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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원의 힘 "민폐 신데렐라는 가라"

하지원의 힘 "민폐 신데렐라는 가라"

미디어오늘 | 입력 2010.11.15 17:54 |

[캐릭터 열전]'시크릿 가든' 하지원 '"대중성의 함정을 벗어나는 강인함"

[미디어오늘 황정현·독립영화프로듀서 ]

세상이 여성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수히 많다. 물론 남자도 마찬가지지만, 여성에게 요구되는 것은 남성에게 요구되는 것이 권력을 위한 자질, 주도권을 놓지 않기 위한 태도와 같은 능동적 가치라면 여성에게는 수동적 가치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더 많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여성을 바라보는 이런 가치 판단은 조금 이중적이다. 보신탕과 집창촌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조용히 즐기긴 하지만 경원시하는 것처럼' 이중적이듯,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지만 모성애란 이름의 강인함을 아울러 기대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 같은 생활력과 강인함을 보이는 여성에게 "여자가 그러면 쓰나"라는 말과 혹여 남동생이나 가족을 부양하지 않는 여성에게 '자기만 아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것은 세상이 남성에 비해 여성에게 더욱 혹독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화 < 1번가의 기적 > , < 해운대 > 에서 보여준 배우 하지원의 모습에서는 변화한 한국사회에서 강인한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잘 드러난다. 브라운관에서 강인한 여성은 '엄마'라는 타이틀을 달고 여성성을 희미하게 그리거나, 아니면 < 막돼먹은 영애씨 > 처럼 뚱뚱하거나 아름답지 않은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대표 엄마 캐릭터라 할 수 있는 고두심의 경우 산업화시대 공장과 가정을 오가야했던 신산했던 시대적 풍경을 보여준다면, 하지원은 여성에게 섹슈얼리티뿐만 아니라 경제력, 비의존성 등 현대적으로 추가된 가치까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SBS < 발리에서 생긴 일 > 을 제외하고 MBC < 다모 > , 이명세 감독의 < 형사 > , < 해운대 > , < 1번가의 기적 > 등 보통의 20대 여성이 화면에서 보여주고 있지 않은 특이성을 갖고 있다. 거칠고 강인한, 생활력 강한 젊은 여성의 이미지는 기존 '민폐'라 일컬어지는 캐릭터들과도 차별성을 갖고 있으며 섹슈얼리티 또한 의도적으로 거세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소녀 가장'의 이미지를 주는 다른 캐릭터들이 여성이라는 한계를 그대로 노출하는 민폐성을 갖고 있다면, 하지원은 중성적인 느낌을 풍기며 그 한계를 벗어난다.

얼마 전 새로 시작한 SBS < 시크릿 가든 > 의 길라임 캐릭터 또한 하지원이 '시그니처'처럼 갖고 있는 독립적인 여성상을 보여주며 기존 의존적인 캐릭터와 다른 부분을 보여주고 있다. < 시크릿 가든 > 에서는 하지원의 이런 기존 캐릭터를 십분 발휘한다. '거친 신데렐라'와의 사랑, '체인지'를 통한 성장이 주된 의도인 이 드라마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것을 (자의든 타의든) 거부하면서 살아온 길라임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 김주원(현빈)이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핵심 동력이기 때문이다.

하지원의 이런 캐릭터성은 한국 여배우들에게 찾아보기 힘든 드문 사례이다.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여배우들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시선과 덕목에 갇히거나( < 개인의 취향 > 손예진), 강인함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모성애와 결부된( < 세븐 데이즈 > , 김윤진) 형태로 안전망을 치는데 반해, 하지원 만은 그런 안전장치나 설정없이 캐릭터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의존적인 여성 캐릭터가 꼭 배우의 문제만은 아니며,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이입 가능한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은 콘텐츠와 사회의 쌍방향적인 문제이다. 그런 캐릭터를 기대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며, 그런 캐릭터만 보여주기 때문에 보는 것일 수도 있다. 배우 하지원의 힘은 자신의 개성으로 순환 모순과 같은 그런 문제를 깨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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