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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디자인

전통문양과 QR코드의 만남, 디자이너 박윤경

전통문양과 QR코드의 만남, 디자이너 박윤경

  • 박순찬 기자
  • 입력 : 2011.11.16 14:06 | 수정 : 2011.11.16 14:18

    “‘법고창신(法古創新ㆍ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함)’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에요. 언제부터냐고요? 이 작품을 만들면서부터요. 하하.”

    디자이너 박윤경(31·곰디자인 대표)씨는 전통문양에 사각형 QR(Quick Response) 코드를 넣은 작품을 만든다. 전통창호 문양 가운데에는 창(窓)을 닮은 QR코드를 넣고, 나비문 가운데에는 화려한 호랑 무늬를 떠올리게 하는 사각형을 새기는 식이다. 스마트폰으로 문양 속 사각형을 찍으면 전통문화 보존에 힘쓰는 무형문화재와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화면이 펼쳐진다. 문자 그대로, 법고창신하는 것이 그가 하는 디자인 작업의 핵심이다.

    박 대표는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졸업 후 작은 출판사에 취직했다. 매일 유아용 문제집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는 업무였다.
    대학 다니며 난을 치고 수묵화를 그렸던 그에겐 흥이 날 수 없는 업무였다. 혼자 디자인 회사를 차렸다. 하지만 전통 디자인을 요청하는 곳은 없었다. 직접 찾아가 제안을 해도 받아주는 곳도 없었다.

    어렵게 회사를 꾸려가던 2010년, 정부 산하기관에서 주최하는 ‘전통문양 콘텐츠 활용 디자인 공모전’이 눈에 들어왔다. 박씨는 QR 코드를 전통문양과 결합한 작품을 출품했다. 그는 “딱딱하고 현대적인 느낌의 QR 코드를 이질감 없이 전통문양에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고 했다. QR 코드가 겉돌지 않도록 각 전통문양에 어울리는 색채와 무늬, 질감을 찾아 디지털 코드에 입혔다. 어떤 정보든 담을 수 있는 QR 코드의 확장성도 그의 작품을 돋보이게 했다.


     
    스마트폰으로 문양 가운데 QR코드를 읽으면 관련 정보가 나타납니다. 왼쪽부터 칠보 보상화문 QR코드·옻칠 덩굴문 QR코드·한지 꽃문 QR코드. /디자이너 박윤경
    심사위원의 호평 속에 공모전의 대상(大賞)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이제 고생 끝났구나’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화려한 날은 시상식 하루뿐이었다.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갖는 이는 없었다. QR 코드라는 날개를 달아도 우리 고유의 전통문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그 정도였다. 박 대표는 “사비를 털어 전시회라도 열어볼까 했지만, 비용이 수백만원이란 말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대신 작품활동에 몰두했다. 전통문양에 QR 코드를 결합한 작품을 20종 넘게 만들었다. 그리곤 자신에게 대상을 준 정부 기관을 무작정 찾아가 작품을 내보였다. 찬찬히 작품을 살펴보던 관계자로부터 “마침 예정된 전시회가 있는데 같이 한 번 해보자”는 답이 돌아왔다. 무관심에 굴하지 않고 맨몸으로 부딪혀 거둔 성과였다.

    박 대표의 작품은 17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리는 ‘국제저작권기술 컨퍼런스 2011’에서 대중에게 첫선을 보인다. 22종의 작품 중 여섯점이 전시된다.

    스마트폰으로 문양 가운데 QR코드를 읽으면 관련 정보가 나타납니다. 왼쪽부터 목조각 복합문 QR코드·자개 연꽃문 QR코드·은공예 아자문 QR코드. /디자이너 박윤경
    그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전통문양을 그대로 복원하려는 시도는 많은데 정작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전국 고궁의 문화재 안내판부터 기념품에까지 새롭게 재해석한 우리의 전통문양을 입히는 것”이 그녀의 당찬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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