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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생태계/도서

미국 도예가들이 기립박수를 보낸 우리의 그릇 '옹기'

미국 도예가들이 기립박수를 보낸 우리의 그릇 '옹기'
[서평]우리 그릇 옹기의 모든 것-<숨 쉬는 그릇 옹기>
10.12.05 17:28 ㅣ최종 업데이트 10.12.05 17:29 김현자 (ananhj)

  
장독대와 봉선화는 아련한 그리움이다
ⓒ 김현자
옹기

이처럼 기공이 있어 숨 쉬는 그릇이라 불린 옹기에 옛 어른들은 장을 담갔다가 장맛을 보고 용도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소금쩍이 너무 많이 배어 나오면 통기성이 좋은 게 아니라 옹기가 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옹기 속 수분까지 증발하면 장맛이 없습니다. 이런 옹기는 쌀이나 마른 건어물을

보관하는 것으로 용도를 바꿨습니다. 또 소금쩍이 아예 배어나오지 않으면 미생물 발효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물독으로 썼습니다. 옛 어른들은 옹기의 적절한 통기성을 삶속에서 깨쳤습니다.

- 책에서

 

<숨 쉬는 도자기 옹기>(서해문집 펴냄)는 어린 시절 늘 보고 자랐던 고향집의 장독대와 그 장독대의

스무 개 남짓 항아리들을 자꾸 떠올리며 읽은 책이다.

 

  
<숨 쉬는 그릇 옹기> 겉그림
ⓒ 서해문집
옹기

장독대 주변에는 해마다 여름이면 봉선화며 분꽃, 접시꽃 등이 피고 졌다. 고향집의 장독대는 양은수저로 된장을 푼 후 꾹꾹 눌러놓던 친정어머니와, 생선차가 오면 갈치나 고등어를 궤짝 째 사서 잘라 항아리에 담아 소금 간을 하던 친정아버지와, 꺾고 뒤돌아서면 다시 한 뼘은 자라던 죽순을 잘라 고추장 항아리에 찍어먹던 어린 시절의 수많은 추억들과 함께 떠오른다.

 

아파트가 없던 시절에 자란 사람들에게 장독대 혹은 항아리에 얽힌 추억은 이처럼 다분하리라. 간장이나 된장 혹은 홍시가 담겨 있던 항아리 혹은 된장찌개가 끓던 뚝배기, 즉 옹기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해서 굳이 어떤 의미나 정의를 내릴 필요조차 없는 그런 특별한 그릇이다. 하지만 플라스틱 용기나 김치냉장고 등의 편리성 때문에 이제는 우리 곁에서 많이 사라져 안타깝고 아쉬운 그릇이 되고 말았다.

 

<숨 쉬는 도자기 옹기>는 오랜 세월, 서민들의 그릇이었던 옹기의 면면들을 기자의 눈으로 보고 발로 뛰며 찾아낸, 자연을 닮은 그릇, 옹기 이야기다. 저자는 다큐멘터리 <갈색 도자기 옹기>(2009년 7월 방송) 연출자.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국내 여러 옹기 마을들은 물론이요, 중국과 일본 속 옹기들을 찾아 우리 옹기의 과거를 기록하고 미래를 묻는다.

 

우리나라에서 옹기는 자기에 밀려 전시공간조차 얻지 못하는 처지입니다. 옹기박물관에만 옹기가

 있고 다른 박물관에는 자기만 있습니다. 이런 옹기가 세계 유명 박물관 가운데 하나인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돼 있으니 무척 놀랍습니다. 또 청자는 celadon, 백자는 white porcelain으로 영어로

다시 표현한 데 비해 옹기만 유독 한국 발음 그대로 'Onggi'라고 표현한 것은 더 흥미롭습니다.

이를 보면 청자나 자기와는 달리 옹기만은 김치(kimchi), 불고기(bulgogi), 태권도(taekwondo)처럼

 영어로 번역할 수 없는 한국이 가진 독특한 문화로 그들이 인식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책에서

 

이 책은 5장으로 구성되었다. '옹기는 어떤 그릇인가? 한국인에게 옹기는 무엇인가?'란 주제의

첫 장 '옹기는 Onggie다'에서는 오랜 세월 서민들의 그릇이었던지라 우리의 얼과 숨결을 가장 많이

 간직한 우리의 그릇 옹기의 가치와 국제적 위상을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전시된 옹기이야기를

시작으로 들려준다.

 

정작 그 주인들은 버리다시피한 그릇의 가치를 먼저 알아보고 연구하여 이처럼 전시하거나 막대한

비용을 들여 <한국의 옹기장인>이란 다큐멘터리까지 제작한 스미소니언박물관과 한국의 옹기와

옹기 장인들을 찾아 여러 차례 조사 연구하여 두 번째 책 출간을 앞둔 로버트 세이어스씨(<한국의

옹기장인> 저자)의 '한국의 옹기 연구' 그 사례가 소개된다.

 

아울러 1990년대 외국에 처음 소개된 이래 외국인들에게 소개될 때마다 외국의 수많은 도예가들과

 도예연구자들 및 취진들에게 기립박수를 받고 있는 우리의 대형 옹기 제작 시연 사례도 소개되는데,

솔직히 이 첫 장은 다소 부끄럽고 유감스럽게 읽었다.

 

  병아리물병과 파리잡는 옹기?

- 병아리 물병은 병아리들이 목을 축이도록 고안한 것이라 아주 작습니다. 물을 넣고 옹기를 세워두면 구멍에서 물이 조금씩 나오는데 결코 물이 넘치는 경우가 없습니다. 병아리가 물을 먹어서 물이 줄면 딱 마신만큼만 다시 물이 나와서 언제나 일정한 수면을 유지합니다. 물의 수압을 이용한 것입니다.

 

- 파리 잡는 옹기는 특이한 구조도 구조지만 병아리 물병만큼이나 만들 때 마음씨가 예쁩니다. 파리 잡는 옹기는 밥을 먹을 때 밥상 곁에 두는 것이 아니라 2~3미터 떨어진 곳에 둡니다. 중간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 구멍 뚫린 바닥에 젓갈처럼 파리가 좋아하는 것을 담아두고 파리가 밥상이 아닌 옹기 쪽으로 오도록 유인하는 겁니다. 파리 잡는 옹기 위에 뚜껑을 씌워두면 파리가 젓갈을 먹고 위로 날아가다가 부딪쳐 죽는다는 겁니다. 부딪쳐 떨어질 것을 대비해 홈에 물을 담아 뒀습니다. 옛날에 며느리가 시어른이 식사를 하시는데 파리가 날아와 윙윙거리는 게 민망해서 파리가 밥상이 아닌 옹기 쪽으로 오도록 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 책에서

옹기가 어렸을 때부터 흔히 보고 자란

항아리나 뚝배기라는 것, 숨 쉬는 그릇이라는

 것뿐, 어떤 역사를 지녔으며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옹기와 자기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등,

옹기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옹기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워낙 흔하게 보고 자랐던지라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 같다. 그리하여 옹기 파는 곳을 그냥 지나지 못

하고 멈춰 서서 구경할 때가 많다. 필요한 옹기가

없어 사지 않아도 옹기를 바라보고 있자면 시름이

잊혀지고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아니 이런 저런 이유 없이 그냥 옹기가 무작정 좋기 때문이다.

 

이런 옹기점에서 '전통' 옹기라는 것을 강조한, 전통 옹기만을 파는 것을 암시하는 듯한 안내문을

흔하게 본 것 같다. 그런데 저자에 의하면 현실에 맞지 않아 전통옹기는 거의 제작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생산과 소비구조가 옛날과 전혀 다른 오늘날 전통옹기만을 고집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대부분 옹기점에서 전통 옹기와 현대 옹기 제작방식이 접목된 옹기를 만들어 팔고 있음에도 장인들은

왜 전통 옹기임을 강조하는 걸까? 이는 반대로 오늘날 우리 옹기가 처한 현실을 전혀 모른 채 전통

옹기의 가치만을 고집하는 소비자들을 지나치게 인식한, 옹기장인들 스스로 본의 아니게 현대옹기가

 그다지 가치 없다는 것을 왜곡하는 것 아닐까?

 

제2장 '전통을 잇다'에서는 전통옹기와 현대옹기의 차이점과 구별법, 지역마다 다른 옹기가마와 옹

기제작방식, 현대옹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며 한계점은 무엇인가?, 옹기의 가장 큰 장점인 '숨 쉬는

그릇'과 관련된 소금쩍 실험과 통기성 실험 등을 통해 우리 옹기의 현실을 다양한 방법으로 낱낱이

들려줌으로써 오늘날의 우리 옹기를 제대로 알게 한다.

 

나머지 장에선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우리 도공들의 흔적과 현재 일본 사회에서

워낙 명망있는 심수관 일가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한중일 옹기 제작 현장을 찾아 각국의 옹기와

제작과정 등을 비교하는가 하면 옹기 역사, 우리의 옹기마을 실태 등을 통해 우리 옹기의 미래를

생각해보게 한다.

 

  
옹기는 한국인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통일로 한 옹기점에서 2005년 11월에 찍었다.
ⓒ 김현자
옹기

  
2005년 11월 오마이뉴스 게재 후 여러 mbc를 비롯한 여러 TV 프로그램에서 무단도용해 썼던 그 사진이다. 통일로 한 옹기점에서 2005년 11월에 찍었다.
ⓒ 김현자
옹기

 

옹기에 대한 기록은 아주 드물게 보입니다. 도기와 옹기가 마구 섞여 있어 도기의 역사가 곧 옹기의

 역사인 것처럼 서술되는 책도 있습니다. 옹기는 도기의 한 종류에 불과하지만 조선시대부터 워낙

널리 쓰이다보니 근래에는 도기=옹기가 돼버렸습니다. 고려시대 자기는 청자고 조선시대 자기는

백자이듯이 현대 도기는 옹기가 맞습니다. 그러나 백자=자기가 아닌 것처럼 옹기=도기라고 얼렁뚱당

넘어가기에는 미심쩍은 게 너무나 많습니다. 정작 지금 사용되는 잿물 유약을 바른 옹기에 대해서는

 연구가 거의 되지 않고 있습니다. 잿물 유약을 바른 옹기는 언제부터 출현했을까요? 자기에 대한

문헌은 너무 방대해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비해 옹기는 고작 몇 장에 불과합니다. 옹기에

관련해 체계적인 발굴조사도 보고된 적도 없습니다. - 책에서

 

책은 전체적으로 오늘날 옹기의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저자에 의하면 옹기의 쓰임새와 가치에 비해

 남아 있는 자료와 우리의 연구는 워낙 부족하고 미비하다. 옹기가 힘없는 서민들의 그릇이었기

때문이다. <숨 쉬는 도자기 옹기>는 200페이지도 안 되는지라 좀 얇다. 하지만 '옹기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을 전부 들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책은 알차다.

 

부디 이 책 소개글이 지난 시절 워낙 흔하게 보고 자랐으나 실생활에서 그다지 쓰임새가 없다보니

옹기를 멀리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잊어버린 사람들이 옹기를 다시 만나게 하는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숨 쉬는 그릇 옹기>|홍상순 지음|서해문집|2010년 10월 25일|값:119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