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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전문가

[디지털포럼] 산업 패러다임 바꾸는 `IT융합`

[디지털포럼] 산업 패러다임 바꾸는 `IT융합`


최양희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장

입력: 2010-08-10 21:50

융합이 화두이다. 정부는 국가융합기술발전기본계획을 발표하였고 산업융합촉진법도 곧 제정할 계획이다. 대학이나 연구소에는 융합에 관한 조직이 유행처럼 신설되고 있다. 기업도 융합이 살 길이라고 외치고 있다. 애플의 아이폰 돌풍으로 드러난 한국의 경쟁력 위기를 융합으로 돌파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높다. 과연 융합이 한국의 미래를 개선시킬 것인가?

산업에서 융합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단지 융합이라는 단어를 구태여 쓰지 않았을 뿐이다. 기계식 타자기가 전자공학과 융합하여 워드 프로세서가 등장하였고 다시 소프트웨어가 이를 완벽히 대체하였으며 문서처리라는 더 큰 시장을 탄생시켰다. 산업에서의 융합은 이와 같이 새로운 제품과 새로운 스타 기업을 탄생시키므로 매우 매력적이다.

산업에서의 융합은 주변융합, 본격융합, 패러다임 전환의 세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거나 차별화를 위하여 제품의 본질은 그대로 두고 융합을 통하여 기능, 디자인 등을 개선하는 것이 주변 융합이다. 정수기에 얼음 공급기능을 넣거나 자전거에 모터를 다는 것이 좋은 예이다. 단기적으로 가능하며 위험부담도 적어 많은 기업이 주변 융합에 머물고 있다. 스마트그리드나 스마트공장과 같이 중기적 접근이 필요하며 여러 기술이 화학적으로 섞여서 성능, 가격, 기능을 크게 개선한 본격융합은 위험부담이 있지만 산업의 주체, 즉 주력기업이 그대로 유지되므로 기술의존형 기업에서 많이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융합의 꽃은 대규모의 새로운 시장이 탄생하고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는 패러다임 전환형 융합이다.

유전자변형 씨앗, 신약은 여러 분야의 기술이 획기적으로 융합하여 전혀 새로운 제품으로 시장을 장악한 좋은 예이다.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며 성공하면 천문학적인 이득이 보장되는 특징이 있다. 새로운 기업의 등장과 기존 주력기업의 몰락은 패러다임 전환형 융합에서는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에서 산업융합은 과연 어떠한가. 융합을 내세우는 산업이나 기업은 아직도 주변융합이나 본격융합에 그치고 있다. 즉 새로운 빅 플레이어의 등장, 비즈니스 모델의 격변을 두려워 한다. 건설융합은 건설회사가, 자동차융합은 자동차회사가 주도하는 식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진정한 융합을 시도조차 하기 어렵다. 한국의 융합 진흥정책도 이 테두리를 벗어나야 한다.

융합의 본질이 새로운 지식과 산업을 창출하는 방법론이라고 본다면 융합의 대상에는 제한을 두지 말아야 한다. 하나의 세부 분야에서 전문지식이나 제품의 경쟁력이 더 이상 개선되기 어렵다면 이는 바로 융합이 필요한 시점이다. 어느 다른 분야의 기술과 융합할 것인가를 잘 파악하면 적은 투자로도 큰 융합의 효과를 볼 수 있다.무엇과 융합하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어렵다면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노기술과 반도체기술, 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은 공통요소가 많은 인접학문이면서도 융합을 통하여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방송기술과 통신기술이 합쳐져서 방송통신으로 융합하면 새로운 거대산업이 나타나는 것도 또 다른 좋은 예이다.융합에 관한 한국의 정부정책이나 기업전략을 보면 가까운 분야끼리의 융합을 소홀히 다루고 있다. IT와 IT의 융합이야말로 쉽고 정말 필요하다. 애플의 아이폰이 좋은 예이다. 3D TV, 실감통신, 스마트 워크(work)도 IT 내부의 강력한 융합을 전제로 한다. IT 산업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우선 IT와 IT의 융합에 힘을 쏟으라고 권하고 싶다. IT와 non-IT의 융합만이 강조되는 것은 불합리하다.

산업융합의 성공조건은 많다. 올바른 정책, 전략, 적절한 투자, 강한 리더쉽, 소통등도 중요하지만 우수한 융합인력의 확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성공적인 산업융합에 필요한 인재는 어떻게 육성하고 어떤 덕목을 가져야 하는가? 우선 융합에 앞서 하나의 분야에서 진정한 전문가일 필요가 있다. 하나도 확실히 알지 못하면서 다른 것과 융합을 한다면 결과는 뻔한 것이다.

다음으로 협동과 소통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 내가 갖고 있는 전문성이 무엇과 융합하면 큰 효과를 낼 지를 미리 다 파악하기는 어렵다.꾸준히 많은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대화와 토론을 할 자세가 있어야 한다. 융합 인력 양성의 지름길은 이런 교류의 장을 많이 만들어 주는 것이다. 따라서 공동 연구 프로젝트, 만남의 공간이 융합교육에서 특히 강조되고 있다.

융합에 대한 올바른 이해, 기업가정신, 융합인력이 고루 준비되어야만 한국의 산업융합이 본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정부ㆍ기업ㆍ대학의 긴밀한 협조가 매우 필요한 시점이다.

디지털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