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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포럼]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시대

[디지털포럼]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시대

입력: 2006-09-26 15:26



이인화 소설가ㆍ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


구약성서 `창세기'의 선악과 에피소드는 지식이 인간에게 갖는 실존적 의미를 보여준다.

금지된 선악과를 먹고 선악을 알게 된 인류는 낙원으로부터 추방된다. 이처럼 무엇을 안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존재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다.

20세기 말 인류는 사이버 공간이라는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됐다. 사이버 공간을 만들어낸 정보 혁명은 분명 인간적인 힘의 발전이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가능성의 발전이다. 인터넷에 의해 밀실과 광장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인류는 지역과 연고의 낡은 구속을 깨고 정보와 표현의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지식이 가져온 위험도 만만치 않다. 온라인화된 자본에 의해 금융파생상품들이 개발되면서 헤지 펀드가 양산되고 금융위기의 가능성이 항존하게 됐다.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과 국제성, 휘발성 때문에 국경이 없고 범인 확인이 어렵고 증거 인멸이 쉬운 IT범죄가 생겨났다. 사이버 공간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현실 세계를 잊어버리는 게임중독 현상도 나타났다.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이와 같은 사이버 공간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온기가 흐르는 인간적인 공간으로 바꾸려는 문화적 노력의 산물이다. 사이버 공간 안에도 정의와 자유가 존재해야 한다는 믿음 아래 많은 사용자가 폭정을 일삼는 지배혈맹에 반대해 맨몸으로 봉기했던 리니지2 바츠해방전쟁의 이야기. 가난한 부부를 위해 그들이 현실에서 못한 결혼식을 사이버공간에서 화려하게 거행해준 리니지2 가시버시혈맹의 이야기. 아무것도 없는 초보 사용자들을 돕기 위해 여유가 있는 사용자들이 불시에 방문해 좋은 방어구와 무기, 아이템을 맞춰주는 마비노기 습격 거리 변신의 이야기.

작가가 아닌 사용자 자신이 참여해 만드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세계는 의리와 인정의 따뜻한 마음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삶에 지친 사용자들 사이에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창조하고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재충전시킨다.

이야기 예술은 언제나 새로운 지식이 만들어내는 진보의 가치를 옹호해온 진보의 동반자였다. `돈키호테'와 `보봐리 부인'에서, 또 `전함 포템킨'과 `대부', `감각의 제국'에서, 이야기 예술은 하나의 절대 가치에 의해 강요되는 권위주의적 질서를 반대하고 새로운 지식이 창조하는 새로운 가치,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하는 인간적인 세계의 실현을 주장해왔다. 이야기 예술의 허구는 단순한 허상이 아니라 언제나 더 나은 인간적 현실을 준비하는 가상이었다.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네트워크화된 컴퓨터 환경에서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지는 이야기 예술이다. 오늘날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 웹 콘텐츠, 모바일 콘텐츠 등이 구현하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정보 혁명 시대에 인류가 꿈꾸는 더 나은 삶과 가치를 표현한다. 이러한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모더니즘 이후 전문화의 길을 걸으며 보편적인 감성보다 실험적인 독창성만을 옹호해왔던 20세기 이야기 예술과 대립한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사용자로서 선택하며 편집할 수 있는 콘텐츠인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예술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수평적 확장과 민주적 상호작용을 촉진한다.

모든 인간적인 욕망들의 사랑스러움, 착한 감정들의 진실함, 인간 정신의 자유와 인간 의지의 숭고함을 추구하는 이야기 예술의 꿈은 21세기의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이르러 비로소 완전한 구현의 무대를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다. 디지털 스토리텔링 작가들은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계속 구현되고 발전할 수 있는 개발자 스토리를 창작하고 개발한다. 이 분야에서 한국은 세계적인 비교 우위가 있다.

작가들에 의해 디지털 스토리텔링이 구현될 수 있는 배경스토리가 구성되면 수많은 사용자가 자신의 생각과 취향에 맞는 사람들과 연대해 함께 새로운 스토리를 창조한다. 이러한 연대와 창조의 스토리는 자칫 배금주의와 물질만능주의, 말초적 욕망이 지배하는 삭막한 정보의 사막이 될 수 있는 정보화 사회에 강력한 길항 작용을 한다.

인류가 오랜 노력 끝에 도달한 정보화 사회는 디지털 스토리텔링과 더불어 비로소 피가 있고 살이 있고 영혼이 있는 인간의 사회, 더 아름답고 민주적인 사회로 발전해나갈 것이다.

디지털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