업은 금세 업계 스타가 됐다. 이 회사 사장 화구이차오(華桂潮)는 미국 버지니아공대 출신의 유학파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힘은 중국이 2008년부터 실시한 해외 인재 유치 프로젝트인 ‘천인계획(千人計劃)’이었다. 잉페이터는 천인계획 대상자로 선정돼 각종 혜택을 제공받았고, 덕택에 기술개발에 매진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38개의 관련 특허를 내기도 했다. 그 결과가 베이 브리지로 이어진 것이다.

 ‘천인계획’에 따라 국가 지원을 받는 인재는 이미 20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생명공학 분야의 스이궁(施一公) 칭화대 교수, 통신업체인 촹이(創毅)를 설립한 장휘(張輝) 회장, 충전기 전문업체인 푸넝(普能) 설립자인 위전화(兪振華) 회장…. 이들은 생명공학·IT통신·첨단 소재 등의 분야에서 산업지도를 바꿔 가고 있다. 우리가 알던 중국은 ‘미국에 셔츠 1억 벌을 팔아 보잉기 한 대를 수입하는 나라’였다. 그러나 이제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대미 수출 중 신발·의류 등 저부가 임가공 제품은 전년 대비 5% 증가에 그친 반면 전자·기계·소재 등 고부가 제품은 24%가 늘었다. ‘백공’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 변화다.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과연 ‘백공’을 끌어 모을 생태계 조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혹 ‘백공’을 백안시해 찾아오는 그들을 오히려 쫓아내고 있지는 않은가? ‘백공이 모이면 재화가 풍족해진다(來百工則財用足)’는 2500년 전 공자님 말씀이 절실히 다가오는 요즘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