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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상] 이 아이는 20년후… 대한민국의 '캡틴'이 되었다… 젊은 그대여 아듀! 우린 행복했노라

 
축구

[오늘의 세상] 이 아이는 20년후… 대한민국의 '캡틴'이 되었다… 젊은 그대여 아듀! 우린 행복했노라

['대한민국 국가대표 박지성' 2000년 4월 5일~2011년 1월 31일]
축구선수로는 치명적인 평발, 프로구단 문전박대 좌절 딛고 '유럽의 가장 유명한 한국인'
너무 혹사시켰다 논란도… "대표팀 복귀 안할 것" 못박아

이제 축구 팬들은 대표팀에서 90분 동안 12㎞를 쉬지 않고 뛰는 강철 심장의 사나이를 볼 수 없게 됐다. 공격하는가 싶으면 어느새 수비진에 와 있는 선수, 저돌적으로 돌파하고 패스하면서 후배가 골을 넣으면 자기 일처럼 기뻐하던 선수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한국 축구의 캡틴 박지성(30)이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31일 서울 축구회관에서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대표팀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지난 2000년 4월 5일 라오스와의 경기부터 올 1월 26일 끝난 아시안컵 일본전까지 11년간 A매치 100경기를 뛰며 13골을 기록한 한국 축구의 엔진이 작동을 멈춘다.

캡틴 박지성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떠난다. 지금부터 대표팀은‘엔진’박지성이 없이 경기해야 한다. 그의 공백을 뼈아프게 느껴야 할 순간도 올 것이다. 사진은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예선에 출전한 박지성의 모습.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한국 국민은 그동안 박지성 때문에 행복했다. 단순히 축구 경기의 결과 때문만은 아니었다. 실력이 없다는 이유로 국내 프로 구단에서 문전 박대를 당했고, 축구 명문대 입학에 실패해 명지대를 택했던 젊은 청년 박지성이 던진 희망의 메시지, '누구든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에 위안을 얻은 것도 있었다. 축구 선수로는 치명적인 평발의 청년 박지성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주전으로 나서 4강 진출이라는 신화를 썼다. 2005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고의 축구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에 입단하는 개가를 올렸다. 당시 인터넷에는 "한국 선수가 맨유에 입단하다니, 눈물이 난다"는 팬들의 반응이 돌아다녔다. 그만큼 맨유는 한국 축구로선 생각도 못할 곳이었다. 박지성은 지난해 남아공월드컵 때는 팀 주장을 맡아 한국 축구 사상 첫 원정 16강을 견인했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은 "지금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은 어떤 정치가도 아닌 박지성일 것"이라고 자주 말했다. 박지성이 일개 축구선수를 넘어 유럽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이 됐다는 얘기다. 축구 평론가 장원재 박사는 "지난 10년 동안 박지성은 변방의 한국 축구를 세계의 중심으로 한 계단 끌어올렸다"며 "축구를 넘어서 한국 팬들에게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를 던졌기 때문에 더욱 각별하다"고 했다.

세발자전거를 타고 환하게 웃는 이 꼬마가 먼 훗날 한국 축구의‘심장’으로 성장할 줄 누가 알았을까. 어린 시절부터 축구만 생각했던 박지성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을 거쳐 11년간 A매치 100경기에 출전하며 한국 축구를 이끌었다. /랜덤하우스 제공

이런 박지성의 이른 대표팀 은퇴에 대해 팬들은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박지성 자신도 기자회견에서 "이른 나이에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 아쉽다"는 말을 했다. 대표 기간만 따지면 홍명보(12년·135경기) 황선홍(14년·130경기) 등 다른 센추리클럽(A매치 100회 이상 출전 클럽) 멤버들에 비해 박지성이 많이 출전한 건 아니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 주로 국내에서 활동한 선배 세대와 달리 그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2002년 말)→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005년)로 옮기며 9년간 유럽 클럽팀과 한국 대표팀을 오갔다. 원체 많이 뛰는 스타일인 데다 '두집 살림'을 하다 보니 강철 체력에도 무리가 왔다는 해석이다.

어떻게 보면 박지성은 한국 축구 최고의 '명품'이었다. 그런데 대한축구협회와 역대 감독들이 그를 너무 혹사시킨 측면도 있다. 박지성 없는 대표팀은 흥행이 저조할 우려가 있고, 성적에 대한 부담도 있었겠지만 여하간 명품을 소중히 다루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일례로 박지성은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 예선 때는 한국에서 열린 약체 몰디브전을 위해 날아와야 했고, 이번 아시안컵에선 한 수 아래인 인도전에서 76분이나 뛰어야 했다. 박지성은 2003년과 2007년 두 차례 큰 무릎 수술을 받았지만 대표팀은 그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박지성은 2009년에 11번, 2010년에 11번이나 대표팀 경기에 동원됐다. 지나친 기용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대목이다.

이날 기자 회견에서도 "너무 혹사당했다는 의견이 있다"는 질문이 나왔다. 박지성은 "(무릎) 부상이 없었다면 계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체력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은퇴하는 것"이라고 했다. 표면적으로는 '후배를 위한 용퇴'였지만 체력 부담이 직접적인 원인이었음을 인정한 셈이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때 박지성의 체력이 지금보다 떨어진다면 수비형 미드필더나 수비수 등으로 포지션을 바꿔 출전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도 대표팀에서 은퇴했다가 2006년 월드컵 유럽예선에서 팀이 위기를 맞자 복귀한 일이 있다. 그러나 박지성은 "대표팀에 복귀하는 일은 다시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박지성은 "한국이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 나간다면 기회는 (예선에서) 노력한 선수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지금 내가 물러나야 후배들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 포지션에서는 손흥민김보경 등 후배들이 좋은 기량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물론 박지성이 바로 그라운드를 떠나는 것은 아니다. 박지성은 소속팀 맨유에서는 계속 선수생활을 한다. 박지성은 "(프로에서는) 최소한 3~4년은 현역으로 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용수 KBS 해설위원(세종대 교수)은 "박지성이 맨유처럼 세계적인 팀에서 계속 주전으로 기용되는 것은 다른 스타 선수들이 하지 않는 팀 내 궂은 일을 묵묵히 해내기 때문"이라고 했다. 성실성 하나로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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