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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전문가

<라스트갓파더>와 종편, 그리고 통큰 치킨

<라스트갓파더>와 종편, 그리고 통큰 치킨

<김헌식 칼럼>미디어는 메시지? 미디어는 컨텐츠다
김헌식 문화평론가 (2011.01.05 10:00:01)
  
경영학과 교수들은 심형래를 높게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미학과에서는 심형래를 대단히 낮게
평가할 것이다. <디워>나 <라스트갓파더>에서 심형래의 진가를 보여준 것은 감독
능력보다는 마케팅 능력이었다. 할리우드발 애국 마케팅에 노이즈 마케팅, 티저 전략도
유효 적절했다. 또한 컨텐츠
자체는 별게 아니지만, 그것을 정확한 포지셔닝을 통해 안티세력까지도 흥행요인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영화 미학차원에서는 낮을수 있지만, 수익을 우선 생각하는 경영학적 마인드에서는 모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수익이 중요하다고 해도 사기를 치는 것은 엄연한
범죄행위이다.
심형래의 영화를 그러한 평가기준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심형래 컨텐츠를 원하는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컨텐츠 자체가 아니라 외적인 요소로 계속 흥행 성적을
 이어간다면, 반복될수록 곧 관객들은 외면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대중은 예술미학적으로만 컨텐츠를 소비하지 않는다. 듀이의 말대로 대중미학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대중미학은 가치지향의 이념적 행태와 거리를 둔다.
그것은 듀이가 말하는 실용주의 철학에 더 가깝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피자 판매에
관한 네티즌의 비판에 이렇게 비꼰 적이 있다. “소비를 이념적으로 하네요”라고.
<자본주의는 윤리적인가?>에서 앙드레 콩트 스퐁빌은 자본주의나 시장은 윤리적 혹은
도덕주의와 관계없다고 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와 시장에 윤리를 입히려다가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자본주의와 시장을 종교로 만드는 것과 같고 그렇게 된다면 더욱
위험한 일이 된다고 그는 지적했다.

착한 소비나 윤리적 소비가 등장하면서 각광을 받는듯 보이지만 그것도 결국 자본주의와 시장제도 안에 있으며 다른 기업과 상품과 차별화되는 마케팅 요인으로 작용한다. 진보의 상품화 현상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윤리적 상품들이 비싸다면 사람들은 구매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은 때로 고급상품이 되어 가능한
사람들은 구입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가격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비윤리적으로 보일수 있지만, 그것의 일반적인 행태를 부정한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때 이른바 비윤리적인 상품으로 지목된 것들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다. 경제적 여건이 안될 뿐이다. 통큰 치킨이 사라졌을 때 네티즌들이 사수 운동에 나섰던 것은
시장과 소비행태에서 윤리적 가치나 작용하는 것에 대한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시장과 소비자는 값싸고 이익이 되는 상품 때문에 손길이 움직인다.

종편선정이 완료되었다. 보수매체가 모두 사업자로 선정되었다는 지적이 많다. 컨텐츠 자체가
보수적으로 획일화될 것을 우려하는 비판이다. 그런데 모두 다 보수적이라면 모두 고사할
가능성이 많다. 모두 똑같은 컨텐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디어 수용자들은 이념적으로
상품을 소비하지 않는다. 재미있고 유익하며 자신에게 도움이 되면 선호한다.

이러한 선호에 맞는 차별화된 컨텐츠를 서로 만들지 않으면 공멸하는 셈이 될 뿐이다.
이제부터는 특별히 봐주는 것도 없다. 방송을 포함한 미디어는 광고시장의 파이를 차지하기 위한
컨텐츠 경연장이다. 이념적 스펙트럼으로 확실하게 재단할 수 있는 컨텐츠를 그렇게 많지 않다.
사실상 신문방송학과보다는 문화컨텐츠 쪽 인력들에게 더 기회가 있어 보인다.
기존의 컨텐츠로는 한계상황이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제도나 시스템에 대한 논의는 수용자의
선호와 기호를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상품의 수용성 여부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컨텐츠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가
관건이다. 그것은 결국 시장속의 대중수요자의 손길에 달려있다.

심형래의 <라스트갓파더>는 미학 이데올로기로 보면 매우 형편없다.
이뿐만이 아니라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겨울연가>는 한국의 영상전문가들이
외면했던 드라마였다. 한류 대부분의 컨텐츠가 그러했다.
동아시아를 주름잡는 한국의 아이돌 그룹에 대한 미학적 평가는 모두 최저였다.
하지만 대중적 선호는 분명히 존재했고, 오히려 나중에 긍정적인 평가 작업으로 선회했다.
하와이 대학의 미래학자 짐 데이토는 이렇게 말했다.
‘국민-시민 속에 미래가 있다고.’컨텐츠의 미래도 마찬가지다.

<라스트갓파더>라는 영화가 잘 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할리우드에서 영구캐릭터
극장간판에 내걸줄은 아무도 몰랐다. 미학 이데올로기로만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완결이 아니라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이를 통해 컨텐츠와 선호성에서 생각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맥루한의 말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가 아니라 미디어는 컨텐츠이다.
각 미디어에 맞게 채우는 것은 컨텐츠이다.
텔레비전에서 기대하는 것은 재방이나 선정적인 방송이 아니라 <슈퍼스타K>같은 프로이다.
이렇게 변화한 것은 바로 18%대의 시청률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종편의 판가름은 이런 컨텐츠의 구체적인 실체화를 통해서 최종 정리되어야 한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