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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의 씨네 칵테일] 實寫-애니 경계 허문 스필버그 ‘틴틴’의 극사실 디지틀 영상

[김명환의 씨네 칵테일] 實寫-애니 경계 허문 스필버그 ‘틴틴’의 극사실 디지틀 영상

  • 김명환 기자

  • 입력 : 2011.12.08 11:56

    17세기 보물선 단서를 손에 넣은 소년, 모험의 소용돌이 속으로…‘인디아나 존스’풍 어드벤쳐
    ‘아바타’식 이모션 3D 기법 도입…배우 연기를 토대로 빚은 인물과 배경 영상,놀라운 사실감

    '틴틴'은 클라이맥스에서 스피디한 추격 신으로 마치 롤러 코스터를 타는듯 짜릿한 재미도 안겨준다. 컴퓨터로 그려낸 장면들이지만 실사영화의 느낌과 거의 차이가 없다./출처=영화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의 한 장면
    디지털 애니메이션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TinTin: The Secret of The Unicorn)은 오랜만의 스필버그 연출작이어서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롤러코스터 타는 듯 도시와 사막과 바다를 종횡무진하는 모험은 충분히 재미있는데, 영화적 새로움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소년 버전의 ’인디애나 존스’ 같아서 익숙한 느낌입니다.

    정작 ‘틴틴…’에서 스필버그의 비범함은 다른 데서 빛나고 있었습니다. 1시간 47분의 상영시간 전체를 채운, 새로운 차원의 디지털 3D영상입니다. 인물들 얼굴 근육의 떨림과 팔다리의 자연스런 움직임으로부터 유럽도시, 중동의 풍광까지를 극사실주의(極寫實主義) 회화처럼 그려내 눈을 휘둥그렇게 뜨게 만듭니다.

    1995년 픽사(Pixar) 스튜디오의 ‘토이 스토리’를 시발로 태어난 컴퓨터 애니메이션이 이 작품에 이르러 실사영화와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더 이상 ‘애니메이션’이라고만 부르기 어려운 신종 영상 장르로 진화한 모습이 ‘틴틴…’에 있었습니다. 스필버그가 피터 잭슨 감독과 손잡고 ‘아바타’의 외계 판타지를 빚어낸 뉴질랜드 웨타 디지털(Weta Digital)사의 ‘이모션 3D’ 기술을 도입한 결과입니다.

    사실 시간·공간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틴틴’의 스케일 큰 어드벤쳐를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영상기술은 필수적인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원작인 에르제(Herge)의 만화 ‘틴틴의 모험’시리즈는 우리나라엔 좀 생소하지만 1929년부터 선보여 세계에 숱한 팬을 거느리고 있는 유럽의 걸작이라고 합니다. ‘틴틴:유니콘호의 비밀’은 에르제의 만화 중 1943년작 ‘유니콘호의 비밀’은 물론, ‘황금 집게발 달린 게’(1941년작), ‘라캄의 보물’(1944년작)등 3편의 이야기를 재구성해 만들었습니다.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에서 배에 납치됐다 탈출한 하독 선장과 소년 기자 틴틴이 구명정에 탄 채 망망대해에 떠 있다./출처=영화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의 한 장면
    주인공인 ‘틴틴’은 어린 나이에 여러 특종 취재를 해낸 소년기자입니다. 그는 벼룩시장에서 모형 범선을 샀다가 정체 모를 사람들에게 납치되면서 큰 소용돌이에 휩쓸립니다. 주정뱅이 하독 선장을 만나 악당들 손아귀에서 탈출한 틴틴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17세기에 보물을 가득 싣고 침몰한 해적왕 레드 라캄의 선박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의 일부가 모형에 있었던 것입니다. 지중해와 사하라 사막을 종횡무진 달리며, 쫓고 쫓기는 대모험이 시작됩니다.

    '틴틴:유니콘호의 비밀'에서 주인공 틴틴은 세계 곳곳을 무대로 모험을 펼친다. 사진은 영화 후반부 중동 지역에서의 야외 성악 공연장 장면./출처=영화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의 한 장면
    틴틴의 모험은 끝없는 사막과 망망대해는 물론, 복엽기를 타고 하늘로까지 이어집니다. 보물을 찾기 위해 인물들이 먼지 날리는 중동 지방이나 컴컴한 지하 굴에 들어가 헤매는 모습은 영락없는 ‘인디애나 존스’의 분위기 그대로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스필버그의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는 이 에르제 만화 ‘틴틴의 모험’시리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왜 스필버그는 ‘틴틴의 모험’ 만화를 실사영화로 찍지 않고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을까요. 그 의문은 이 작품 중반 이후부터 폭발하는 스펙터클한 모험 액션 장면을 보면서 풀리기 시작합니다. 거대한 범선이 폭발해 날아가고, 탱크 한 대가 작은 호텔 건물을 통째로 질질 끌고 이동합니다. 작은 도시 전체가 쑥밭이 되기도 합니다. 실사로 해결하기엔 너무나 힘든 장면들이 수두룩합니다. 전 분량을 새 차원의 디지틀 영상으로 만드는 건, 폭약도 스턴트도 해외 로케이션 비용도 필요없는 명쾌한 대안일 수 있습니다.

    디지털 영상속 인물들의 표정과 동작 표현도 획기적입니다. ‘틴틴…’의 인물들은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완전히 사람 그 자체의 움직입니다. 틴틴 역에 제이미 벨, 사카린 역에 다니엘 크레이그 등, 캐릭터마다 실제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그들의 움직임과 표정을 촬영하여 디지털 기술로 그대로 구현했다고 합니다.

    인물뿐 아닙니다. 거센 파도가 춤추는 끝없는 바다, 강풍에 흩뿌려지는 사막의 모래가루들, 해질 무렵의 검푸른 구름과 그 사이로 보이는 검붉은 노을의 색감까지를 실사영화처럼 재현해냈습니다. 흰 강아지 스노위의 털은 ‘후’ 불면 누울 듯 부드럽습니다. 브라우닝 하이파워 권총, MP-40 기관단총, 윌리스 지프 등 무기와 군 장비, 범선 실내의 벽에 걸린 모르스 신호표까지 꼼꼼하게 그려낸 소품의 디테일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카메라 시점을 자유자재로 할수 있는 디지털 영상의 위력은 모로코 왕국 항구도시의 추격전에서 클라이맥스에 이릅니다. 댐을 터뜨리는 바람에 쏟아져 나온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작은 마을길 곳곳을 순식간에 채워가는 동안, 벌이는 추격전 대목을 쇼트 분할 없이 롱 테이크로 잡아낸 대목은 이 작품에서 첫 손 꼽을 장면입니다.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에서 의문의 살해를 당한 사람이 신문지에 남긴 단서를 틴틴(오른쪽)이 쌍둥이 톰슨 형사와 함께 살펴보고 있다. 형사 2명의 모습은 만화적이지만 틴틴은 거의 실사영화속 인물처럼 리얼하게 그렸다./출처=영화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의 한 장면
    실제 촬영 영상을 디지털 필터로 재가공한 듯한 ‘틴틴…’은 실사 영화나 전통적 애니메이션과 구별되는 시각적 판타지를 체험하게 합니다. 실사영화를 모방하는데서 나아가 새로운 표현력도 슬쩍 보여줍니다. 진짜 사람처럼 리얼한 틴틴 같은 인물과 주먹코의 쌍둥이 톰슨 형사처럼 만화적으로 변형된 얼굴들이 어울려 빚는 기묘한 느낌이 그 중 하나입니다.

    ‘틴틴…’은 렌즈 달린 카메라를 벗어나는 새로운 영화를 꿈꾸는 스필버그의 실험 같습니다. 스필버그는 1983년 에르제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만화의 영화화 판권을 샀지만 “제대로 영화화할 기술이 아직 없다”며 판권을 포기했다가 2002년 다시 사들인 끝에 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스필버그 감독이 살아있을 때, 그의 모험소년적 열정이 식지 않았을 때, 디지털 영상기술의 혁신이 이뤄진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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