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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

[인터뷰]윤증현 "나라 곳간 파수꾼 역할하겠다"

[인터뷰]윤증현 "나라 곳간 파수꾼 역할하겠다"
[창간10주년 특별대담]"경제엔 공짜없어"
대담 정종오 경제시사부장, 정리 박연미기자, 사진 박영태기자


'환율 급등, 주가 급락(3.3)'…'경기하강 깊고 길어질 것(3.13)'…'대기업 현금성자산 급감(3.17)'….

꼭 1년 전 이맘 때 국민들은 이런 기사를 봤다. 전망은 우울했다. 공공연히 '3월 위기설'이 돌았다. 삭풍 불던 초봄,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64)은 그런 시절에 키를 잡은 선장이었다.

그리고 1년.

한 숨을 돌렸다. 격랑을 넘어섰다. 한데 자찬할 새가 없다. 곳곳의 불씨가 걱정이다. 경기 하강기에 방패로 쓴 나랏돈이 큰 빚이 됐다. 경제가 기지개를 켜도 일자리가 귀하다.

아이뉴스24 창간 10주년을 맞아 18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만난 윤 장관은 이런 고민들로 여전히 분주했다. 공식 일정표엔 지난해보다 빈 칸이 많은데 사이드카 호위로 움직이는 날이 적잖다. 동선도, 고민도 광폭이다.

그래서 원칙은 더 분명해졌다. "올해는 곳간 파수꾼 역할에 더 힘을 주겠다"고 했다. 적자장부를 의식해서다. "전면 무상급식과 미분양 주택 양도세 감면 연장에는 이 때문에 찬성할 수가 없다"고 했다.

고용통계도 점검해 '사실상 실업자' 논란을 잠재울 계획이다. 기준금리 인상 시점은 전처럼 멀리 잡았다.



- 나랏빚이 늘어 걱정들이 많습니다.

"경제위기에 대응해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펴면서 일시적으로 나랏빚이 늘었습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가 지난해 35.6%, 366조원까지 증가했지요. 시급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여러 선진국의 사정도 비슷합니다.

정부는 2013년경까지 균형재정(세출과 세입이 균형을 이룬 상태. 세출이 많으면 적자재정, 세입이 많으면 흑자재정이 된다)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할겁니다.

감세기조는 유지하되 고소득 근로자에 대한 소득세 감면을 줄이고,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를 종료하는 등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대한 비과세·감면 제도를 줄여갈 겁니다. 자영업자 등 현금 수입 업종에 대한 세원을 정확히 파악해 세수도 늘리겠습니다.

또 복지 누수, 중복 지원 줄이고 추가경정예산과 수정예산에서 늘어난 한시 예산은 지원효과, 집행실적 등을 고려해 종료시기를 결정하겠습니다. 투자 우선 순위도 재조정할 겁니다."

- 공기업 부채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나랏빚에 포함해 관리하면 어떨까요.

"공기업 부채는 국제통화기금(IMF) GFS(재정통계편람) 매뉴얼 등 국제기준을 봐도 국가채무에 포함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만 공기업 채무까지 포함해 국가채무 통계를 산출하면 실제보다 채무가 크게 늘어난 것처럼 보여 국가 신용평가 등에서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국제기구들도 통합 관리를 권하는 추세 아닌가요.

"IMF 등이 종합 통계 수집을 위해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부문 부채 통계를 수집하도록 권고하는 건 사실이지만, 실제로 이렇게 통계를 내 제출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다만 재무건전성 측면에서 공기업의 부채 관리에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에 공감합니다.

정부는 따라서 부채가 늘면 경영평가상 불이익이 가도록 공기업 평가지표를 운용하는 등 공기업의 자율적인 재무건전화 노력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공공기관의 부채 규모를 점검하고 관리 계획을 마련해 국회에 보고할 계획입니다."

- 2월 고용지표가 예상보다 나빴습니다.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어요. 고용통계가 꼬이기 시작한 게 공공일자리 사업 시기 때문입니다. 동절기 지나 3월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신청을 받았더니 10만명 모집에 40만명 이상 신청자가 몰렸습니다. 여기서 탈락한 사람들이 경제활동인구로 편입돼 실업자 통계에 잡힌거지요.

지난해 말까지 3.5% 수준이던 실업률이 1월들어 갑자기 5%까지 올라간 배경입니다. 수치만 봐선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데 특별히 사정이 변한 건 없어요.

여기에다 2월 졸업시즌에 대졸 구직자들이 쏟아져나오면서 청년 실업률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시장 상황과 별개로 1, 2월 고용통계가 악화된 것처럼 보이는거에요. 3월에는 좀 정상화될 겁니다."

-그래도 청년실업률이 10%나 되는 건 걱정스럽습니다.

"전체 실업률이 3.5% 수준일 때에도 청년실업률은 8% 안팎으로 높았습니다. 정부가 국가고용 전략회의도 하고 별별 아이디어를 다 생각해 내려고 애쓰는 중이에요. 이게 해결이 안 되면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학교를 졸업했는데 직장을 못 가지면 그 좌절감이 얼마나 클까요. 청년실업은 경제적인 측면 뿐아니라 사회, 문화적으로도 큰 문제가 될 수 있어 더 두렵습니다.

모순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중소기업들은 사람을 못 구해 아우성이라는 거에요. 사회구조의 이중성이 드러나는 대목이지요. 우리가 풀어야 할 최대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대학 구조조정과 함께 산학 연계를 통한 맞춤 교육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학 진학율이 30% 수준으로 굉장히 높아요. 매년 55만 명 정도의 대졸 구직자가 나옵니다. 고졸 구직자와 비교해 5대 1 정도로 많습니다.

이건 비정상입니다. 이런 구조를 보이는 나라는 찾기 어렵습니다. 신문사로 치면 국장 다섯에 기자가 한 명인 꼴이에요. 대졸자들은 그 눈높이에 맞는 직장을 원하겠지요. 이러니 청년실업률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 시스템을 정비하고, 학사관리도 해야 합니다."

- 통계를 두고도 말이 많습니다. '취업애로계층' 공식 통계가 안나오니 산출법도 제각각입니다.

"그렇습니다. 지난 1월 취업애로계층 통계를 처음 제시했더니 같은 통계치를 두고 어떤 신문은 300만명, 어디는 400만명, 500만명까지도 얘기를 하더군요. 정부가 집계한 취업애로계층은 약 182만명 정도입니다.

물론 '사실상 실업자'를 말하는 언론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닙니다. 정책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실업자 외에도 많다는 의미겠지요.

하지만 사실을 사실 이상으로 보면 좋을 게 없습니다. 외국과도 비교를 하는데 나쁘다 나쁘다 하면 좋지 않아요. 근거없는 낙관도 문제지만 무턱대고 부정하는 것도 안 됩니다.

정부는 모든 것을 열어놓고 솔직하게 알리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희망을 준다는 명목으로 근거없는 장밋빛 구호를 띄운 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없습니다.

2월 통계에서 단시간근로자 수가 급증한 부분은 점검할겁니다. 실제 취업애로계층은 어느 정도되는지 살펴 발표 여부를 검토하겠습니다."

- 고용문제, 특히 청년실업 문제가 좀 해결될 때까지 공공기관 정원 조정을 미루자는 의견이 있습니다. 임금피크제 이후 취업문이 더 좁아질테니까요.

"공공기관의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과도한 인력과 조직의 군살을 빼는 건 신규 채용이 일부 제약된다 해도 꼭 해야 할 일입니다. 다만 공공기관 선진화 작업으로 정원을 줄이면서도 고용 안정, 일자리 창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겁니다.

정부는 초과 인력 감축을 자연감소, 희망퇴직 등으로 향후 3~4년간 단계적으로 진행할 계획입니다. 또 공공기관 경영효율화 과정에서도 신규채용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윤 장관은 15일 경영 성과가 좋은 공기업에 정원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밝혔다) 청년인턴 채용도 계속할 겁니다."

- 공공기관 연봉제 표준모델안을 내놓겠다고 하셨지만, 채택에는 노조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저항이 예상되는데요.

"공공기관의 보수체계 개편은 노사 합의 사항이라 정부가 강제하기는 곤란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성과연봉제는 민간 기업에서 이미 널리 채택한 제도로 기관의 생산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보수체계입니다. 공공기관에서도 본격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어요.

정부가 연봉제 표준모델안을 권고하는 것은 주주인 국민을 대신해 하는 일입니다. 국민과 언론도 지지해 주실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공공기관도 따르려고 노력하지 않을까요."

- 서비스 산업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고, 제조업에 치우친 경제구조를 바꿔보겠다고 했지만 이견도 있습니다. 법령 신설 등 구체적인 제도 기반 마련을 염두에 두고 계신지요.

"서비스 산업은 대부분의 일자리를 만들 뿐아니라, 향후 성장 가능성도 높습니다. 당면 과제인 고용창출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간 발표한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을 평가하고 해외 실태조사 등을 거쳐 서비스 산업 선진화 추진 체계를 마련할 겁니다. 고용유망 서비스업도 선정, 육성할 생각입니다. 국내 서비스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서비스 품질을 높이고, 항공레저 등 유망서비스 개발을 통해 국내시장 확대도 추진하려 합니다."

-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이 내놓은 '무상급식' 공약을 비판하셨는데요.

"재원에 대한 고려가 없는 포퓰리즘(인기 영합)성 정책은 안 됩니다. 급식은 중앙재정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으로 합니다. 지자체에 여유가 있어 무상급식을 한다면 중앙 정부가 간섭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자체들은 지금도 재정이 부족하다고 난리 아닙니까. 호화청사를 짓는 돈은 어디서 나는지 모르겠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경제엔 공짜가 없습니다. 기회비용이라는 게 항상 있어요. 지금 13% 수준인 무상급식 비율을 100%로 늘리자면 2조원 규모의 재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다른 데 쓰고 있는 2조원을 무상급식을 위해 빼와야 한다는 건데 그럼 다른 부분을 지원하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급식비는 월 4~5만원 정도로 압니다. 부담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도 공짜는 좋아하겠지만 이렇게 가면 안 됩니다. 이게 재원을 효율적으로 쓰는 일인가요.

재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단계적, 순차적으로 무상급식 비율을 늘린다면 반대하지 않습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도 전면 무상급식을 하지는 못해요. 세계적으로도 무상급식을 하는 나라는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조세부담률이 높은 3개국 뿐인데 우리가 이들처럼 하려고 들면 조세부담률이 지금의 두 배 수준으로 올라갈 겁니다. 국민들이 동의할까요?"

- 미분양 주택 양도세 감면 연장안은 어떻게 보십니까.

"시한이 만료된 양도세 감면 정책 결과를 보면 지방 미분양 주택 물량이 해소된 건 약 4만호에 그치고 나머지 26만호는 대부분 수도권, 신규 분양 주택에 혜택이 갔습니다. 이걸 보면 세제 혜택을 연장한다고 해서 해결이 되겠나, 굉장히 부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인 고려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런 것들은 언론이 나서서 막아줘야 합니다. 지난 번 세제혜택을 줬는데도 안 팔린 집들은 지은 위치가 안 좋거나 가격이 높아 그런 겁니다. 구조적인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이날 인터뷰 직후 당정은 양도세 감면 제도를 내년 4월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 본격적인 출구전략, 즉 기준금리 인상의 적기는 언제가 될까요.

"최근 한국 경제 여건을 보면 국내외 경제가 전반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안심하긴 이릅니다. 일부 유럽국가의 재정위험에 대한 우려가 있고, 주요국의 출구전략 이행 가능성에 환율 및 유가 동향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큽니다.

연초에 나타났던 환율하락, 유가상승세가 다시 시작되면 단기적으로 성장에 부담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주요국의 확장기조 조절이 중기적으로는 세계경제 안정에 도움이 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경기 회복 속도를 늦출 수 있어요. 남서유럽(PIIGS·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등 나랏빚이 많은 국가들의 신용불안도 국제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이 됩니다.

따라서 출구전략은 민간의 경기회복이 가시화되는 정도를 보아가며 신중히 추진해야 합니다. 실물경기 상황, 물가 및 자산시장 상황, 금융시스템의 안정화 정도, 국내외 잠재불안 요인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합니다."

- 한국은행과 재정부의 관계를 염려하는 시선이 있습니다. 또 '한은 총재도 인사 청문회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그간 정부와 한은의 정책 공조는 잘 이뤄져 왔다고 봅니다. 지난해에는 정부와 한은이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정보공유 제도를 개선했습니다. 올해부터는 보다 투명하고 공개적인 정책공조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차관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도 참석하고 있습니다. 신임 김중수 총재가 내정되었는데 앞으로도 정부와 한은이 협조적이고 건설적인 관계를 형성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한은 총재가 청문회를 거치는 게 일리가 있다고 한 것은 한은 총재의 지위나 권한 등을 감안할 때 경제에 대한 전문성과 덕망을 갖춘 인사가 임명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원론적인 의미입니다."



- 마지막 질문을 드립니다. 우리나라가 G20 서울회의를 통해 꼭 이뤄야 할 목표가 있을까요.

"금년 G20 정상회의의 최우선 과제는 위기를 잘 마무리하고,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겁니다. 단기적으로 각 국이 질서있는 출구전략을 펴도록 국제공조를 유도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세계경제의 지속가능한 균형성장을 위해 위기 이후 관리체제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이 G7 국가가 아닌 나라 중 처음으로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게 된 것은 신흥국과 개도국간 가교 역할을 수행하라는 국제사회의 기대가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단기간 내 경제성장에 성공한 개발경험과 외환위기 극복 경험을 토대로 신흥개도국들의 관심 이슈를 적극 반영해나갈 계획입니다.

특히 위기시 개도국의 자본이동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과 최빈개도국의 성장 지원 등 개발격차 해소 방안을 코리아 이니셔티브(Korea Initiative)로 채택하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의장국으로서 회원국간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국제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 나가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