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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

[기고] 스티브 잡스 '대량 생산' 계획

[기고] 스티브 잡스 '대량 생산' 계획

  • 김재현·성균관대 컴퓨터교육과 교수
  • 입력 : 2010.02.25 23:05
김재현·성균관대 컴퓨터교육과 교수
정부가 IT 인력 양성을 위해 4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한다고 한다. IT 인력을 키우겠다는 정부의 주요 사업 내용을 보면서 정말 '한국판 스티브 잡스'가 나올 가능성이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은 'NO'다. 왜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취지는 좋으나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빠뜨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는 IT 하드웨어 분야에 관심을 집중하고 소프트웨어(SW) 분야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결과 한국의 소프트웨어산업은 신생아(新生兒)가 태어나서 걸음마도 배우지 못한 채 부모 무관심으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선 IT 소프트웨어 관련 직업이 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3D 업종으로 취급받고 있다. 모든 대학에서 IT 소프트웨어 관련 학과에 대한 학생들의 선호도는 급속도로 떨어져 우수 학생이 지원하지 않고 있다.

우리와 교육제도가 유사한 일본과 중국은 중등교육 과정을 개편하면서 컴퓨터 관련 교과를 필수 과목으로 편성하였다. 일본과 영국은 IT를 수능 과목으로 지정하고 컴퓨터 교육에 치중하고 있다. IT 소프트웨어 강국인 인도는 초등학교부터 프로그래밍 교육을 통해 논리적 사고를 기른다. 중등학교에서는 프로그래밍을 창의력과 문제 해결 능력 배양에 활용한다. 인도의 소프트웨어 수출액은 수백억달러로 우리나라보다 20배 이상 많고 미국 실리콘밸리 IT 인력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외국은 컴퓨터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초·중등학교부터 컴퓨터 관련 과목을 늘리고 있는 추세다.

반면 우리나라는 컴퓨터 교육이 독립 교과조차 아닌 실정이다. 컴퓨터 교육에 활용되는 '재량 활동' 시간마저 줄어 초·중·고 컴퓨터 교육시간이 따라서 줄어들고 있다. 고등학교의 30% 이상이 정보컴퓨터 과목을 선택하지 않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컴퓨터를 배우지 않고 졸업하는 학생이 3분의 1 이상이란 얘기다. 인터넷과 오락을 위해 컴퓨터를 사용하는 정도는 OECD 국가 중 최(最)상위이나 정작 중요한 프로그래밍을 위한 컴퓨터 사용비율과 학교 공부를 위한 컴퓨터 사용비율은 최하위인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컴퓨터 과목 교사 중 컴퓨터 교사 자격증을 갖지 않은 타전공 교사가 65% 이상이고, 1개교(校)당 컴퓨터 교사(敎師)가 채 한 사람도 배치되지 못한 국가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4000억원 나눠준다고 IT 명품 인재가 만들어지겠는가. 결코 아니다.

정부는 대학원 과정에 집중적 투자를 하기보다 초·중등학교의 컴퓨터 교육부터 새롭게 준비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컴퓨터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초·중등학교에서의 컴퓨터 교육은 단순한 컴퓨터 활용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의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컴퓨터 과학 교육이 돼야 한다.

지금 정부의 IT 인력 양성 계획은 정말 현실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여기저기서 소프트웨어 분야의 중요성을 강조하니 뭔가 내놓아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다. 대학생보다는 대학원생이 조금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 그곳에 돈을 주면 얼마 후 한국판 스티브 잡스가 나오리라 생각했다면 어이가 없다. 어떤 분야든 명품 인재는 공장 생산처럼 석·박사 과정 몇 년 사이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재 출현의 기반(基盤)이 돼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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