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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

[기고] 한국은 이제 인터넷 후진국이다

[기고] 한국은 이제 인터넷 후진국이다

  • 이민화 기업호민관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입력 : 2010.03.21 21:59 / 수정 : 2010.03.21 23:10

이민화 기업호민관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한국은 1995년에서 2000년까지 외환위기 와중에서도 인터넷 강국으로 부상했다. 또 하나의 한강의 기적이다. 분명히 우리는 웹(Web) 1.0시대의 강자(强者)였다. 그러나 우리는 웹 2.0시대에서도 강자인가.

이미 통계로도 한국은 웹 2.0시대의 후진국이다. 작년 말 기준 무선인터넷 보급률은 OECD 평균이 20%대인 데 비하여, 한국은 최하위인 1%대이다. 한국은 무선 상거래가 전무(全無)하나, 일본의 무선 상거래 규모는 재작년에 1조엔을 넘어섰다. 한국은 보안(保安)의 적(敵)으로 인식돼 세계의 기피 대상인 마이크로소프트 ACTIVE-X 사용률 세계 1위다. 한국의 주요 웹사이트의 호환성과 접근성 수준은 외국에 매우 뒤처진다. 정부 개방도 마찬가지다.

2000년까지 한국의 인터넷 보안은 세계 최고였다. 128비트 보안 플러그인을 자체 개발한 것은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성과였다. 그러나 2000년 이후 128비트 이상의 보안이 무료화됐으나 한국은 여전히 플러그인을 다운로드받아야 하는 방식으로 '나 홀로 보안'을 고집하고 있다.

한국은 ACTIVE-X 관련 트래픽의 압도적 세계 1위로서 바이러스 등 악성(惡性) 프로그램이 침입할 소지를 가장 많이 제공하고 있다. ACTIVE-X를 이용한 다운로드는 마이크로소프트조차도 앞으로 이를 배제할 예정이다.

한국은 또 세계 평균 60%대인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점유율이 98%라는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 결과 국내에서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작동하는 각종 거래 솔루션이 시장(市場)을 장악하고 있으나, 이런 솔루션은 세계 시장에는 아예 판로(販路) 자체가 없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로스 앤더슨 교수팀 등이 최근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한국은 인터넷 피싱 사기의 최대 위험 국가다. 한국식 인터넷 뱅킹 보안 기법은 웹브라우저가 알려주는 보안 경고를 전혀 이용할 수 없다. 한국은 공인인증서의 유출이 가장 심한 국가이다. 웹브라우저들이 채택하는 인증서 저장 표준을 무시하고 특정 위치에 인증서를 저장토록 했기 때문에 해킹에 쉽게 노출된다. 인증서 개인키 파일이 쉽게 유출되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전자서명을 받아둔들, 그 서명을 누가 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한국의 추락은 2000년 이전의 성공에 집착해 규제를 남발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미 바뀌었다. 128비트 이상의 보안이 내장된 더 앞선 기능을 가진 브라우저들이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금융 보안을 위한 바젤 위원회가 "국가가 특정 기술을 강제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이유는 기술의 진화를 바로바로 반영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의 '나 홀로 규제' 아성은 무려 10년간 깨지지 않았다. 스마트폰조차 세계에서 80번째로 도입된 나라가 한국이다. 그런데 늦어도 한참 늦게 도입돼 이제 막 100일이 된 스마트폰이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규제에 억눌렸던 소비자들의 반발이 스마트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갈라파고스 환상'을 벗어나 웹 2.0의 세계적 흐름을 함께 타야 한다. 제한적 실명제, 게임물 사전 등급제, 공인인증서 등 각종 규제가 가로막은 한국의 왜곡된 인터넷 환경을 이제는 바로잡아야 한다. 아직도 한국이 인터넷 강국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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