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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생태계/지식

과학벨트 `스트롱 코리아` 발판 돼야

[시론]

과학벨트 `스트롱 코리아` 발판 돼야

입력: 2011-05-17 17:23 / 수정: 2011-05-18 02:26
갈등 있지만 기초과학 투자 절실…교직개방ㆍ교육혁신 뒤따라야
지루하게 끌던 과학비즈니스벨트의 입지 선정이 결국은 정치적으로 결정되고 말았다. 탈락지역에는 사실상의 분원을 둬 지역별로 나눠먹기식의 모양새가 됐다. 애초에 실현 가능성 등 정밀한 검증없이 표를 겨냥한 공약에서 출발한 과학비즈니스벨트는 이후 추진과정에서도 섣부른 공모제로 지역갈등의 골만 깊게 만들었다. 

갈팡질팡하는 정부와 과열된 지자체의 유치 경쟁 탓에 전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자가 앞다퉈 찾아오는 과학벨트를 만들고 싶었던 과학계의 기대는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 그렇다고 선진국의 상징이고 의무인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포기할 수는 없다. 10만명의 유능한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스트롱 코리아'를 통해서라도 과학벨트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어야 한다. 

우선 과학기술이 매력적이라는 성공한 과학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과학자를 우대하는 것도 권위주의 시대의 낡은 관행이다. 억지로 스타 과학자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노벨상 수상자라고 누구나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기업가 정신이나 리더십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의 본질도 아니고,실용성이 이공계 교육의 핵심 목표가 될 수도 없다. 

자칫하면 스트롱 코리아가 과학자의 이기심을 채우려는 운동으로 잘못 인식될 수 있다. 제도적으로 과학자의 진로를 확대하고,우대를 받겠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얄팍한 장학금으로 요즘 청소년과 학부모를 유혹할 수도 없다. 자연과 인간의 정체를 과학적으로 밝혀내기 위해 묵묵히 그러나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으로 감동을 주겠다는 낮은 자세가 필요하다. 

스트롱 코리아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무너진 초 · 중등 과학 교육을 되살리는 일이 시급하다. 과학자 양성 교육을 목표로 하는 초 · 중등학교에서 과학 교육의 목표부터 새로 설정해야 한다. 과학 개념의 위계적(位階的) 이해에 집중하는 지금까지의 과학 교육은 실효성을 잃어버렸다. 수능과 학력 평가,그리고 구태의연하고 폐쇄적인 교사 양성 체계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이제 과학 교육은 민주화된 과학기술 시대에 필요한 '과학정신'을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맹목적으로 과학 개념을 암기시킬 것이 아니라 문제 파악,소통,비판적 분석,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과학의 '나무' 대신 현대 문명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과학의 '숲'을 소개하고 이해시키는 교양 교육으로 탈바꿈을 해야 한다. 

올해부터 전국의 고등학교에서 시작된 '융합 과학'이 바로 그런 목적으로 개발된 것이다. 문과와 이과의 고질적 구분을 뛰어넘어 모든 학생들에게 우주,자연,생명,문명에 대한 현대 과학적 해석을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과학 개념이 아니라 과학이 무엇이고,왜 배워야 하는지를 설득시키겠다는 것이다. 

사대와 교대가 독점하고 있는 교직도 과감하게 개방해야 한다. 그래야만 위계적 개념 교육에 집착하는 현재의 잘못된 과학 교육철학과 교수학습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공계 출신의 교직 진출이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은 이공계 출신의 진로 확대가 아니라 교직 개방을 통한 초 · 중등 과학 교육의 진정한 발전이 돼야 한다. 

이공계 대학의 교육도 바꿔야 한다. 불합리한 업적 평가 때문에 뒷전으로 밀려난 전공 교육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학과와 학문 분야 사이의 장벽도 허물어야 한다. 초 · 중등 과학 교육과 이공계 교육이 단순히 이공계 기능인 양성이 아니라 민주화된 과학기술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핵심 역량을 길러주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만 과학벨트를 통한 기초과학 투자의 과실을 수확하고,스트롱 코리아의 꿈을 달성할 수 있다. 

이덕환  <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