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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딘 민영화에 정체성 혼란…`제2의 우리금융` 전락 우려

더딘 민영화에 정체성 혼란…`제2의 우리금융` 전락 우려
기사입력 2010.08.15 17:38:10 | 최종수정 2010.08.15 21:25:17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 흔들리는 한국금융 대해부 ⑭ 산은금융지주 ◆

"사업 다각화, 대형화와 국외진출 등에 적극 나서 여타 금융회사에 새 사업모델을 제시하는 벤치마크로 기능할 것이다."

2008년 6월 정부는 산업은행 민영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이런 내용의 `원대한` 포부를 담았다.

그러나 2년 넘게 지난 지금 금융당국 안팎에선 산은금융그룹이 또 하나의 우리금융지주로 전략하는 것 아니냐는 염려가 팽배하다. 게다가 외화채권 발행 시 조달금리가 오르는 등 민영화 과도기 부작용은 이미 일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쪽으론 보유기업 구조조정으로 정책당국과 호흡을 맞춰야 하고, 다른 쪽으론 소매금융 강화ㆍ카드업 진출 등 민영화를 위한 수신기반 확보에 나선 산은지주를 보고 "정체성이 뭐냐"는 비판도 쏟아진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워크아웃 과정에서도 이 같은 정체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 정책금융기관이라면 금호에 대한 보다 폭넓은 지원이 가능했겠지만 정체성 혼란과 민유성 행장의 상업적 마인드로 인해 산은이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괜히 멀쩡한 국책은행 하나 망가뜨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규제강화 암초 만난 민영화

= 산은 민영화는 MB정부 출범 초기 핵심과제였다.

초기 취지는 △산업은행과 민간금융회사 경쟁 논란을 해소하고 △CIB 선도모델로 산업은행을 육성하며 △민영화로 나온 재원은 KDF(한국개발펀드)가 정책금융지원에 활용한다는 것이었다.

이 모델은 IB 육성 등 민간금융 역량 강화와 정책금융 선진화라는 명분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계획은 보류됐고, 산업은행은 전보다 한층 정책금융기관으로서 많은 역할을 해야 했다. 여기에 글로벌 위기 후 G20를 중심으로 투자은행 모델에 대한 규제강화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산은 민영화를 위한 금융당국 행동반경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 "멀쩡한 국책銀 망가뜨린 꼴"

= 위기가 어느 정도 가신 2009년 하반기부터 산은 민영화는 느리지만 다시 진척을 보였다. 펀드 형태로 고려되던 정책금융기관이 정책금융공사로 이름을 바꿔 출범했고, 산업은행은 지주 형태로 전환을 마쳤다.

그러나 민영화가 2014년 이후로 밀리면서 산은지주는 앞으로 5년 가까이 정책금융기관도, 민간금융사도 아닌 회색지대에 남겨졌다. 지분을 가진 기업을 구조조정할 때는 준(準) 정책당국이 돼야 하고, 다른 편으론 민영화를 위해 수신기반을 넓혀 `상품`으로서 매력을 높여야 한다.

6월 말 산업은행은 카드업 진출 방침을 기자간담회에서 발표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산은 측은 "아직 금융당국과 협의가 안 된 사안"이라는 해명을 내놓고도 당국의 따가운 눈총에 진땀을 빼야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산은은 아직 산금채 발행을 뺀 순수 수신비중이 10%에 못 미친다"며 "수신기반을 확대하자는 취지는 알지만 카드업계 경쟁을 과열시키는 촉매가 돼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 민영화 리스크에 금리 상승

= 금융권에선 이에 따라 산은지주가 제2 우리금융지주가 되는 것 아니냐고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우증권 등 IB부문 경쟁력을 갖춘 계열사들이 날개를 펼 수 있도록 토양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민영화 추진에 따른 부작용은 이미 채권발행 등 일부 업무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작년 10월 정책금융공사와 분리된 이후 산은이 발행하는 외화표시 채권 가산금리는 벌어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민영화가 시작된 이후 정부 보증을 받는다지만 그것도 결국 불확실성이기 때문에 발행금리에 부정적인 것만은 사실"이라며 "절대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10bp(1bp=0.01%) 내외로 과거보다 가산금리가 올라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산은이 해외채권 발행 투자설명회(IR) 때도 민영화 관련 이슈에 투자자들 관심이 집중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법 개정안에는 현재 정부가 100% 보유한 산은금융지주의 첫 지분매도가 이뤄지는 시점에 보유한 1년 이상 중장기 채권에 대해선 100% 정부 보증이 들어가도록 돼 있다. 그 시점 이후 신규 발행되는 채권은 정부 보유 지분이 50% 이하로 떨어지기 전까지는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정부 보증이 이뤄질 수도 있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다.

최종 민영화에 이르기까지 이 같은 `민영화 리스크`는 지속될 전망이다. 민영화 추진 방향과 그 속도를 놓고 금융당국과 민유성 현 지주회장 사이에 온도차가 있는 것도 좋지 않은 변수다.

[특별취재팀=김태근 기자 / 손일선 기자 / 박유연 기자 / 임성현 기자 / 전정홍 기자 / 문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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