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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

스마트폰 '혁명' 이끌 신리더십은?

입력 : 2010.03.22 11:16

‘킬러애플리케이션’의 저자 래리 다운즈•춘카 무이는 원래의 사용 목적을 뛰어넘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킬러앱’으로 정의했다.


중세에 기병이 전투의 핵으로 부각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지주계급이 만들어 지고 그를 위해 카톨릭 교회가 소유한 땅을 몰수하여 중세교회와 국가 간의 관계가 영원히 바뀌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등자(鐙子)’가 이러한 킬러앱의 전형이다. 등자의 등장으로 비로서 말에서 안정되게 활을 쏘고 칼과 창을 보다 강하고 위협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당시 전쟁의 개념이 바뀌고 로마가 멸망하고 역사가 뒤바뀌게 된다.


최근 스마트폰도 제품의 용도를 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그 파급효과를 넓혀갈 것으로 예상되며 이로 인해 종래 기업간 경쟁구도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생활에서 정치적인 역학관계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이고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돼 가히 현대판 ‘등자’라 할 수 있다.


이같이 비연속적이고 파괴적이고 혁명적이며 돌연적인 킬러앱의 출현은 토머스 쿤이 말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생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으며 기업이 이 같은 혁명적 전환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전면적이고 본질적인 이해와 대처가 관건이 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리더십 확보가 핵심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리더십 부재를 한탄하는 이들이 많다. ‘정직’의 리더십은 긴 그림자를 남기고 ‘불도저’의 리더십은 맞서야 할 때 물러서고 ‘미소’의 리더십은 점차 그 따스함을 잃어가고 있다고들 한다. 한때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던 일부 기업인들도 기업과 생사를 같이하지 않고 적당한 때 자기 몫을 챙겨 떠나거나 유명세에 의존 ‘말 빚’으로 살아간다고도 한다.  


스마트폰 시대 새로운 리더십을 얘기 하기 전에 우리는 애플의 경우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애플에는 인기 연예인 못지 않은 ‘광팬’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들이 전세계에 애플 제품을 홍보하고 전파하는 일등공신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는 다른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기이한(?) 현상일 수 있으나 회계상에도 나타나지 않고 값을 매길 수도 없는 이들이 애플의 진짜 자산이다.

스티브 잡스

그렇다면 애플은 이 같은 귀중한 자산을 어떻게 얻게 되었을까? 많은 이들은 바로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 덕분이라고 얘기한다. 그의 리더십은 간혹 ‘나 홀로’ 늑대의 리더십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이는 양자의 경우가 많이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개과에 속하는 무리 동물인 늑대는 철저한 집단 생활을 하는데 그 중 일부는 집단에서 버려진 채 ‘나 홀로’ 생활을 하다 죽어간다. 그런데 버려진 나 홀로 늑대 중 일부는 끈질긴 자기 변화의 과정을 거쳐 살아남아 다른 무리의 우두머리를 제압하고 리더가 되기도 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나 홀로’ 늑대 출신의 리더가 있는 무리가 황야 최강의 집단이 된다는 것이다.


‘나 홀로’ 늑대와 유사한 경험을 한 스티브 잡스 리더십의 핵심도‘나 홀로’늑대처럼 사투 끝에 깨달은 처절한 생존의 방식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생존하기 위해 경쟁에서 이기는 법,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의 애플의 경영방식을 보면 고객과의 강렬한 소통  그리고 그것을 통해 고객을 환호하게 하고 고객을 춤추게 하는 ‘그 무엇’이 아닌가 싶다.


‘그 무엇’은 집착에 가까운 고객 만족, 고객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보이는 아이팟과 아이튠스 그리고 아이폰과 앱스토어의 비즈니스 모델, 시선을 사로잡는 직관적 UX(User Experience)와 디자인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으며 특히 통상의 수준을 뛰어넘은 ‘디테일’의 완성도(눈에 잘 뜨이지 않는 부분까지도)는 이른바 ‘명품’이 갖는 품질 요소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애플의 마지막 방점이다. 반면 고객과의 직접 소통을 방해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이 업계의 관습이든 권위이든 묵계이든 그에게는 저항의 대상이 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과 품질을 고객의 눈높이에서 철저히 통제하는 마지막 관문인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은 ‘고객의, 고객에 의한, 고객을 위한’ 리더십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지독한 팔로우십(Followship) 즉 리더 이전에 깐깐한 소비자로 존재하는 스티브 잡스가 있다. 이것이 ‘나 홀로’ 늑대가 깨달은 지혜가 아닌가 하며 이를 통해 시장 점유율이 아닌 생태계(Ecosystem)를 확대하고, 제품이 아닌 생태계를 판매하는 이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기업은 어떤가? (최근 애플을 과대 찬양하고 아무 고민과 대안 없이 우리 기업을 깎아 내리는 일로 자신의 명성과 지가를 올리려는 일부 시류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한다.) 안타깝게도 잡스러운 상술과 무지에 가까운 교만함으로 기업과 고객 사이에 불신과 미움만 가득 키워 놓았다. 사실 애플의 아이폰과 앱스토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대단한 아이디어나 기술은 아니다. 인터넷을 휴대폰에서도 자유롭게 쓰고 싶어하는 대다수 고객의 오래된 바램을 충족시켜주고자 노력한 결과물일 뿐이다. 그러나 그 같은 고객의 절절한 소망에 우리 기업은 어떠했나?


(각설하고 ‘통제된 시장(Walled Garden)‘에서 10년 넘게 희생시켜온 ‘바보’ 고객에게 한 마디 사과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스마트폰 혁명이라 하면 대단한 것 같지만 사실 출발점은 고객의 눈물 한 방울이다. 우리 기업은 아직도 자신들이 구축한 교묘한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고객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생태계도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객 지향적이 아닌 이윤지향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소비시켜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법적으로 보장된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고객의 아픔과 바램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우리 기업은 아직도 스마트폰과 앱스토어만 쳐다보고 그들의 존재 근거인 ‘진화한 소비자’들에게는 시선을 돌리지 않고 있다.


아이폰이 나오고 몇 해가 지나도록  여전히 스마트폰 비즈니스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국내 기업의 문제점은 인재가 없어서도 기술이 부족해서도 아이디어가 없어서도 아니며 고객의 마음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리더십의 부재가 우선이 아닌가 한다.


초고속 승진의 주인공, 미스터 xxx, xxx의 법칙, xxx 전도사, xxx 개발 신화의 주인공은 등은 많아도 고객이 믿고 따르며 마음으로부터 사랑하는 리더십은 찾아보기 어렵다. 고객은 아파하고 분에 겨워 눈물을 흘려도 그 눈물을 닦아주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의 리더십은 보질 못했다. 고객에게 부정직한 행위를 하여 손해를 끼쳤을 때에도 진심으로 사과하고 잘못을 비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의 리더십도 알지 못한다. 고객의 간절한 바람을 이루어주고자 비도덕적인 상술과 비열한 업계의 관행에 맞서 싸웠다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의 리더십도 더더욱 들어본 적이 없다.


연봉 수십억, 수백억을 받아도 고객의 자그마한 사랑 하나 받지 못하는 리더십, 그룹총수의 사랑은 간절해도 고객의 사랑은 필요 없는 리더십은 시장의 권력이 ‘진화한 소비자’의 손으로 넘어간 지금, 종언(終言)을 고해야 할 때이다.


재위 32년에 농업 생산성 400% 증가시키고 15세기 세계 과학기술 성과 62개 중 29개를 차지하는 업적을 이뤄낸 세종은 국가가 존속하려면 충분한 군사력(足兵), 충분한 먹을거리(足食), 백성의 신뢰(民信)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부득이 한가지씩 버려야 한다면 군사, 먹을 것 순으로 버리라 했으며 마지막까지 백성의 신뢰와 마음은 지켜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세종은 백성을 위하는 ‘위민(爲民)’의 단계를 넘어 백성과 동고동락하는 것을 즐기는 ‘여민(與民)’의 리더십을 몸소 보여주었다.


현대판 ‘등자’인 스마트폰 혁명의 시기, 질풍노도의 변화시기, 신 질서와 구 질서가 시장에서 충돌하는 시기인 작금의 상황이 마치 카오스와 같은 혼돈의 상태처럼 보일 지 모르지만 변혁의 중심에 있는 ‘진화한 소비자’는 그 ‘답’을 알고 있다.  그리고 ‘답’을 가르쳐 주고 싶어 한다. 우리 소비자들이 애플과 아이폰에 열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에는 그간 아쉽고 서운했던, 그래서 미웠던 우리 기업과 제품에 대한 ‘채찍’과 ‘분발’을 촉구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필자는 느낀다. 계산이 깔려있는 스티브 잡스의 ‘위민’의 리더십보다 고객과 동고동락하는 우리 고유의 ‘여민’의 리더십으로, 아직 ‘답’을 가르쳐 주고 싶어하는 우리 고객의 마음에 나아가 세계 고객의 마음에 진실하고 겸허하게 다가서자. 소비자의 마음을 얻으면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지 않은가.

K모바일 류지영대표(@jy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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