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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로로는 왜 짱구처럼 되지 못하나

뽀로로는 왜 짱구처럼 되지 못하나

뉴시스 | 신동립 | 입력 2011.05.15 08:02 |

【서울=뉴시스】이문원의 문화비평

'뽀통령'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국산 애니메이션 캐릭터 '뽀로로'가 또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우정사업본부가 뽀로로 기념우표 400만 장을 찍어 약 10억 원의 판매수익을 거뒀지만, 알고 보니 뽀로로 저작권을 지닌 ㈜아이코닉스 측에는 캐릭터 사용료를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 수익금 전체가 국고로 귀속되는 국책사업이기에 그렇게 했다는 후문이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캐릭터 사용료 등 저작권 차원 문제긴 했지만, 국책사업에까지 동원된 뽀로로의 현 위치를 방증하는 사례가 되기도 했다.

확실히 뽀로로는 한국에서 '귀한 몸'이다. 지난 2003년 유아용 TV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이래, 뽀로로 캐릭터 상품 누적 매출액은 2010년까지 약 8300억 원을 넘어선 상태다. 로열티 수입으로 지난해에만 120억 원을 벌어들였으면, 연간 약 2500억 원대 시장 창출효과를 내고 있다.

국내 캐릭터 소비자 선호도 조사, 국내 캐릭터 브랜드 가치 평가 등에서 1위를 줄곧 차지하는 것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그 영향력과 인지도 면에서 '아기곰 푸우'를 넘어섰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뽀롱뽀롱 뽀로로'는 이미 세계 110개국에 수출되고 있고, 프랑스 국영방송 TF1 방영 당시 4~10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시청률 조사에서 41%를 기록하는 열풍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런데 여기서 기묘한 부분이 있다. TV애니메이션이 이렇게까지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을 때, 아니 '뽀롱뽀롱 뽀로로'의 반에 반 정도 성과 정도만 거뒀더라도, 반드시 고려되는 파생상품이 있다. 바로 TV애니메이션의 '극장판'이다. '포켓몬스터' '명탐정 코난' '도라에몽' 등을 손에 쥔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에서도 '비버스 앤 벗헤드' '사우스 파크' '파워퍼프 걸' 등 유명세를 탄 TV애니메이션은 모조리 극장판을 내놓아 모두 톡톡한 재미를 봤다.

그런데 '뽀롱뽀롱 뽀로로'에는 극장판이 없다. 벌써 등장한지 9년째인데도 그렇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극장판 '비슷한 것'은 있었다. 2004년 제작된 '뽀로로의 대모험'이다. 상영시간 71분으로,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서 '마지노선'은 지킨 분량이었다.

그런데 '뽀로로의 대모험'은 결국 '극장'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제작사 아이코닉스 홈페이지에도 '뽀로로의 대모험'은 OVA, 즉 비디오용 애니메이션(Original Video Animation)으로만 나와 있고, 어떤 뉴스를 찾아봐도 극장 상영됐다는 정보는 찾아볼 수 없다. 2005년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와 서울애니시네마에서 열린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뽀로로의 대모험'이 공식경쟁부문에 올라 특별상영됐다는 정보가 다다. 이후부턴 '뽀로로의 대모험-크리스마스 스페셜'이라는 제목으로 케이블 및 위성TV에서 방영된다는 소식이 전부다.

결국 '뽀로로의 대모험'은 '극장판'이라는 호칭을 붙일 게 아니라 '장편판'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게 더 적절했던 콘텐트라는 것이다. 여전히 상업극장에서 제대로 입장료를 받고 상영된 '뽀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간단한 예상은 다음과 같다. '뽀로로의 대모험'이 완성됐던 2004년은 아직 '뽀롱뽀롱 뽀로로'가 TV판 1기까지만 대중에 소화된 시점이었다. 물론 그때도 인기가 있긴 했지만, 극장 상영까지 노려볼 만한 것은 아니었다. '뽀로로 신드롬'이 제대로 일기 시작한 건 '뽀롱뽀롱 뽀로로' 2기가 케이블 채널 챔프에서 방영을 시작한 2006년 무렵부터다. 그러니 2004년 당시로선 OVA가 가장 합리적인 통로이자, 궁극적인 도달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뽀로로가 '뽀통령'으로까지 불리는 2011년 현 시점은 어떨까. 지금 뽀로로 극장판이 등장한다면 곧바로 대규모 배급망을 뚫어 전국 개봉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데 있다. 그래서 애초 '뽀로로의 대모험'이 극장에 이르지 못한 장편판으로 끝난 이유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단순히 '뽀롱뽀롱 뽀로로' 방영 초기, 신드롬이 일기 이전 콘텐트라 극장까지 가지 못했다는 분석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뽀로로는, 단적으로 말해 극장판으로는 소화되기 힘든 '소재'라는 것이다.

동아일보 2010년 5월1일자 기사 '[DBR/CASE STUDY]토종캐릭터 '뽀로로''는 '뽀롱뽀롱 뽀로로'의 성공비결을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들려준다.

"뽀로로의 탄생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코닉스 설립자인 최종일 사장은 텔레토비에 푹 빠져 있는 아들을 보고 무릎을 쳤다. 당시 인기 있던 애니메이션 '마시마로' 등의 시청자층은 주로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이었다. 유아 대상 프로그램으로 텔레토비가 있었지만 인형극이어서 표현에 한계가 있었다. 최 사장은 2∼5세 대상의 '유아용 애니메이션' 시장이 그야말로 무주공산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차별화된 시장을 공략하는 만큼 목표 고객에 맞는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했다. 우선 유아가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 기껏해야 7분이라는 연구 결과를 보고 분량을 5분으로 확 줄였다. 회당 최소 10분인 당시 애니메이션과는 완전히 다른 전략을 취했다."

결국 뽀로로의 진정한 타깃층은 '뽀롱뽀롱 뽀로로' 기획 단계부터 현재까지 '유년층'에 머물러 있고, 오히려 그 블루오션을 찾아냈기에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위 기사에서도 언급됐듯 유년층은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 극히 짧다. 10분도 너무 길어 5분으로 줄여 성공을 거둔 게 뽀로로 신화의 핵심 중 하나다. 그러나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려면 최소 60분 이상 분량은 돼야한다. '뽀로로의 대모험'도 언급했듯 71분으로 맞췄다. 그런데 정작 타깃층은 장편 분량을 소화하기 힘드니, 집안에서 왔다갔다 법석을 떨며 장편판을 볼 수는 있어도, 좌석에 꼿꼿이 앉아 감상해야 하는 극장판으로 유년층용 애니메이션 '뽀로로'는 '맞지 않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뽀로로는 현재 어린이뮤지컬로도 수없이 소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어린이뮤지컬은 60분 분량은 대뜸 넘어버린다. 그런데도 2006년부터 상연이 시작된 '뽀로로와 비밀의 방'은 무려 56만 명이라는 관객을 끌어 모았고, 현재도 계속 상연 중인 '뽀로로의 대모험'의 뮤지컬 버전도 연일 대박을 치고 있다. 뮤지컬은 되는데 왜 극장판은 안 되느냐는 의문이 바로 일게 된다.

그러나 사정을 따져보면 그렇지가 않다. 어린이뮤지컬이라는 장르는 생성된 지 꽤 오래됐다. 윤복희가 피터 팬 역을 맡았던 1970년대부터니 적어도 30~40년 역사는 된다. 한 마디로, 지금의 30~40대 부모세대도 어린 시절 한두 번쯤은 어린이뮤지컬을 감상한 경험이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동안 어린이뮤지컬은 세종문화회관 등 대형 공연장 중심에서 도시별 또는 구(區)별로 구축된 중소형 문화센터 중심으로 옮겨져 오히려 그 저변이 확대됐다. 유년층 자녀들이 공연장에서 떠들썩하게 뛰어놀며 뮤지컬을 즐기는 모습은 가까운 이웃 문화센터의 흔한 광경이 됐다.

이런 공연장에는 부모도 '마음 놓고' 유년층 자녀를 데려간다. 유년층 자녀가 떼를 써도 시끄럽게 굴어도 통제가 안 돼도, 신경 쓰거나 부끄러워할 만한 일이 아니다. 공연을 보러오는 이들은 모두가 유년층 어린이, 아니면 부모들이다. 서로서로 다 사정을 아는 처지니 오히려 공감대도 생기고 편안하다.

그러나 상업영화 극장은 다르다. 아무리 애니메이션을 틀어주더라도 상업영화 극장의 분위기는 어린이뮤지컬 공연장과는 사뭇 다르다. 1989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대히트 이후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국내에서 성인남녀의 데이트무비로 꾸준히 기능해왔다. 결국 상업영화 극장은, 어린이뮤지컬 공연장처럼 유년층 자녀들이 시끄럽게 웃고 떠들고 놀아도 좋을 만한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 상업영화극장은 기본적으로 남녀노소 모든 계층의 공간이다.

더 중요한 건 이 같은 점을 부모세대도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들도 10~20대 시절 데이트무비로서 애니메이션을 선택해 감상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극장에 데려가면 일단 유년층 자녀를 제지부터 해야 하고, 그러면 당연히 자녀들은 재미도 없고, 부모들은 자녀들을 통제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팍팍 인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상영관에 유년층 자녀를 동반한 가족관객층이 점차 줄고 있는 것도 바로 이 같은 배경 탓일 수 있다.

이런 구조와 배경이 자리 잡고 있으니, 아무리 뽀로로 극장판이 등장하더라도 부담감 탓에 부모들이 유년층 자녀를 데려갈 수 있겠으며, 설령 데려가더라도 맘 놓고 감상할 수 없어 입소문이 좋게 날 리 있겠느냐는 것이다. 결국 뽀로로 극장판은 아무리 뽀로로 신드롬이 거세게 일더라도 등장하기 어렵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일각에선 뽀로로는 이미 잘 나가고 있는데 뭐 하러 극장판이 더 필요하느냐는 입장을 제기할 수 있다. 물론 뽀로로 하나만 놓고 볼 땐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뽀로로의 성공을 발판으로 삼아야 할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 전체로 시선을 돌려보면, 애니메이션 극장판의 존재는 더 없이 중요하다.

세계 대중문화계가 국지 애니메이션 상품을 판단하는 기준은 여전히 극장판에 머물러 있다.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문화적 가치, 예술적 가치로 판단하며 규격화된 엔터테인먼트 상품의 기준으로 삼기엔 극장판이 아무래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또한 극장판은 TV애니메이션과 달리 '성인'이 접근하기에 더 용이한 조건이기에, 산업화의 토대로 작용하기에도 더 유리한 면이 있다. 한 마디로 돈은 더 적게 벌어들일 수 있더라도, 전체적으로 문화적 파급효과가 어마어마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가장 안전한 성공전략은 바로 TV애니메이션으로 인기를 끈 작품의 장편 버전임은 일본, 미국 등 세계 유수의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여실히 입증된 바 있다. 결국 결론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소화됐을 때에도 무리없이 타깃층을 확보하고 성공을 다질 수 있는 콘텐츠, 즉 유년층을 벗어나 어느 정도 극장관람이 정상적으로 가능한 소년층 이상용 콘텐츠가 TV용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할 필요가 잇다는 것이다.

이미 극장판으로 '어른 제국의 역습' '전국대합전' 등 세계적으로 칭송받은 장편을 내놓은 바 있는 '짱구는 못말려' 정도 타깃층의 TV애니메이션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궁극적으로 뽀로로 성공의 자양분을 통해 개발해야 할 것은 동일 유년층 타깃 상품의 남발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연령대 타깃 콘텐츠의 실험이란 얘기도 된다. 뽀로로 성공자산을 헛되이 탕진하는 사태가 없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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