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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크리에이터

[Close-up] 한국 온라인게임의 대부 송재경씨 [중앙일보]

[Close-up] 한국 온라인게임의 대부 송재경씨 [중앙일보]

2010.09.13 18:49 입력 / 2010.09.13 21:24 수정

바람의 나라, 리니지 개발 주역 새 게임 들고 7년 만에 출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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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바람의 나라’ ‘리니지’ 같은 대박 온라인게임을 탄생시킨 송재경(43·사진)씨가 ‘아키에이지(태초의 시대)’라는 게임으로 다시 한번 출사표를 던진다. 본인이 세운 엑스엘게임즈라는 회사를 통해서다. 그는 게임 유저(사용자)들이 스스로 뭔가를 구상하고 도전해볼 여지를 많이 줬다는 점에서 이전 게임과 차별화된다고 설명했다.

“미국 블리자드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이하 와우)’ 같은 요즘 온라인 게임들을 놀이공원이라고 한다면 아키에이지는 놀이터라고 할 수 있어요.” 놀이공원에선 이미 설치된 놀이기구를 즐길 수밖에 없지만 놀이터에선 모래성도 쌓고, 폐타이어로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텃밭인 온라인게임, 좀 더 구체적으론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으로 돌아온 건 7년 만이다. 2003년 엔씨소프트의 부사장이라는 안정된 자리에서 뛰쳐나와 지금 회사를 차린 직후 만든 것이 ‘XL1’이라는 자동차 경주 게임이었다. 하지만 고배를 들었다. 2006년 말부터 다시 온라인게임 개발에 몰두해 지난해 아키에이지를 공개했고, 지난 7월 1차 베타서비스(비공개 테스트)를 마쳤다. 본격 서비스는 내년 시작한다. 이 게임 개발에 들어간 돈은 30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유명 판타지 소설 작가인 전민희씨가 동서양 고대신화로 스토리를 만들고, 가수 윤상·신해철씨가 음악을 맡았다. 11월 열리는 국내 최대 게임박람회 ‘지스타’에선 40개 부스를 빌려 대규모 홍보에 나선다. 그는 “게임 개발자로서 마지막 작품이라는 각오로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중국의 한 유명 인터넷 서비스업체는 최근 이 게임의 판권을 5000만 달러 이상에 사 간 것으로 알려졌다.

송 대표는 한국 온라인게임, 특히 MMORPG의 산증인이다. 자라나는 게임개발자 세대한테서 ‘한국 온라인게임의 아버지’ 소리를 들을 정도다. 서울대(컴퓨터공학과)·KAIST(전산학과 석사)를 나온 그는 1994년 국내 처음 PC통신에서 여러 명이 함께 즐기는 ‘머드(multi-user dungeon)’ 게임 ‘쥬라기 공원’을 만들고, 서울대·KAIST 동기인 김정주씨와 넥슨을 공동 창업했다. 이듬해 머드게임에 그래픽을 입힌 본격 MMORPG ‘바람의 나라’를 개발해 ‘바람’을 일으켰다. 97년엔 엔씨소프트로 자리를 옮겨 대히트작 ‘리니지’를 만들었다.

송재경 대표도 굴곡이 많았다. 특히 블리자드가 2004년 ‘와우’를 내놨을 때 크게 낙담했다고 한다. ‘이제 MMORPG는 완성됐다. 더 이상 내가 할 일은 없다’고 탄식했다.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 생각했으나 할 수 없다고 본 것들을 모두 구현했다고 느낀 때문이다. 이후 2년간 그냥 일반 유저로 와우를 즐기면서 최고 등급 아이템까지 획득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좌절이 다소 과장됐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더 나은 게임을 개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 차기작 개발에 착수했다. 그것이 이번 아키에이지다. 송 대표와의 일문일답.

-블리자드의 와우보다 어떤 점이 뛰어난가.

“와우에선 정해진 길을 따라서 하면 된다. 개인의 자발적인 의지를 펼칠 여지가 별로 없어 답답하다. 아키에이지에는 유저들이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가는 재미를 넣었다. 손수 집을 짓거나 마을·숲을 조성할 수도 있다. 대규모 전투 장면은 박진감과 리얼리티를 살렸다.”

-국내 양대 게임업체인 넥슨과 엔씨소프트를 그만둔 계기는.

“그땐 좀 어렸다고 해야 할까. 개성이 강해 최고경영진과 더러 충돌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들 잘 지낸다. 김정주 넥슨 회장과는 오늘 낮에도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10여 년 사회생활을 하면서 ‘평균적인 사회성’은 획득한 것 같다.”(웃음)

-천재 개발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과찬이다. 학창 시절 ‘찌질이 범생이’ 쪽에 가까웠다. 격투나 우주선 격파처럼 순발력을 요하는 게임은 아직도 잘 못한다. 내가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직접 만들었을 뿐이다.”

-소셜게임 열풍이 만만찮다.

“정보기술(IT) 업계엔 10년 주기설이라는 게 있다. 소셜, 즉 사회적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IT가 향후 트렌드라는 점은 맞다. 다만 온라인 게임은 이미 소셜을 기반으로 커왔다. 수천 명이 동시 접속해 협력해 가며 게임을 펼친다. MMORPG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반의 간단한 소셜게임은 공존하며 발전할 것이다.”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 한꺼번에 수천 명 이상의 이용자들이 접속해 게임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정해 즐기는 온라인 게임.

박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