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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생태계/지식

태풍의 영향은 ‘현재진행형’ 괴짜 ‘곤파스’, 느림보 ‘말로’

태풍의 영향은 ‘현재진행형’ 괴짜 ‘곤파스’, 느림보 ‘말로’ 2010년 09월 17일(금)

지난 2일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 ‘곤파스’. 태풍 곤파스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너무나 처참했다. 거센 강풍에 나무는 뿌리째 뽑혔고 철탑은 두 동강이 났으며, 무너진 담장에 차가 파괴됐다. 안타까운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 등 태풍 곤파스는 우리에게 큰 아픔을 안겨주고 떠나갔다.

곤파스가 떠나기 무섭게 태풍 ‘말로(MALOU)’가 뒤를 이었다. 지난 6일 새벽부터 제주도를 시작으로 남해안 일대에 영향을 줬던 ‘말로’는 곤파스 만큼이나 큰 피해를 입힐 거라는 우려를 샀다. 하지만 다행히도 큰 피해를 주지 않고 빠져 나갔고, 지난 7일 한반도는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 서울 북악스카이웨이 길에 쓰러진 가로수.  ⓒ연합뉴스

갈 길 막혀 느림보 된 ‘말로’

이번에 영향을 준 두 태풍은 특이한 점이 몇 개 있다. 앞서 지나간 ‘곤파스’와 달리 ‘말로’는 느림보였다. 곤파스가 시속 40~50km의 속도로 빠르게 이동한 반면, 말로의 이동 속도는 전향 후에도 시속 15~20km로 느린 편이었다. 중국 내륙에 위치한 차가운 고기압이 태풍이 북상하려는 걸 막아섰기 때문이다. 거기에 북태평양 고기압이 늦게 수축하기도 했다.

천천히 움직였던 탓에 태풍이 머무른 제주도 산간과 경상남북도 지방에는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말로가 큰 피해를 일으키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는 앞선 태풍 곤파스의 영향도 있었다. 곤파스가 이미 해수를 충분히 뒤섞어놓은 뒤라, 말로가 해수면을 통과하며 받을 수 있는 열에너지가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말로가 더 이상 발달할 수 없었다.

▲ 태풍 '말로' 북상 당시 우리나라 기압계  ⓒ기상청

‘곤파스’, 너는 정말 ‘소형’ 태풍?

그런데 태풍 ‘곤파스’ 또한 몇 가지 의문점을 지니고 있다. 소형 태풍이라고 했는데 알려진 규모에 비해 피해가 매우 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곤파스’는 처음 생성돼 북상할 때는 중형급 태풍이었다. 하지만 태풍이 생성된 해역의 해수면 온도보다 해수면 온도가 훨씬 낮은 서해상을 지나면서 규모가 축소돼 소형으로 바뀐 것이다.

거기에 피해 지역이 위험반원에 들었던 원인도 한 몫 했다. 태풍 진행 방향 기준으로 태풍의 오른쪽에 위치하는 지역은 위험반원으로 불린다. 위험반원에서는 태풍의 바람 방향과 그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부는 바람 방향이 같아 태풍 본래의 풍속에 더해진다.

끌어주고 밀어준 기압골과 제트

다음으로 태풍의 속도가 예상보다 빨랐던 것도 의문이다. 그 비밀은 기압골과 제트에 숨어있다. 지상 근처에서는 북쪽에 위치한 기압골이 태풍을 북쪽으로 끌어올려 전향될 때의 속도 감소가 거의 줄었다. 기압골은 등압선을 그렸을 때 저기압 쪽을 향해 오목하게 파인 U자형을 이룬 부분을 말한다. 기압골이 태풍의 진행 방향을 향해 힘껏 당겨줬으니 태풍은 자기가 가진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거의 없었던 셈이다.

거기에 200hPa 제트가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태풍의 속도를 더욱 높였다. 제트는 대류권 상층에서 불고 있는 폭이 좁고 속도가 매우 빠른 편서풍을 가리킨다. 제트는 마치 강이나 해류의 흐름처럼 지구를 둘러싸고 흐르는 공기의 흐름이다. 앞서 언급된 기압골이 태풍에 손을 내밀어 앞에서 잡아당겨줬다면, 제트는 태풍 뒤에서 밀어준 효과가 나타난 셈이다.

▲ 9월 1일 오후 9시 200hPa 일기도. 표시된 영역이 강풍구역인 제트이다.  ⓒ기상청

이런 상황 덕분에 태풍의 에너지는 강한 풍속과 집중호우로 나타났다. 태풍이 빠르게 이동했기 때문에 대부분 지역에서 강수는 소나기처럼 짧은 시간 동안만 지속됐다. 특히 태풍의 진행방향 오른쪽에 해당하는 지역에 영향을 줬다.

9월의 아픈 추억, ‘매미’와 ‘나리’

9월에 무슨 태풍이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태풍이 꼭 여름철에만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건 아니었다. 9월에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태풍으로 2003년 ‘매미’와 2007년 ‘나리’가 있다. 두 태풍 모두 9월에 왔다는 점 외에도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아프도록 선명하게 남아있는 태풍일 것이다.

‘매미’는 가장 강한 바람을 기록한 태풍이다. ‘매미’가 영향을 미칠 때 고산 지역에서 60m/s라는 순간최대풍속을 기록했는데, 이는 기상관측 이래 가장 큰 값이다. ‘나리’ 또한 제주도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될 만큼 큰 피해를 입힌 태풍이다.

이 때 기록된 일강수량 420mm는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제주도에는 이보다 더 많이 비가 내린 적이 없을 정도의 최고 기록이다. ‘매미’는 9월 12~13일, ‘나리’는 9월 16~17일에 영향을 미친 태풍이다.

태풍 영향 다시 받을 가능성 커


두 태풍이 연이어 지나간 지금, 안심해도 될까. 안타깝게도 기상청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다시 태풍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태풍이 자주 발생하는 해역의 해수면 온도가 29℃ 이상으로 높아 태풍이 발생하기 좋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최근 라니냐 현상이 발생해 동태평양의 수온은 낮아졌고, 서태평양의 수온은 평년보다 높아졌다. 이 때문에 태풍발생 해역의 수온이 높게 유지되면서 태풍이 발생하기 좋은 조건을 유지하고 있다. 라니냐 현상이란 평년과 비교해 편동풍이 약해져 동태평양의 수온이 더 낮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참고로 ‘곤파스’가 북상할 때 우리나라 근처의 해수 온도는 다른 지역보다 2~3℃ 높은 상황이라 태풍이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북상하기 좋은 상황이었다.

▲ 8월 31일의 해수면 온도. 전반적으로 높다.  ⓒ기상청
▲ 해수면온도 편차도. 우리나라 주변 해수면온도가 높게 나타나있다.  ⓒ기상청

김은화 객원기자 | 777_bluebear@naver.com

저작권자 2010.09.17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