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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생태계/지식

천재들이 창의성을 독차지하고 있다?

천재들이 창의성을 독차지하고 있다? LG경제연, 창의성에 대한 오해와 진실 사례 2010년 09월 06일(월)

창의성의 현장을 가다 과거 미국 연방정부에서 일했던 양창삼 한양대 경상학부 명예교수는 자신의 저서 ‘창의성 개발과 기업경영’이란 저서에서 한국전쟁 당시 미국 공군의 생존훈련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당시 미 공군은 조종사가 뜻밖의 상황에 처해 북한군에게 포로로 잡혔을 때 이 극한상황에서 생존할 수 있는 특별 훈련을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극한의 추위, 물과 음식이 없는 상황, 바다나 적진 후방 등에 고립됐을 때 등 어떠한 상황에서도 생존이 가능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과거 연구 문헌을 조사와 기존 훈련 프로그램에 대한 벤치마킹, 과거 극한상황에서의 생존자 인터뷰 등을 실시했다.

그리고 이런 연구를 통해 도출된 연구결과는 어떤 훈련 프로그램에서도 가르치지 않았던 ‘창의성’이었다. 아무리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하더라도 실제 상황에서 조종사들을 살릴 수 있었던 것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unexpected)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었다.

이 사례는 창의성에 대한 여러 가지 새로운 의미를 던져준다. 무엇보다 우리 주변에 창의성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LG경제연구원은 기업과 관련된 창의성에 대한 주요 논쟁 포인트를 제시하고, 창의성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설명했다.

창의성이 소수 천재들의 것인가? 

기업 창의성에 대한 가장 오래된 오해는 ‘창의성을 소수의 천재들이 독차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1800년대 후반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나, 전구 등 많은 발명품을 만들어낸 토마스 에디슨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 실험실에서 자신이 발명한 전구를 들고 있는 에디슨. 
실제로 이들 발명가들의 업적과 영향력은 정말로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성공 모델을 오늘날 연구현장에 적용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노용진 연구위원은 말했다. 오늘날의 발명과 창조는 지식과 정보의 폭증, 분야별 전문화, 혁신과정의 복잡성 등으로 인해 옛날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

노 연구위원은 “과거의 발명과정 역시 개인 능력의 산물이라고 볼 수 없는 점이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에디슨의 발명 뒤에는 수많은 연구 조수들의 노고가 숨겨져 있다는 것. 노 연구위원은 “이제는 기업 창의력을 단편만 봐서는 안 되며, 잠재된 전체의 모습을 인식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노 연구위원에 따르면 ‘실패를 용인하고 모험을 장려하는 조직이 돼야 한다’는 주장 역시 의문을 안고 있다. 그 한 예로 올림픽 개막식 성화 장면을 들 수 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개막식에서는 활로 성화를 점화하는 극적인 장면이 있었다. 안토니오 레볼로라는 장애인 궁사가 단 한 번에 멋지게 점화를 성공시켜 역대 최고의 점화 장면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공이 모험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점화식을 위해 이 궁사는 수천 번 이상 바람의 방향과 강도를 감안해 연습을 했으며, 주최측에서는 만약의 실수를 대비해 자동점화 장치까지 준비해놓고 있었다. 모험적인 제안 못지않게 그 실행을 위한 준비가 뒷받침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외재적 보상만으로 창의성을 높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구성원들의 바람직한 행동에 대해서는 보상을 하고, 그렇지 않은 행동에 대해서는 보상을 하지 않아야 한다. 노 연구위원은 그러나 이러한 원칙이 창의성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 1892년 뉴욕과 시카고 간의 시범 통화를 하고 있는 벨. 

비록 보상이 어떤 상황에서도 잘 통하는 도구이긴 하지만, 불행히도 창의성의 경우에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것. 오히려 반대의 효과를 만들어 창의성을 감소시킨다는 분명한 증거들까지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창의성 연구의 대가인 테레사 아마빌이다. 그는 보상이 아동, 예술가 그리고 과학자 모두에게서 창의성을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창조적인 사람들은 매수해 봤자 효과가 없다’는 것.

내재적이고 상징적인 보상이 물질적인 보상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사례도 있다. 1990년대 미국 켄터키 주에 있는 존슨 콘트롤즈(Johnson Controls)사의 포아맥 공장을 그 예다.

도요타와 포드자동차에 좌석 쿠션과 좌석 조절장치, 그리고 머리 받침대를 공급하는 이 포아맥 공장의 아이디어 포상제도는 직접적 포상과 거의 관련이 없도록 시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직원들은 자신의 제안이 채택될 경우 내재적 보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6년 이 공장의 직원 350명은 모두 하나 이상의 개선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외재적 보상 역시 효과가 있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정해진 업무인 경우 외재적 동기 부여가 효과적이라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포아맥 공장의 사례는 업무 내용에 따라 외재적 보상과 내재적 보상을 신중하게 선별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창의성은 계획과 우연의 복합적 산물?  

일본의 유제품 회사인 유끼지루시유업의 연구원, 호리 도모시게는 어느 날 실험실을 나가면서 우유를 담은 플라스틱 용기에 열선 전류를 끄는 것을 잊고 말았다. 다시 돌아왔을 때, 우유는 응고돼 있었고 온도측정기 기록상에는 재미있는 변화가 기록돼 있었다.

▲ 3M의 한 연구윈이 우연한 개발한 '스코치 가드' 
우유가 열에 의해 응고되는 시점에 큰 온도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그는 이 현상을 요구르트 제작과정에 있어, 우유 응고통의 전원을 끄는 가장 적당한 시점을 계측하는 자동화 기계를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로 발전시켰다.

그 이전까지는 숙련공이 경험과 직감에 의해 언제 중단할지를 결정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었다. 때론 너무 일찍 중단해 질이 떨어지거나, 너무 늦게 중단해 좋지 않은 향이 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호리 도모시게로 인해 오늘날 일본은 물론 전 세계 치즈 제조업체가 향기 나는 치즈를 생산하고 있다.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3M 연구소의 조안 뮬린이라는 연구원이 어느 날 자신의 테니스 신발에 화학 물질을 발견했다. 그는 이 화학 물질을 닦아내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조안 뮬란은 이 물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했는데, 얼마 후 물이나 기름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는 스코치가드(Scotchgard)의 기원이 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물질의 발견에 대한 3M의 역사 기록이다. 3M의 공식 역사 기록인 ‘Our Story so far : Notes from the First Seventy-Five Years of 3M Company’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담겨 있다. “3M의 한 연구원은 신발에 묻은 화학 물질을 골치 아픈 세척 문제로 인식했다. 그러나 화학자인 패스티 셔먼(Pasty Sherman)과 샘 스미스(Sam Smith)는 이를 다르게 보았다. 그들은 이것을 물과 기름에 더럽혀지지 않는 섬유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로 만들었다.”  

마치 우연한 발견이 아니라 계획적인 노력의 산물인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 왜 이런 잘못된 역사 기록이 발생한 것일까? 소위 ‘기대하지 않은 기원’이 경시되는 경향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발생한다. 대부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미리 예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힘들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강봉 편집위원 | aacc409@naver.com

저작권자 2010.09.06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