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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명사

기 소르망 "제2, 3의 백남준은 문화홍보대사, 젊은 예술가들 통해 '문화국가' 브랜딩 해라"

기 소르망 "제2, 3의 백남준은 문화홍보대사, 젊은 예술가들 통해 '문화국가' 브랜딩 해라"  

ⓒ유니온프레스 최희승 인턴기자  

[유니온프레스=손지수 기자] “한국은 꿈을 파는 나라인가? 한국문명을 세계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위해서는 ‘문화국가’라는 브랜딩이 필요하다.”

문화비평가이자 경제학자, 미래학자로서 세계 각지를 다니며 저술, 출판, 강연활동을 펼치고 있는 세계적 학자 기 소르망(Guy Sorman, 67)이 20일(목)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강연회를 가졌다.

‘한국문명, 글로벌 시대의 독창적인 자산’이라는 주제의 강연회 자리에는 석학으로부터 한국문명의 현황과 미래가능성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쾌한 생각을 듣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 찼다.

기 소르망은 85년 첫 방한이후 한국을 자주 찾아왔고 한국의 정치인들과 학자들과 교류를 나누며 유럽학자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친한파로 알려져 있다.

그는 먼저 강연회 장소인 국립중앙박물관을 칭찬하며 “국립중앙박물관은 한국문명의 태동부터 모든 것을 다룬 특별하고 독보적인 곳이다. 이곳에서 한국역사의 놀라운 지속성을 느낄 수 있다”라며 “수백 년간의 외세침입과 전쟁, 내전, 빈곤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이 문명을 발전시켜 나간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현대적 아트 갤러리를 찾는데 글로벌 시장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없을 만큼 놀라운 창의력을 가진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앞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의 오랜 소장품과 현대예술품들을 대면시키는 전시를 한다면 문명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독특성에도 불구하고 한국문명이 그동안 해외에서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지정학적 위치, 정부 문화정책의 취약점, 한국 대기업 마케팅의 애매모호함을 그 이유로 들었다.

기 소르망은 “첫 방한 이후 한국은 중국, 일본과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한국의 문명과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한국인들은 개방적인 것 같지만 교류면에 있어서는 아쉽다. 남과 어떤 것을 공유해오지 않은 것은 방어를 위한 격리의 역사에서 기인한 특징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문명을 “미지의 아름다운 여인”같다고 정의했다.

ⓒ유니온프레스 최희승 인턴기자  

그는 삼성, 현대, LG 같은 한국 대기업의 애매모호한 브랜딩 전략을 지적하며 “프랑스 소비자들은 삼성 핸드폰을 쓰지만 일본에서 만든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일하는 삼성직원으로부터 오히려 일본제품이면 더 잘 팔리기 때문에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대기업들이 한국이란 나라를 널리 알리고 있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폰과 맥도날드의 예를 들어 “사람들은 단순히 아이폰만 사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꿈의 일부를 사는 격이고 맥도날드를 먹는 이유는 미국의 꿈의 일부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제품과 서비스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참여하고자 하는 꿈을 팔아야 한다. 소비자들은 어떤 한 나라의 문화적 상징 때문에 매력을 느껴 상품을 구매한다. 한국의 문화적 이미지를 잘 알릴수록 실익이 생기고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이라며 문화콘텐츠의 힘을 강조했다.

한국정부가 시행해온 정책에 대해서는 솔직히 한국의 친구로서 실망스럽다며 한식 캠페인을 예로 들어 “한식은 혁신적이고 건강한 음식인 것은 맞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어떤 맛인지, 색감인지, 창의력이 녹아 있는지를 더 궁금해 한다. 생각보다 외국인들은 건강에 별로 관심이 없는데 그런 쪽으로만 마케팅이 이뤄져 역효과가 나는 것 같다. 듣는 사람이 어떤 얘기를 듣고 싶은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해외 소재의 한국문화원이 좀더 적극적인 한국문화 홍보 프로그램을 기획해 한국을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 소르망은 백남준이야말로 문화로서 한국을 세계에 알렸던 사람이었다며 제2, 3의 백남준과 같은 예술가들이 21세기 한국문명을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5년 전 외국인들이 아는 유일한 한국인은 백남준이었다. 그런데 당시 한국 공무원들은 백남준을 전혀 모르거나 좌파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런데 외국인들에게는 좌파냐 아니냐는 아무 상관이 없다”며 “지금 한국에는 10명, 20명, 30명의 백남준과 같은 젊은 예술가들이 있다. 이들이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유망주들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러한 젊은 예술가들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데에는 정부 혼자만의 노력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사설재단을 설립해 젊은 예술가들을 널리 홍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강연을 맺으며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은 G20을 치름으로써 세계 각국에 한국 문명의 독특성을 알렸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적 아이콘으로 세계 유수 박물관과의 교류를 통해 한국문화를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창구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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