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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사로잡는 한국 SF영화의 성공조건 SF적 환경, 한국정서 SF접목, 기술적 완성도

관객 사로잡는 한국 SF영화의 성공조건 SF적 환경, 한국정서 SF접목, 기술적 완성도 2010년 11월 04일(목)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는 유독 SF영화가 많다. 역대 흥행성적 1위를 기록한 ‘아바타’를 비롯해 스타워즈 시리즈, 반지의 제왕 시리즈, 해리포터 시리즈 등 상위 흥행 10위권 내 영화 대부분이 SF 또는 판타지 영화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에는 CG(컴퓨터그래픽)기술이 부족해 SF영화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영화 ‘검우강호’,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 등 해외영화에 국내 CG기술을 수출할 정도로 기술적으로는 비약적 발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영화계에서 SF장르는 생소한 소재다. 'Science Fiction'을 뜻하는 SF는 우리말로 과학소설 정도로 해석된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SF는 우리말로 공상과학소설이라고 해석돼 맨 앞에 공상이라는 접두어가 따라 다닌다.

이런 이유로 SF영화를 제작한다고 하면 “허무맹랑한 공상을 가진고 만든다”는 비아냥, 제작사나 투자사에서 “왜 만들려고 하냐”며 꺼리는 장르라는 것이 한국 SF 영화의 현주소다. 역대 한국영화 흥행기록을 보더라도 SF장르로는 ‘괴물’과 ‘디 워’ 정도 등 손으로 꼽을 정도다.

한국 SF영화, 관객 외면 왜?

한국 SF영화가 관객에게 외면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7급 공무원’을 연출한 신태라 영화감독은 3일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열린 제32회 융합카페 ‘한국의 영화감독, 우리의 SF를 말하다’에서 한국인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의 부재를 첫째로 지적했다. 그는 영화 ‘괴물’이 흥행에 성공한 이유에 대해 SF장르가 아니라 가족 드라마에 SF적 요소를 첨가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며 ‘공감소재’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스마트폰으로 제작한 단편영화 ‘오리진’을 연출한 이현하 감독은 관객의 몰입을 SF외면의 요인으로 지적했다. 영화는 현실에서 있을법한 소재로 제작된다. 이 감독은 “감독이 영화를 만들 때 작품 구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인이 바로 작품에 얼마나 관객이 몰입할 수 있느냐의 여부”라고 말했다. 즉 얼마나 관객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것인가가 핵심이라는 얘기다. SF가 우리나라에서 주류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 관객몰입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 한국과학창의재단 주최 제32회 융합카페에서 신태라, 이현하, 민병천, 신한솔 감독 등이 한국 SF영화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초현실적 사건이나 이야기가 넘쳐나는 미국의 경우 UFO, 외계인 등 SF소재에 대중은 친숙하다. ‘로스웰’이라는 미국 드라마는 UFO가 정착한 마을이라는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UFO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이런 이유로 미국인들은 SF 장르를 자신들의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있을법한 이야기로 믿는다. X-파일의 성공도 미국이들이 좋아하는 초현실적 소재를 다뤘기 때문이다.

초현실, UFO, 외계인 등 SF문화에 친숙한 미국과 달리 한국은 전통적으로 ‘음주가무’와 ‘희로애락’의 감성을 가졌다. 때문에 한국인이 접하기 쉽고 다가가기 쉬운 희로애락의 감성 소재에 SF를 접목하는 것은  SF의 좋은 아이템이 될 수 있다.

신 감독은 “다양한 장르에 SF를 결합하거나 전설 또는 신화는 좋은 아이템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사극SF, 멜로SF, 코믹SF, 공포SF, 액션SF, 신파SF, 스릴러SF 등 SF를 장르에 구속하지 말고 각각의 장르에 SF적 요소를 가미하는 방법이다. '디워'는 이무기와 여의주, 용이라는 한국만의 독특한 전설에 SF적 요소를 가미해 각색해 만든 작품이다.

한편 한국적 정서에 SF를 접목해야만 성공할 수 있을까에 대해 회의적인 주장도 제기됐다. 한국 SF성공에 한국적 정서가 결정적 요인이라면 한국에서만 흥행이 안 되는 할리우드 SF영화가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요체는 스토리텔링과 CG를 비롯한 기술적 완성도인데 한국적 정서에만 천착하는 것은 오히려 한국SF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카페에 참석한 이종필 연세대 연구원은 지적했다.

SF영화가 영화의 미래 될까

공상과학이라는 장르적 한계를 넘어 SF영화의 발전가능성은 어느 정도나 될까. SF영화의 발전가능성에 말하기에 앞서 현재 영화계의 현실부터 살펴보자. 뤼미에르 형제가 처음으로 영화를 제작한 이래 영화는 영화소재뿐만 아니라 제작시스템에서도 괄목한 발전을 겪었다.

아날로그 필름을 주도했던 ‘코닥’의 아성은 무너진 지 오래다. 영화는 더 이상 필름으로 찍지 않는다. 더불어 현실에서 찍는 것도 아니다. 많은 영화들이 스튜디오에서 푸른 천(blue screen) 앞에서 촬영되며 CG로 현실감을 덧씌운다. 촬영하거나 상영할 때 롤 체인지도 없어졌다. 디지털 기기는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그 결과 카메라는 점점 가벼워졌다. 급기야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찍는 시대가 도래했다.

스마트폰의 도래와 함께 극장의 변화도 예고되고 있다.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것이라는 고전 관념이 깨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컴퓨터로 영화를 다운받아 보고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는 스마트 극장시대가 곧 올 것이란 전망이다. 이 같은 제작 환경에서 영화가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이 감독은 영화만의 매체 특성을 꼽았다.

즉 영화는 영화만이 할 수 있는 표현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다른 매체(소설, 연극, 오페라 등)와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돼야 경쟁력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영화를 영화답게 하는 방법은 영화라는 매체 자체보다 외부적 요인에서 먼저 다가오고 있다. 바로 혁명적 기술의 진보라는 요인이다. 핵심은 기술적 혁신이라는 외부적 압력에 함몰되지 않고 어떻게 스토리를 영화적으로 잘 소하해 표현해 내느냐에 있다. 지금은 아이폰으로 1,000만원 이하의 저예산 단편영화를 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제작환경이 급변했다.

이 감독은 최근 아이폰4로 제작비 700만원 9분17초의 영화 ‘오리진’을 완성했다. 아이폰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영화제작 환경이 용이해졌다는 점과 아이폰과 같은 다양한 제작도구의 사용이 일상적인 현실이 됐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이 감독은 “SF가 영화의 미래가 될 수 있다”며 “어떤 이야기와 어떤 표현으로 영화의 매체성을 극대화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SF 성공의 조건

SF를 한국에 녹아내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 척박한 한국 SF풍토를 비옥한 SF풍토로 만들기 위해서는 SF 영화 자체뿐만 아니라 SF영화를 둘러싼 환경 또한 중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내추럴 시티’를 연출한 민병천 감독은  내추럴 시티의 흥행실패 이후 허한 때 “한국인 정서에 SF는 맞지 않다”라고 생각했었다고 술회했다.

민 감독은 한국인의 SF 정서 거부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SF적 환경의 조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SF문화를 정착하기 위해서는 어른이 아닌 아이들부터 공상과학과 같이하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 감독의 이른바 SF적 환경은 예를 들면 아이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상상하는 것이다. 민 감독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코코몽’은 냉장고 속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괴물이 있다는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비롯됐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딸의 아이스크림을 몰래 꺼내먹은 민 감독에게 딸이 “내 아이스크림 아빠가 먹었냐”고 따져 묻자 민 감독이 임기응변으로 “냉장고 속에 괴물이 먹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후 딸이 매일같이 냉장고를 열어보며 괴물을 찾고 있는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한국형 SF 애니메이션 코코몽이 제작됐다. 코코몽은 어린아이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감독이 SF영화를 제작할 때 과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스토리를 고증 받고 자문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며 상상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직 감독들은 과학자들과의 교류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를테면 과학자들이 영화적인 표현과 영화적 시나리오를 이해하지 못해 소통 자체가 안 되는 소통의 문제이다. 블랙홀을 소재로 한 SF영화를 기획 중인 신태라 감독은 블랙홀 관련 물리학 저명 박사와의 교류에서 “그런데 도대체 왜 블랙홀 영화를 만들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난감했던 경험이 있다고 털어났다.

SF에 대한 저변 확대, 튼튼한 스토리텔링, 기술적 완성도 등이 한국 SF 성공의 열쇠로 지적됐다. 민병천 감독은 “SF적 상상력과 디지털 크리처(creature) 기술이 접목되면 한국SF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며 “반지의 제왕 3부작을 300억 원에 제작할 수 있는 시대가 곧 도래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융합카페는 과학기술과 인문,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 각 전문가들의 견해와 경험을 공유하고 창의적 융합문화를 창출하는 ‘소통의 장’을 형성하기 위해 매월 한국과학창의재단 주최로 열린다. 앞서 한국과학창의재단은 지난 7월 제21회 융합카페 ‘과학적 상상력과 SF’를 개최한 바 있다.

이성규 객원기자 | henry95@daum.net

저작권자 2010.11.04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