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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신드롬 이후…

‘정의란 무엇인가’ 신드롬 이후…

출판계 “어려워서 인문학 관심 멀어질라”
서점가 “무거운 주제의 독자관심 늘어나”

경향신문 | 김재중 기자 | 입력 2010.10.25 21:50 |

인문서로는 8년 만에 처음으로 종합베스트셀러 목록 1위에 올랐던 < 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김영사)(사진)가 총 50만권(출고 기준)이 판매됐다. 출간된 지 5개월 만이다. 웬만해선 초판 2000~3000권조차도 쉽게 소화되지 않는 한국의 인문서 소비 현실에서 지극히 이례적이다. 하나의 '신드롬'으로 자리잡은 형국이다.

지난 5월24일 출간된 < 정의란 무엇인가 > 는 7월 첫째주에 처음으로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이하 교보문고 기준). 7월 마지막주~8월 둘째주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 1Q84 > (문학동네) 제3권에 자리를 내줬지만, 8월 셋째주부터 다시 1위 자리에 올랐다. 이 책은 10월 셋째주에 조정래의 소설 < 허수아비춤 > (문학의문학)에 자리를 내주기까지 총 12주 동안 1위 자리에 있었다.

정치철학을 다루는 책이 이토록 오랫동안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신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당연히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는데 간추리자면 일단 지적 호기심 또는 지적 허영 등이 지적된다. 책이 한번 종합베스트셀러 목록에 진입하면 입소문과 독자들의 호기심이 일으키는 상승작용 때문에 자체 동력으로 얼마간 판매가 지속된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공정사회론', 김태호 총리 지명자의 인사청문회 거짓말 논란과 낙마,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의 딸 특별채용 파문 등이 이 책이 계속 회자될 수 있는 소재를 제공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실이 정의의 문제를 고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논리다.

이제 관심은 < 정의란 무엇인가 > 이후로 쏠린다. <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 (동녘), < 왜 도덕인가 > (한국경제신문사) 등 샌델 교수의 다른 저작들이 추가로 소개됐거나 소개될 예정인데, 샌델에게 모아졌던 독자들의 관심이 다른 인문·사회과학 서적으로도 확산될 것인가란 질문이 제기된다.

출판계는 부정적으로 보는 편이다. 장재경 김영사 홍보팀장은 "다른 인문서들이 조금 같이 움직이는 것 같긴 하지만 시장 자체가 워낙 위축돼 있다 보니 아직 피부로는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김미정 책세상출판사 편집과장은 "한 권의 책이 넓은 의미의 인문서 시장 자체를 키우거나 독자들의 인문서 독서 욕구 진작에까지 실효성 있는 영향력을 끼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어느 출판사 대표는 "워낙 쉽다고 해서 < 정의란 무엇인가 > 를 집어들었던 독자가 어려움을 느끼고 포기함으로써 다른 인문서에 대한 관심마저 차단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점 쪽 얘기는 다르다. 인문서 시장이 지난해에 워낙 크게 위축됐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긴 하지만 올해 상반기에 인문서 판매량은 다소 늘었으며, 하반기에도 무거운 주제와 두꺼운 책들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나온 제러미 리프킨의 < 공감의 시대 > (민음사), 조지 레이코프의 < 도덕, 정치를 말하다 > (김영사), 발간 예정인 장하준의 <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부키)와 같은 책들이다. 교보문고에서 베스트셀러 집계를 담당하고 있는 김현정씨는 "과거 같으면 독자층이 매우 협소했을 이런 책들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늘어난 배경에 < 정의란 무엇인가 > 의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자기계발서대로 한다고 인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이 판명된 마당에 인간과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소장은 "1980년대 같은 수준은 아니어도 인문시장이 커질 것으로 본다"면서 "암울한 현실이 그런 책을 읽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김재중 기자 hermes@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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