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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전문가

[이균성]모토로라·삼성, 잡스 '손바닥'에서 놀았다

[이균성]모토로라·삼성, 잡스 '손바닥'에서 놀았다

아이뉴스24 | 입력 2011.03.11 08:50 | 수정 2011.03.11 09:28 |

< 아이뉴스24 >

지피지기면(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다. 이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손자(孫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이라고 했지만, 싸움이 불가피한 것 또한 현실이라고 한다면, 이 말을 거스르고 경쟁에서 이길 방법은 없다.

지난해 4월 아이패드가 처음 나온 뒤 태블릿 분야에서 IT 글로벌 기업 간의 전쟁 상황을 복기(復棋)해보면 제대로 '지피지기'한 곳은 스티브 잡스가 이끄는 애플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고지를 점령한 애플이 높은 곳에서 전황(戰況)을 내려다보는 입장이었다면 추격자들은 상대의 전략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틈도 없이 허겁지겁 따라가는 형국이었다. 이런 추격전에는 늘 깊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게 마련이다.

지내놓고 보니 더 분명해진 것은, 스티브 잡스가 이미 작년에 아이패드를 처음 내놓을 때부터 올 해 모토로라의 줌(Xoom)이나 삼성전자의 갤럭시탭 10.1인치가 나올 것임을 예측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아이패드2는 철저하게 이를 계산한 뒤에 나온 제품이며, 그보다 먼저 작년에 나온 아이패드도 올해 상황을 환히 내다본 뒤 전략적으로 내놓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확실히 아이패드는 독특한 기술로 승부한 제품이 아니다. 특허를 주장할 것도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런데도 큰 인기를 끈 것은 이곳저곳에 산재한 기술을 모아 딱 소비자가 원하는 형태로 조합했기 때문이다. 기술의 승리라기보다 창조적인 개념의 승리인 것이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기술과 자본을 가진 경쟁기업이 얼마든지 손쉽게 베끼고 유사 상품을 식은 죽 먹기로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모토로라 삼성 등의 기술력이 애플에 뒤진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에 하드웨어만을 맞비교할 경우 아이패드보다 더 나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실제로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열린 'CES 2011'에서 선보인 모토로라의 '줌(Xoom)'은 제품력에서 극찬을 받고 해당 전시회의 최고상을 차지했다. 삼성이 2월 스페인에서 열린 'MWC 2011'에서 선보인 '갤럭시탭 10.1'인치도 좋은 제품이다.

하드웨어의 비교 우위로는 승부가 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앱스토어의 비교 우위만 가지고 상대할 수도 없다. 그건 분명하게 강점이긴 하겠지만 듣기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고 노출된 전략은 상대가 보강하게 돼 있다. 잡스는 이런 상황이 될 것을 아이패드 첫 제품을 내놓을 때부터 이미 환히 꿰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무기가 필요했다. 그게 뭘까. 우린 이미 알고 있다. '가격 경쟁력'이다.

작년에 아이패드를 내놓을 때 애플은 499 달러부터 829 달러까지 폭넓은 가격정책을 구사했다. 가격표가 무려 여섯 개다. 당시 경쟁업체들은 그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이패드를 이기기 위해 그보다 더 나은 사양을 내놓아야 했고 거기에만 총력을 기울인 것이다. 그 노력은 소기의 성과를 냈다. 하지만 그 집중포화는 헛발질이다. 애플 본대는 이미 그곳을 떠났기 때문이다.

사양 경쟁은 이를 테면 애플이 파놓은 함정이다. 애플이 체질에 맞지 않게 가격 승부로 나온 것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단순 덤핑 경쟁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소비자를 위한 또 하나의 디자인이고 높은 수준의 전략이다. 애플이 수십조원에 달하는 현금을 쌓아놓고도 대규모 기업인수 합병이나 주주배당을 적게 한 데는 이유가 있다. 스티브 잡스는 "전략적 기회를 위해 비축해두겠다"는 입장을 보였었다.

다는 아니겠지만, 잡스는 그 '전략적 기회'의 상당부분이 태블릿 시장에 있다고 본 듯하다. 그리고 그 시장의 2011년 핵심 요소를 가격으로 봤다. 품질을 높이면서도 가격을 낮추며 이익에는 크게 지장을 주지 않는 엄청난 묘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방법은 딱 하나 뿐이다. 선투자다. 팀 쿡 애플 최고운영책임자는 이미 스크린이나 칩 등 핵심 부품을 입도선매하기 위해 수 조원을 투자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미국 내외에 자체 유통망을 확대하는 데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한 것도 알려진 일이다. A4나 A5같은 칩과 운영체제(iOS)를 직접 개발하는 데도 많은 투자가 단행됐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애플이 적어도 1년 이상 전부터 준비해온 일들이며 전문가들이 분석하고 있는 애플의 가격 경쟁력 4대 배경에 들어가는 것이다. 아이패드를 내놓을 때부터 애플은 이 싸움을 준비해왔다고 봐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잡스는 지난 2일 아이패드2를 발표할 때 "그들은(경쟁업체)는 스피드와 스펙에 대해 이야기 한다"며 "그것은 그들이 PC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행위"라고 말했다. 애플은 사양 경쟁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럼 무슨 경쟁을 하는가. 여기에는 풍부한 앱과 사용 편리성 같은 것도 포함되겠지만 과거에 없던 것 중에 새로 생긴 것은 '가격' 뿐이다. 경쟁 업계는 이제야 그 부분을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사양 경쟁이 애플의 파놓은 함정이라고 한 것은 자칫하면 높은 재고와 밀어내기를 통한 이익감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JP모건은 올해 생산된 태블릿 가운데 최대 40%가 재고로 남을 수 있다는 충격적인 전망 보고서를 내놓았다. 제품 성능은 우수하지만 팔리지 않는다면 제조업체로서는 난감한 입장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실제로 JP모건의 전망 보고서가 나온 뒤 관련 기업의 주가는 시장에서 크게 요동쳤다.

애플이 체질에 맞지 않게 가격 경쟁을 들고 나온 건 이런 상황을 미리 예측했기 때문이다. 조기 과열 경쟁을 예상하고 그 예봉을 먼저 피하는 전략을 오래전부터 준비해 내놓은 셈이다. 하지만 이건 2011년 상황에 맞게 앞뒤를 분석해본 것일 뿐이다. 또 이 분석이 맞다 한들 애플로서는 이미 유효하지 않은 전략일 수도 있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가격까지 따라온 추격자들에게 애플은 또 다른 카드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게 뭘까. 그 답을 알고 있어야 비로소 경쟁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바둑판 건너 편에는 항상 상대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로스앤젤레스(미국)=이균성 특파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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