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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명사

[한경에세이] 문화재가 콘텐츠다

[한경에세이]

나경원 국회의원

서울시 중구 광희동에 있는 광희문은 서울 8대문 중 하나다. 8대문이란 4대문인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숭례문(남대문),숙정문과 4소문인 혜화문,광희문,소의문,창의문을 합쳐 이르는 말이다. 광희문 밑에는 하수구인 수문(水門)이 있어 수구문(水口門)이라는 별칭도 생겼다. 조선 시대 시체의 반출이 허용된 문이라 시구문(屍軀門)으로 불리기도 한다. 수많은 시체가 드나들면서 혼령들에 시달렸고,그러는 동안 신통력이 생겼을 거라는 믿음 때문에 광희문의 돌을 갈아 먹으면 모든 병이 치유된다는 속설도 생겼다.

뜬금없이 동네 문화재 얘기를 한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특별할 것 없는 문화재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곳곳에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비단 광희문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재에는 오랜 세월의 기억과 사람들의 흔적이 만든 이야깃거리가 담겨 있다. 모두가 우리만의 문화 콘텐츠요,스토리텔링의 소재다. 단순히 보존만 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사람들 속에서 어울리게 한다면 훌륭한 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 보스턴에는 일명 '프리덤 트레일(Freedom Trail)'이란 관광명소가 있다. 코먼에서 찰스타운에 이르는 약 4㎞의 구간이다. 두 시간 정도를 천천히 걸으며 독립운동과 관련된 기념장소들을 찾을 수 있다. 붉은색으로 노면을 표시해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도록 했고,방문지마다 스탬프를 찍게 하는 재미를 제공한다. 우리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짧은 역사를 가진 나라지만,유적지를 도보 관광 코스로 개발해 세계적인 문화 콘텐츠로 만든 지혜가 부럽다.

우리도 산책하며 가까이 있는 문화재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할 수 없을까. 외국 관광객들이 붐비는 도심에 이야깃거리가 있는 산책로를 만들 수 없을까. 그저 보고 사진 찍고 설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걸으며 문화재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다면 오래 남을 추억이 될 것이다. 분명 외국인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체험이 될 것이다. '옛것'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이 있지만,이 경우는 '복고지신(復故知新)'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책에서나 배운 옛 사람들의 흔적과 이야기가 되살아나 새로운 것으로 느껴져서다.

현대의 문화 콘텐츠는 모두 과거에서 나왔다. 아무리 창조적이고 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과거를 되살려 재구성한 것이다. 우리의 문화재들은 모두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되살아날 수 있다. 가만히 '옛것'으로 두기에는 너무도 아깝다.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은 '옛것'을 되살리는 '복고지신'이 없다면 공허한 구호에 머물 뿐이란 점을 잊지 말자.

나경원 < 한나라당 국회의원 nakw@assembly.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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