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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스타일’은 과학 스타일

‘강남스타일’은 과학 스타일

말춤과 후크송에 숨겨진 과학적 요소

2012년 08월 21일(화)

> 융합·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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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파사데니시 쇼핑타운에서는 특별한 플래시몹(네티즌들이 오프라인에서 벌이는 일종의 해프닝) 행사가 열렸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약속 장소에 모여든 수백여 명의 네티즌들이 행한 플래시몹의 내용은 다름 아닌 한국의 대중가수 싸이가 부른 ‘강남스타일’ 따라 하기.

그날 거기에 모인 군중들은 서투른 발음으로 ‘오빤 강남 스타일, 오우 섹시 레이디’ 같은 노래 후렴구를 함께 부르는가 하면 말춤을 비롯한 거의 모든 안무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 서울 잠실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강남스타일을 부르고 있는 싸이.  ⓒ연합뉴스
최근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지 약 한 달 만인 20일에는 유튜브 조회수 4천만 건을 돌파했다.

미국의 CNN, LA타임즈, 월스트리트저널, 허핑턴포스트, 프랑스 M6 TV 등 해외 유력 언론이 강남스타일을 집중 조명하는가 하면, 미국의 아침방송에서는 5명의 출연자들이 스튜디오에서 강남스타일의 말춤을 함께 추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강남스타일이란 문구와 말춤을 연상시키는 그림이 새겨진 티셔츠도 해외에서 판매되고 있다. 독일을 기반으로 전 세계에 티셔츠를 전문으로 판매하고 있는 온라인 쇼핑몰 ‘스프레드셔트’가 바로 그곳.

국내에서 한 달째 각종 음원차트 1위를 기록 중이며, 미국과 캐나다 아이튠즈 뮤직비디오 차트 2위를 기록한 ‘강남스타일’의 인기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전문가들에 의하면 누구나 따라 부르기 쉬운 음악과 코믹한 안무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요소에 오묘한 과학적 요소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말춤 탄생의 비밀

먼저 강남스타일 인기의 핵심인 말춤을 살펴보도록 하자. 말춤은 1980년대 중후반 나이트클럽에서 유행했던 춤으로, 30~40대에겐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 복고풍의 춤이 뮤직비디오에 도입된 것은 ‘크라우드소싱’ 덕분이다.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이란 대중 또는 군중이라는 뜻의 ‘크라우드Crowd)’와 외부자원 활용, 즉 ‘아웃소싱(Outsourcing)’의 합성어로, 기업의 생산·서비스 및 문제해결 과정에 불특정 다수의 커뮤니티 혹은 대중들이 참여토록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접근방법을 말한다.

1989년 액손모빌사의 유조선이 알래스카 해안에 좌초돼 물과 얼음이 엉켜 굳어지는 막대한 환경오염 사고가 일어났을 때 그 해결책을 제시한 아이디어도 바로 크라우드소싱 방식에서 나온 바 있다.

이런 크라우드소싱 방식은 최근 과학계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도 이용되고 있는데, 워싱턴 대학의 과학자들이 장기간 미해결 상태로 남겨져 있던 에이즈 바이러스의 증식을 지원하는 단백질 구조의 판독을 5만 7천명 이상의 온라인 게이머들에 의해 해결했던 것이 좋은 사례이다.

싸이는 강남스타일 제작 당시 한두 명의 전문 안무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통해 전국의 내로라하는 유명 안무가들과 댄스팀 등에게 노래에 어울릴 만한 재미있는 춤동작을 만들도록 요청했고,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이 바로 말춤이었다. 즉, 강남스타일의 말춤은 일종의 제한된 크라우드소싱 과정을 거쳐서 탄생한 셈이다.

복고풍의 따라 하기 쉬운 이 말춤 덕분에 ‘각시탈 스타일’, ‘돼지 스타일’, ‘전주 스타일’ 등의 잇단 패러디가 연일 화젯거리로 떠오르며 강남스타일의 인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에서 임직원의 사기 진작과 활기찬 조직문화 형성을 목표로 강남스타일의 패러디 영상을 공모하고 있을 정도다.

심장박동수와 비슷한 수치의 리듬

거기에다 강남스타일의 신나는 음악 속에는 반복적인 후크송 및 테크토닉과 관련된 과학적 요소가 숨어 있다. 후크송이란 노래에 짧고 매력적인 반복구인 ‘후크’를 삽입해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도 그 노래만의 특징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한 노래를 의미한다.

해외에서 K-팝 열풍을 일으킨 원더걸스의 ‘No Body’, 소녀시대의 ‘Gee’, 슈퍼주니어의 ‘Sorry Sorry’ 등이 모두 특정 선율과 가사가 반복되는 특성을 지닌 후크송이다.

인간의 뇌는 수차례 반복되는 자극을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고, 그 결과 기억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뇌의 반복 효과를 가장 잘 이용하는 것이 바로 후크송이다. 후크송의 경우 우연히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게 되면 노래를 좋아하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반복되는 한 소절을 기억하는 각인 효과가 생기게 된다.

또 후크송은 가사가 나오는 유성음 부분과 가사가 나오지 않는 무성음 부분의 비율을 뜻하는 안정도가 다른 장르의 노래에 비해 매우 높으며, 몸치인 사람도 리듬을 타기에 가장 친근한 4분의 4박자로 이루어져 있다.

단순하고 매력적인 후크 부분의 리듬 속도 또한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약 123bpm(beat per minute)으로서 심장박동수와 매우 비슷한 수치이다. 이처럼 생체신호와 비슷한 외부 자극 덕분에 후크송은 뇌를 중독시키는 효과가 있다.

테크토닉은 테크노(techno)와 일렉트로닉(electronic)의 합성어로 단순하면서 반복되는 전자음이 가미된 강한 비트가 특징인 음악 장르의 일종이다. 강남스타일의 경우 각인 효과가 높은 반복적인 후크송에 중독성이 강한 테크토닉의 전자음까지 결합되어 대중에게 더욱 강한 어필을 하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소셜 미디어가 강남스타일의 인기 비결에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이때까지 해외 진출에 성공한 K-팝의 배후에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과 오랜 기간을 염두에 두고 계획한 아이돌 육성 시스템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남스타일의 경우 현지 투어나 세계적인 스태프와의 공동 작업 등 막대한 홍보비용 없이 소셜 미디어를 통한 전파로도 세계적인 히트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 달 만에 4천만 건을 기록한 유튜브의 조회수 중 상당수는 스마트폰 등의 휴대기기를 통해 접속한 건수이며, 그 가운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페이스북을 통해 처음으로 유튜브에 접속한 경우도 매우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조회수의 폭발적 증가는 세계적인 팝스타 저스틴 비버를 발굴해 성공시킨 매니저 스쿠터 브라운(Scooter Braun)이 자신의 트위터에 유튜브와 링크된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에 대한 짤막한 소감을 남긴 것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전해져 새삼 소셜 미디어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12.08.21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