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로컬 /러시아, 동유럽

[백가쟁명:써니리] 러시아의 ‘방황’이 주는 북한정책의 교훈 [중앙일보]

[백가쟁명:써니리] 러시아의 ‘방황’이 주는 북한정책의 교훈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1-02-07 오전 9:42:12

한국 언론에 노 태우 대통령 때 '북방정책'을 입안했던 박 철언 전 장관 인터뷰가 나왔다. 북방정책은 한국이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해서도 적대관계를 획기적으로 전환한 것이고 그 핵심 중의 하나가 바로 당시의 '철의 장막'인 소련과 관계를 개선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중국학자 陈峰君이 2002년에 쓴 ‘아태 대국과 한반도'《亚太大国与朝鲜半岛》라는 책에는 러시아가 남북한 사이에서 '방황'한 얘기가 나온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구 소련 몰락 이후, 러시아는 자기가 서방과 같은 '민주주의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서방국가들이 러시아를 돕는 것이 바로 서방 스스로를 돕는 것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러시아는 부유한 서방국가들과 관계를 밀접히 하여 경제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동북아시아에 있어 러시아는 '아시아의 서방국가'인 일본과 한국의 자본과 선진기술력으로 시베리아와 극동지역 경제개발을 꾀하였지만 일본과는 '북방4개 섬' 영토문제로 협력하기에 여의치 않아, 한국을 점 찍어 이 지역 경제개발의 교두보로 삼으려 하였다.

-러시아는 경제부분에 있어 한국의 덕을 보았고, 한국은 러시아로부터 정치적인 덕을 보았다. 예를 들어, 러시아는 북한 핵 문제에 있어서 한국 손을 들어주기 시작했고, 북한에 대한 무기및 부품 공급을 중지하였다. 또한 북한에 대해 비 핵산조약을 준수할 것과 IAEA사찰을 받아들이라고 촉구하였다.

-한러 관계가 깊어짐에 따라, 북러 관계는 당연히 급랭하였다. "사실상 40년간의 북러 동맹관계가 종결되었다 (p. 240). 결국, 1993년, 러시아는 북한과 맺은 우호조약을 폐기하고 그 결과를 일방적으로 북한에 통보하였다.

-하지만 1994년 들어서 '반전'이 발생한다. 즉, 러시아가 '한국 일변도의 외교'에서, 남북한 모두와의 '등거리 외교'로 선회한다. 그 원인은 1)한국으로부터의 차관도입과 선진기술 도입만으로는 시베리아/극동지역 경제개발을 하는 데에 턱없이 부족함을 깨달음. 2)한국에 먼저 진출한 미국의 후발주자인 러시아에 대한 '텃세'가 심함. 3)러시아가 북한과 멀어지는 때에, 미국은 1994년 지미카터를 평양에 보냄으로서 오히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함. 4)러시아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을 견제하고 '정치 발언권'을 더 얻기 위해서는 남북한 '모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 5)러시아 국내 정치에서 한국과 협력에서 예상됐던 이익을 얻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 대두. 6)한동안 뒷전에 밀려났던 보수파들이 다시 전면에 등장하면서 북한 등을 비롯한 '사회주의 진영'을 러시아가 홀대한 것을 비판.

-결국, 1994년 9월11일, 옐친대통령은 김정일에게 국경일 경축 메시지를 보냄으로서 북러관계 회복을 꾀한다. 이런 요지다.

러시아의 '방황'이 흥미롭다. 한국에만 기대면 극동지역/시베리아 경제개발에 문제없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안됐다. 한국의 경제력을 과대평가한 것이다. 결국 러시아는 남북한 모두와의 '등거리'외교로 선회했다. 중국의 남북한 모두 '등거리 외교'는 원래부터 비밀이 아니었다. 사실 미국도 '북한 카드'를 이용해 한국 애를 많이 태웠고, 그 와중에 많은 실리를 얻었다. 일종의 '등거리'외교다. 등거리 외교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요즘 현실외교는 이렇게 다 실리를 기반으로 한 '양다리 걸치기'라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이 명박 정부 집권 4년 차에 접어들면서 드디어 '미국 일변도' 외교에 대한 반성적 사고가 제법 진지하게 토론되어 지고 있다. 주위 국가들이 어떻게 하는 것을 보면 '학습시간'을 더 줄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러시아도 딱 4년 방황했다.

써니리 boston.sunny@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