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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

"모방은 전략이 될 수 없다" 1세대 벤처인의 쓴소리

"모방은 전략이 될 수 없다" 1세대 벤처인의 쓴소리
[김경묵의 인물탐구-10]황철주 벤처기업협회장
대담=김경묵 지디넷코리아 편집국장, 정리=황치규
2010.03.21 / PM 02:05

[지디넷코리아]우리 사회에서  '창조'라는 말은 이제 '립서비스'에 가깝게 쓰인다. 말로는 창조, 창조하는데, 행동은 창조와 멀어보일 때가 수두룩하다.  

창조와는 거리가 먼 경영자들도 거룩한 얘기가 필요할때면 종종 창조론을 단골메뉴로 들고 나온다. 이런 창조론이 먹혀들리 없다. 직원들도차 그냥 웃고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현주소다. 

그래서인지 스티브 잡스와는 어울려도 한국사회에 창조를 붙이면 웬지 마음이 불편해진다. 갈수록 그런 것 같다. '창조'란 단어가 의미와는 반대로 '진부하게'까지 느껴진다. 창조를 너무 엉뚱한 용도로 남용한 탓이다. 한국은  창조에 진 빛이 참 많다.  

1세대 벤처로 통하는 반도체 장비 전문 업체 주성엔지니어링 입구. 들어가니 창조적 명품을 만들자는 인상적인 플래카드가 눈에 확 띈다.  

또 창조? 그것도 창조적 명품? 대표 방에 올라가면서도 '창조'란 문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반도체 시장에서 앞선 기술에 집착하는 대표적인'쟁이'로 통하는 황철주 사장에 대한 추억과 창조에 대한 거부감이 맞물리니 기분이 참 묘해진다. 듣고 싶은 호기심과 피하고 싶은 감정이 교차했다.  

이에 창조보다는 다른 키워드를 뽑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결국 얼마 못가 '황철주식 창조론'에 발목이 잡혔다.  

창조, 그것도 창조적 명품 얘기가 나오자 황철주 사장은 평소답지 않은(?) 언변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특유의 스타일대로 조용하면서 짧게 대답했는데 창조적 명품을 말할때만큼은 목소리에 힘이 실렸고, 시간도 오래 끌었다.  

빈말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하고 싶은 얘기가 정말로 많아 보였다. 올해부터 벤처기업협회장을 맡아서? 꼭 그런것만은 아닌것 같다. 참다참다 이제 할말은 좀더 해야겠다는 표정이다. 작정하고 꺼낸 듯하다. 

■"벤처도 대기업도 창조적 명품이 없다"

 

나름 이유가 있다. 까칠하다는 핀잔을 듣더라고 기본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이대로 가면 한국 경제와 사회가 몰락하는 상황을 지켜볼 수 밖에 없다는 비극적인 상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살벌한 상황 판단이 아닐까? 그는 "겁주는게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플랫폼이 잘못되면 그위에서 돌아가는 서비스가 엉망이 되는 것처럼 한국 경제도 구조에 일대 전환이 없으면 위험해 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황 회장 눈에 비친 한국은 아직 20세기 패러다임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모방을 통해 선진국을 추격하는 '벤치마킹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탁월한 모방 전략은 90년대까지는 그런대로 먹혀들었다. 빨리빨리 그리고 열심히 하다보니 삼성은 소니를 추월하는 대반전의 드라마를 연출했고 한국산 자동차가 세계를 누비는 장면도 구경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지금은? 1등을 따라잡았는데도 계속 따라잡겠다는 마인드로 앞만 보고 뛰다보니 길을 잃고 허둥대는 형국이다.

 

"우리나라 산업은 50년 역사인데, 많은 분야에서 이미 세계적인 반열에 올라섰어요. 사실 별거 없었어요. 다른 업체가 하는 것보다 좀 좋게 그리고 더 싸게 만들어서 내왔던 겁니다. 열심히 했으니 추격에 성공한거죠. 그러나 규모의 성장은 했지만 창조적 명품으로 불릴만한 제품이나 서비스는 하나도 못만들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이대로 가면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황철주 회장은 이런 상황이 너무 위험해 보인다고 했다. 몸은 벌써 어른이 됐는데, 생각은 아직도 어린아이여서 스스로 하기보다는 누가 하라고 시켜주기만을 바라는 미숙아같다는 것이었다. 그가 미래를 우려하는 이유다.

 

틀린말은 아니다. 황 회장 말고도 많은 이들이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대기업들로 하여금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양적 성장에만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뭔가 이상한 지금의 상황이 대기업에게만 해당되는 문제일가? 벤처도 자유로울 수 없다. 황 회장도 "왜곡된 벤처관을 집어던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벤처의 성공이 뭡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굉장히 중요해요. 기업 공개(IPO)하면 성공인가요? 그렇다면 수단방법 안가리고 IPO하면 돼요. 그런데 그건 아니잖아요? IPO가 목표면 한국엔 성공한 벤처들 많습니다. 그려면 이들이 성공한 벤처로 불리고 있습니까? 벤처는 무엇을 하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필요해요. 실패는 할 수 있어요. 그래도 목표만큼은 분명해야 합니다."

 

벤처의 목표는 결국 창조적 명품론으로 요약됐다. 창조적 명품을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창업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돈보고 덤비면 사회도 망치고 스스로도 망할 확률이 높다.

 

"이런 것에 대해 누구하나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어요. 벤처 인증 내줄때 이런 교육을 단 10분이라도 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김대중 정부는 90년대말 IMF 위기 극복을 위해 벤처 활성화를 적극 추진했다. 이후 벤처기업이 폭발적으로 증가, 한국 경제의 구원투수가 될 것이란 평가까지 받았지만 지금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조금 심하게 표현하면 반신불수가 됐다.

 

성공한 벤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모럴 해저드에 빠져 사회적 지탄을 받은 벤처도 많았고, 시작은 화려했는데 지금은 추억의 벤처가 된 곳들도 수두룩하다. 살아있어도 명맥만 겨우 유지하는 벤처들도 적지 않다. 10년전 벤처가 짜릿한 모험과 기회의 의미로 다가왔다면 지금의 벤처는 위험하다는 의미에 무게가 실린다.

 

"그래도 희망은 벤처뿐입니다. 창조적 명품이 나올때가 벤처밖에 없어요."

 

언변이 '있다', '없다'로 나누면 '없다'쪽에 분류되는 그가 공개적으로 창조적 명품론을 들고 나온 것은 궁극적으로 이말이 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벤처를 중심으로 창조적 명품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변변한 산업이 없는 유럽이 버티는 것도 명품이 있기 때문이에요. 한국도 이제 명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나 벤처기업을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과 정책이 필요합니다. 10년안에 명품 50개 만들면 한국경제는 10년을 버틸 겁니다. 명품을 밀어주는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협회를 통해 했으면 좋겠어요. 창조적인 것은 20대 젊은층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발굴해서 명품을 만들 수 있도록 협회안에 벤처기업 연구조합도 만들어서 시행할 계획입니다."

 

벤처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주문도 이어졌다.

 

"매출이 내려가면 이익을 못내는 벤처는 나쁜 기업으로 평가받는데, 앞으로 2년, 3년후 더 큰 성공을 위해 한해 정도 적자보는 것은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분식 회계가 없어져요. 연구개발 투자하느라 수익성이 다소 떨어진 것을 나쁘게 볼 필요가 없잖아요?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하는 벤처기업들을 인정해주고 오히려 칭찬도 해줬으면 좋겠어요."

 

창조적 명품은 그럴듯한 얘기지만 실행파일을 만들기는 만만치 않을 일이다. 과거와의 결별도 쉽지 않다.
황 회장은 이에 대해 "리더의 문제"라고 결론 내렸다.

 

"우니나라 기업들의 노동 생산성이 경쟁국 대비 30~40% 정도 밖에 안되요. 리더의 문제입니다. 다른데서 기술이전 받아 성장하는데만 익숙해져 있어요. 다른 누군가에게 전수해줄 노하우가 없었습니다. 기업내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노하우를 공유하는 프로세스가 없어요. 100명의 직원들에게 6시에 지디넷코리아앞에서 만나자고 하는 상황을 예로 들어볼께요.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부분 알아서 오라고 합니다. 몇시쯤에는 막힐 수 있으니, 빨리 오는 길을 알려주거나 하지는 않아요. 늦지말고 오라는 것 뿐입니다.  노력은 2배, 3배 하는데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입니다. 노동자 잘못이 아닙니다. 일을 시키는 리더의 문제에요.

 

■ 차별화된 기술 있기에 사업 다각화도 가능

 

교수님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학계에서 창조적 명품론을 외쳤다면 황 회장과 같는 느낌은 주지 못할 것이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행동하지 않고 말로만 거룩한 얘기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황 회장이라면 다르다. 주성엔지니어링을 창업하고 지금까지 키워온 경영자로서 황 회장은 창조적 명품론을 꺼낼 자격이 분명 있다.


95년 설립된 주성은 우리나라에서 벤처 1세대로 분류된다. 주성은 95년 한국에선 불가능에 가까웠던 반도체 전공정 장비를 들고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남들이 하는 것을 안전하게 따라하지 않고 아무도 안하는 분야에 깃발을 먼저 꽂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모방을 너무 싫어해요. 새로운 걸로 승부를 거는게 맞다고 봤습니다. 특허도 어느정도 확보해둔 만큼, 기술난이도가 높은 반도체 증착장비(CVD)를 해도 승산이 있을 것이란 자신이 있었어요."

 

주변에선 코웃음 소리가 들렸지만 그의 이런 자신감은 적중했다. 주성은 창업과 함께 초반부터 반도체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99년에는 코스닥에도 입성했다. 주식 시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다.  그런만큼 가만히 있어도 잘 굴러갈듯 보였다.

 

하지만 2001년 뜻하지 않은 시련이 찾아왔다. 핵심 고객 삼성전자와 결별하면서 사업 기반이 무너진 것이다. 2조원에 달했던 시가총액도 2003년 3월에는 470억원까지 곤두박질쳤다. 주성도 끝났다는 얘기가 떠돈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핵심 기술인력들이 빠져나갈 것이란 루머도 있었다.

 

이쯤되면 경영자는 고민이 많아진다. '회사를 팔아 혼자라도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밀려드는게 인지상정이다. 실제 황 회장은 외국 회사에 주성을 넘길 생각도 했다. 혼자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때문에 회사가 안될거 같아서였다. 

 

그러나 평생 벤처맨으로 살아야할 운명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매각을 포기하는 대신 탈출구를 모색하는데 '올인'하기로 결정했다. 단순히 실패한 벤처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주변에선 퇴출설이 돌았지만 돈도 1천억원 가량 있었고, 할일도 있었어요. 삼성이 떨어져나갔다고 해서 회사가 당장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핵심 인력들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있을때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냥 믿어주는 수 밖에 없었어요."

 

인복이 많아서였는지, 황회장이 애지중지하는 핵심 기술인력들은 주성의 비전을 버리지 않고 잔류를 선택하게 된다. 이들의 잔류는 주성이 기술력을 상실하지 않고 재기할 수 있는 든든한 발판이 됐다.

 

자신감을 회복한 황 회장과 주성은 반도체장비에서 액정화면(LCD)장비로 주력 사업을 전환했다. LG디스플레이에 플라즈마 화학증착장비(PE CVD)를 공급하면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2004년에는 1천669억원의 매출을 기록, 주성 위기론도 한방에 날려 버렸다. 2004년 거둔 매출은 이전 4년간 매출을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였다. 기술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나온 결과였다.

 

성장세를 회복하자 황 회장은 차별화된 기술 개발에 더욱 힘을 쏟았다. 2005년 대형TV용 LCD에 최적화된 8세대 플라즈마 화학증착장비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기염을 토했다. 해외 사업에 쓰는 실탄도 늘렸다. 이는  곧바로 20개 국가 50여개 회사를 상대로한 글로벌 경영 구축으로 이어졌다.

 

주성은 다시 한번 변신을 진행중이다. 태양광 장비로 대표되는 환경 시장에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황 회장에게 환경은 앞으로 20~30년은 성장할 매력적인 시장이다. 모든 사업과 기술이 환경 위주로 재편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그러나 무턱대고 뛰어드는 것은 금물. 판이 커지면 경쟁도 그만큼 치열해진다."환경 사업으로 성장하는 제대로된 기업이 하나 나오면 무너지는 회사들이 매우 많을 겁니다. 가능성도 많지만 위험 또한 크다고 볼 수 있어요."

 

이같은 리스크는 주성도 덮칠 수 있다. 전략적으로 키우는 환경 사업에서 실패하면 2001년의 아픔이 다시 찾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잘하는 분야에 더욱 집중,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진하는게 맞지 않을까? 사업 다각화는 겉보기에는 그럴듯해도 무모한 도박으로 끝날때도 적지 않다.

 

황 회장은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창조적 명품론을 꺼내든다.

 

"기본이 튼튼한 기업은 변신도 쉽습니다. 주성이 아주 새로운 분야에 뛰어든 것은 아니에요. 기존 기술을 응용한 겁니다. 응용을 하려면 확실한 기반 기술이 있어야 해요. 모방만 하는 기업은 응용도 제대로 못합니다. 창조적으로 성장해온 기업들은 확장 가능성도 높습니다. 모방은 전략이 될 수 없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CEO보다는 엔지니어 본능이 지배한다

 

황철주 회장은 귀가 두껍다. 남 얘기듣고 일을 벌이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스스로 생각하고 확신이 서면 그냥 사고(?)를 친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가 모방을 병적일 정도로 싫어하는 것은 이런 성향과도 무관치 않다.

록밴드 부활의 리더인 김태원씨는 얼마전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 자기도 모르게 표절을 할까봐 가급적 다른 음악을 듣지 않는다고 했는데, 황 회장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남들이 안하는데 하면 될 것 같고, 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뭔가가 있으면 의욕적으로 도전하는 식이다.

 

"체질상 모방보다는 최초 마니아입니다. 남얘기 듣고 하면 이미 늦었을때가 많아요. 제가 하는 생각이 저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남들보다 빨리 하는 것 뿐이죠."  엔지니어스러운 집착이 느껴진다. CEO이면서 협회장도 맡고 있지만 그의 DNA는 지금도 천상 엔지니어인 것 같다.

 

경북 고령 출신인 그는 고등학교때부터 엔지니어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어려운 경제환경 때문에 중간중간에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공고를 나와 공업 전문대에 들어가 취업했고 그후 주경야독을 해가면서 인하대학교 전자공학과에 편입했다는 그의 청년 시절이 꽤 고단했음을 대변한다.

 

힘든 삶이었다.

 

그가 인하대에 편입할때의 일이다. 합격은 했는데, 등록금이 없었다.  어디서 융통할때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포기하자니, 그건 너무 싫고, 결국 사고를 쳤다.

 

"어머님 회갑 때 들어온 금붙이를 팔아 입학금으로 넣고 바로 군대에 갔어요. 복학해서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하자는 생각이었는데, 그것도 잘 안됐습니다. 아남산업에 들어가 일과 공부을 병행하면서 겨우 졸업했어요. 사람 관계가 힘들지, 엔지니어로서 공부하고 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아요. 밤새우는 것도 재미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주경야독' 생활을 하던 황 회장은 대학을 졸업하기전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대우가 좋았던 만큼, 오래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이직을 결정했고 이후 ASM에서 7년이 넘게 몸담았다. 월급쟁이로선 가장 오랜 인연이었다. 

 

그러나 다시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93년 ASM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를 선언한 것이다. 황 회장은 회사를 옮기느냐 아니면 창업에 뛰어드느냐를 놓고 장고에 들어갔다. 그런데 고민을 하면 할 수록 창업에 무게가 실렸다. 스스로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낙관적인 생각을 거부하기 힘들었단다. 주성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1995년의 일이다.

 

크고작은 부침이 있었으나 그걸 극복하고 다시 성장시대로 진입한 황철주 회장과 주성은 이제 웃으면서 옛날에 고생한 얘기 좀 하고, 다른이들에게 조언을 해줘도 크게 욕먹지 않을 위치에 올라섰다. 기술에 대한 집념 하나만큼은 벤처 세계에서 1등급이란 평가도 있다.

 

주성의 역사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한국에선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시절에, 반도체 前공정 장비를 갖고 창업을 했고 지금은 별들의 전쟁터로 불리는 태양광 시장에 미래을 걸었다. 창업 이후 만만해 보이는 일을 한적이 거의 없다. 밖에서 보면 하나같이 위험한 도박 시리즈였다. 앞선 기술로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황 회장과 주성의 엔지니어들이 만들어낸 드라마였다.

 

CEO가 바뀌지 않는한 주성의 DNA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창조적 명품론을 외칠 것이며 기술 중심의 회사로 주성을 이끌어나갈 것이다. 체질은 쉽지 바뀌지 않는 법이다. 엔지니어 본능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황철주 회장은 더욱 그럴 것 같다.

 

실제로 그는 엔지니어로의 복귀를 꿈꾼다. 농사꾼이 평생 농사를 짓든 엔지니어인 그는 CEO보다는 엔지니로 생활도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매출이 늘어나는 장부를 볼때보다 연구소에서 고민하고 있을때가 더욱 행복한 황 회장이다.

 

"10년쯤에는 은퇴하고 주성 연구소에서 풀타임을 아니더라도 엔지니어로 뛰는 것을 꿈꾸고 있어요. 못할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빌 게이츠는 회사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운 뒤 은퇴했고 지금은 사회 사업가로 변신했다. 아름다운 은퇴코스였다. 황 회장도 CEO에서 물러난 뒤 마음의 고향인 연구소에 돌아가 비정규직(?) 연구원으로 땀흘린다면, 아름다운 퇴장을 했다는 평가를 받게되지 않을까?

 

우리나라도 이제 이런 은퇴코스를 밟는 경영자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그럴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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